蛍獲て 반딧불이 쥔
少年の指 소년의 손가락은
緑なり 초록이 되어
- 山口誓子(야마구치 세이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로 잘 알려진 하이쿠(俳句)는 5·7·5의 17음절로 이루어 지는데,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인 '키고(季語)'가 특징이다. 반딧불은 여름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하이쿠의 계절어지만, 성충의 수명은 짧아서 일 년 중 반딧불이의 불빛을 직접 볼 수 있는 시기는 길어야 1-2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해 여름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꼭 보러 가고 싶었던 참에 마침 도쿄에서 통역 일을 하며 친해진 다른 대학교의 친구들 세 명과 함께 미타카의 반딧불이 마을까지 가보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시험기간이 막 끝난 참이라 우리들은 모두 해방감에 다소 들떠 있었다. 신주쿠에서 주오선을 타고 20여분을 달리면 방금 전까지 내가 정말 도심 한복판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완연한 시골의 논밭 풍경이 전철의 창문을 통해 밀려든다.
우리가 가려는 도쿄도 미타카의 오사와 마을은 무사시사카이역에서 내려 또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곳곳에 맑은 수로와 강, 연못이 있는 이곳은 반딧불이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반딧불이의 생육을 위해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유충의 먹이가 되는 민물 달팽이가 잘 자랄 수 있게 논 주변에 배춧잎을 깔아두는 등 생태 복원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한다.
오사와 마을 입구는 녹나무 몇 그루가 지키고 있었다. 공해와 추위에 약해 우리나라에선 주로 제주도에만 서식하는데 이곳에서는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다. 반들반들하게 윤기나는 잎에서 월계수와 비슷한 부드러운 향기가 나고 어린 줄기가 녹색을 띠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 이렇게 짙은 녹나무 그늘 밑에 있으면 어째서인지 마치 오래된 예배당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유월 상순부터 관동 지방은 장마철인 츠유(梅雨)에 접어든다. 한자 그대로 매실이 익을 무렵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아니나다를까 오는 동안은 내내 맑았던 하늘에 돌연 먹구름이 덮이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붕 끝에 누군가가 만들어 달아 놓은 후우링(風鈴)의 차랑차랑 소리를 들으며 개울 옆 그늘막에서 한동안은 갑작스런 비를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딧불이를 못보게 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도쿄로 돌아가는 길을 걱정하던 차에 해질녘이 되자 다행히도 거짓말처럼 비가 멎기 시작했다.
학교도 전공도 다르고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타국에서 유학생활을 한다는 공통점으로 우리들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도쿄에서의 대학 생활은 이렇구나, 하고.
나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여러가지로 진로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나이대의 나도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앞으로 어떻게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 같다. 원래 그때는 그런 시절이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 애들의 틀림없는 젊음이야말로 가장 희소한 성취인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반딧불이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날씨는 달빛을 구름이 가려주는 흐린 날이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마을 주민 한 분이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대나무숲까지 길을 안내해 주셨다. 올해는 유독 출현 시기가 일러 일주일 전쯤 왔더라면 더 많은 반딧불이를 볼 수 있었을텐데, 지금은 몇 마리 남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애들 서너 명도 손전등을 들고 중간에 합류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마 학교에서 내준 숙제로 이곳에 온 모양이다.
반딧불이와 같이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동식물을 ‘깃대종’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반딧불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고유종인 겐지 호타루(Niponoluciola cruciata)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같은 반딧불이라도 종에 따라 발광 주기와 비행 궤적, 빛의 색깔이 조금씩 다른데, 겐지 반딧불이는 지속광이 아닌 2~4초 간격으로 느리게 점멸하는 연녹색의 빛이 특징이다. 반딧불이들은 이 빛이 반짝이는 주기로 서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어둠 속에서도 짝을 판별한다.
댓잎에 스치는 초저녁의 바람 소리와 물기 어린 풀냄새 틈으로 별안간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나타나며 숨 죽이고 걷던 일행들 사이로 파문처럼 탄성이 일었다. 숲을 나와 논둑길을 건너 연못가에 다다르니 좀 더 많은 수의 반딧불이들이 캄캄한 수면 위에 고요한 선율같이 흐른다.
옛날 사람들은 반딧불이를 죽은 이들의 영혼으로 여겼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 때문인지 그 날 물가에서 깜박이던 연약한 녹색의 빛들은 미처 해명되지 않는 꿈처럼, 지키지 못한 오래된 약속의 실마리처럼 보였다.
これでこそ 이런 밤이라
ほたるも光る 반딧불이 빛나지
やみよかな 어둠이 있어
-小林一茶(코바야시 잇사)
하이쿠에서 계절어인 키고와 더불어 중요한 요소는 '시를 자르는 글자', 키레지(切れ字)다. 그 자체로는 특별한 뜻이 없지만 일종의 문장 부호이자 열일곱자라는 한정된 글자 수 안에서 화자의 정념을 강조하고 시상을 전환하는 기능을 한다.
위의 하이쿠에서도 키레지로 사용된 마지막의 'かな'는 감탄과 함께 여운을 남기는 효과를 가져온다. 문법적으로 완전한 문장을 만들기 어려운 하이쿠에서 키레지는 그 불연속성으로 시적 구조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이 날 미타카의 반딧불이 마을로 떠난 짧은 여행은 산문처럼 쉼없이 흘러가는 유학 생활 중에서도 특별한 하루로 마음에 남아 있다. 의미가 발견되는 지점은 결국 반짝임 사이의 어둠임을. 때로는 걸음을 이어나가기 위해 도리어 잠시 멈춰야 함을. 불현듯 찾아오는 이러한 명멸과 단절의 순간이 있어 문학도, 삶도 온전히 고유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띠제비나비와 산까치의 날개 끝 파랑의 무늬가 짙어지고, 자잘한 알사탕같은 앵두며 비파나무 열매의 병아리색 과육이 한낮의 더위에 익어가는 나날. 이 계절을 나는 일 년 중 가장 사랑한다. 이따금 푸른꿩이 우는 숲이 녹음을 더해 가는 가운데 이런저런 초여름의 정경 속을 지나며 우리들은 두근대는 마음으로 방학을 기다리는 것이다.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