다움을 배움

- 「교육다운 교육 」 서평 -

by 이새하



방학을 맞아 모처럼 큰 마음을 먹고 대청소를 감행했다. 한동안 꺼내 읽지 않던 책장의 책들 사이에 고등학교 시절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던 노트가 있어 오랜만에 펼쳐 보게 되었다. 꽤 엄격한 미션 스쿨의 기숙사생이었던데다가 핸드폰 소지도 교칙으로 금지되어 있어 그때는 신문이 바깥 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해 학보사의 기자로 일하면서 신문 기사를 읽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학내 사안들을 취재해 기사를 발행하는 부서에 있다 보니 자연히 지나친 감상주의는 경계의 대상이었고 외부의 정보에 근거한 문장만 쓰는 버릇이 들었다. 주관을 표백해 건조한 팩트 뒤에 남아 있기, 그것이 가장 안전할뿐더러 '쓸모 있는' 글을 쓰는 방법이라고 여겨왔다.

졸업 후 짧은 뉴스 통신사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신규 교사로 처음 부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사의 개성을 표면에 드러내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좋은 수업의 확고한 내용과 방법 뒤에 숨는 것이 안심됐다. 특수성보다는 범용성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수업을 주관이 배제된 공간으로 만들어 온 이유는, 무엇보다도 체육교사로서 부족한 나의 자질과 자신감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일도 두려웠다.


하지만 몇 해째 스포츠클럽에서 배구를 가르치면서 미숙함에서 오는 실패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매년 두 종류의 학생들을 만난다. 어떤 학생들은 공이 네트에 걸리거나 실점했을 때의 불안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끼는 반면, 실력을 떠나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는 상황을 겁내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둘 중 선수로서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후자다. 배구공을 맞춰 안전하게 넘기는 것보다 당장은 네트나 블로킹에 걸리더라도 외력과 내력을 매 순간 있는 힘껏 사용해 보는 태도가 좋은 선수가 되는 데 훨씬 더 중요한 자질이다.


코트에 남아 있는 이상 기회는 계속 찾아온다. 이번 공격에서 실수해도 다음 랠리가 있고 경기에서 지더라도 다음 시합이 있으니 말이다. 글쓰기는 기자 일의 극히 일부분이고, 잘 쓰여진 기사의 뒤에는 반드시 불편한 현실과 부딪쳐 정면으로 마주한 취재가 있는 것처럼 불편한 상황에 끊임없이 처해보는 훈련이 나다움을 찾는 가장 확실한 길인지도 모른다. 핑계 대거나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나다운 실패가 끝내 나다운 수업을 만든다.


연구회 활동이나 SNS를 통해 존경할 만한 수업 사례들을 넘치게 접한다. 학생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디지털 기기도 척척 활용하는 동료 교사를 보며 열패감에 주눅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수많은 실수와 실패가 용해된 수업으로 매 학기 학생들과 마주하는 것 또한 좋은 교수법과 테크닉만큼이나 교육의 온당한 역할을 해내고자 하는 나의 방법론이다.
결국 내 눈앞에 있는 이 학생의 신체활동경험과 구체적 맥락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교사는 나뿐이며, 나여야 한다. 움직임의 기전뿐 아니라 내면의 기척을 알아채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육은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마주 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예전처럼 마음에 드는 기사를 정성들여 오리고 붙이던 시절과 달리 클릭 몇 번이면 얼마든지 정보를 무한정 담을 수 있는 이런 시대에 오래된 스크랩 노트의 빛바랜 활자와 종이의 질감 너머 스무 해 전의 내가 매료되어 있던 신문이라는 매체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한다. 세류世流와 무관한 고유함은, 나다운 글과 나다운 수업은 내 상처와 균열들을 서툴게 꿰매고 수리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번 서평 과제를 하면서 머릿속으로만 품어 온 막연한 생각들이 내가 채집한 언어로 단단히 매듭지어질 때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꼈다. 단어를 정렬하고 문장을 다듬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내보이는 데 예전보다 덜 주저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활자화된 사유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 힘으로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글이 읽혀지는 게 여전히 쑥스럽긴 하지만 이전만큼 부끄럽진 않다.


나는 이제 나의 그늘을 들켜도 괜찮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글에서 수업에서 설령 나의 부족함이 만져지더라도 언제나 또 다른 다음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부디 내일은 한 걸음 더 나다워질 수 있기를.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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