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이로운

- 「스포츠 리터러시」 서평 -

by 이새하



 우리 집 대가족의 일원인 새로는 보더콜리다. 양몰이견의 DNA를 가진 보더콜리답게 영리하고 운동신경과 체력은 상식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하루 내내 마당에서 뛰놀아도 지치지 않고 움직이는 물체, 특히 공이라면 무조건 좋아한다.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혼자 축구공으로 드리블도 하고 디스크도 잡고 비치발리볼도 하는 강아지다. 공을 볼 때마다 반짝이다 못해 이글거리는 새로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삼 유전자의 신비함을 느끼게 된다. 같은 회색늑대의 아종(亞種)임에도 푸들인 새삐가 공을 본체만체하는 것을 보니 더욱 그렇다.

새로처럼 나도 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체육 시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얼떨결에 입학하게 된 체육교육과와 운동부 생활도 그래서 힘들기보다는 대체로 즐거웠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과 센스가 크게 좌우하는 구기 종목에서는 남들보다 앞서 나가거나 훌륭한 선수가 되지 못했다. 다른 동기들이나 선후배에 비해 운동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자격지심은 대학을 졸업하고 체육교사가 된 이후에도 줄곧 걸림돌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배구라는 종목에 깊이 빠지게 되면서 재능과 센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구력(球歷)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력은 단순히 공을 다뤄 온 경력만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다양한 경험들의 중첩이자 총합이다. 따라서 경험의 양만큼이나 질이 숙련도를 결정한다. 경기 감각과 상황 판단, 움직임 패턴, 공간 속에서의 위치선정과 타이밍, 그리고 여유 같은 요소들은 반복된 경험 속에서 몸에 스며드는 일종의 내재율이다.

내가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이 스포츠에 재능과 센스를 타고난 것은 아니다. 사실 아직 공을 다루고 몸을 움직이는 일조차 어색해하고 자신없어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체육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에게 이러한 내재율을 체득시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만일 나에게 체육교사로서 조금이나마 좋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나 역시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괴로웠으니 그 빈칸들을 효과적으로 채우는 방법을 고민하고 노력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중 언젠가 책을 통해 ‘스포츠 리터러시’라는 개념을 접하자마자 그동안의 의문과 고민들로 이루어진 방정식의 해가 남김없이 구해지는 상쾌함을 느꼈다. 본래 리터러시란 글을 읽고 이해한 뒤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단순한 문해력을 넘어서 해석, 비판, 활용 능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스포츠 리터러시는 스포츠를 머리로, 몸으로, 마음으로 읽고 표현하며 참여할 수 있는 소양이자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 문명의 본질을 공동체에 유효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믿는 능력에서 찾는다. 이와 유사하게 스포츠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운동 기술이라는 텍스트 그 자체만큼이나 이를 맥락에 맞게 해독하고 변용하는, 객관적 현상보다는 주관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두 책을 다시금 겹쳐 읽으면서, 이 이야기라는 개념이 쓰임에 따라 서로 다른 구조적 층위를 지닌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에피소드 - 스토리 - 내러티브는 한국어로는 모두 동일하게 번역되지만, 정밀하게 들여다 보면 사건 -> 흐름 -> 의미 체계라는 점에서 분명한 범위와 깊이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각각 스포츠의 표층·내층·심층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에피소드는 표층으로서 단순한 즐김과 기능 습득의 차원에, 스토리는 내층으로서 신체활동 이외의 다양한 방식으로 스포츠를 향유하며 소양을 함양하는 차원에, 내러티브는 심층으로서 실천 전통으로서의 스포츠에 입문하는 차원에 해당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따라서 이상적인 체육수업은 매시간 즐거운 에피소드를 겪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의미 있는 스토리로 엮어갈 수 있는 수업이자,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이 스토리를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에 총체적으로 기여하는 내러티브로 전환시키는 수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사의 본분은 주어진 텍스트를 통해 학습자가 얕은 재미에서 출발해 깊은 의미로 건너갈 수 있도록, 그래서 학생이 스스로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측면에서 조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 자신이 각 에피소드와 스토리를 개연성 있게 연결하고 스토리를 통시적인 내러티브로 확장시키는 세계관, 즉 안목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한다.

스포츠는 삶을 미메시스(모방과 재현)하므로, 스포츠를 향유한다는 것은 곧 나의 삶에 핍진성을 더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래서 체육수업에서 담보되어야 하는 계열성과 계속성은 비단 지식의 구조나 운동기술의 측면만이 아니다. 이에 더해 몸을 통해 얻어진 다채로운 에피소드, 정교한 스토리, 매력적인 내러티브로 인생의 나날들을 직조하는 과정이어야 하리라. 걸림돌이라 생각했던 나의 자격지심이 뒤돌아보니 결국 징검다리가 되어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가 공을 좋아하는 이유는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반응성이 높은 개체끼리 수백 세대에 걸쳐 교배시킨 견종이라서다. 인간이 공놀이를 좋아하는 이유도 물체를 쫓고 잡고 던지는 이 본능이 수렵채집 시대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공은 예측 가능한 물리법칙을 따르면서도 완전히 통제 불가능한 움직이는 표적이다. 모서리가 없이 둥글어 멈춰 있지 않기에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생성한다.
그래서 공은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번역하는 매혹적인 상징이다. 공을 다루는 순간 나의 의도는 신체를 거쳐 물체로 전달되고, 물체는 다시 세계를 변화시킨다. 그 궤적 속에서 몸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한다. 어디로 흘러갈지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공의 움직임은 삶의 전개와도 닮아 있다.

곧 개학이다. 이제 3월이 되면 운동장과 체육관은 또다시 공놀이를 하는 어린 재잘거림들로 채워질 것이다. 두려움과 설렘을 반반씩 안고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이어져 온, 우리가 이어가야 할 새롭고 이로운 이야기들을.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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