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달경, 나름 핫한 사건이 있었다. 맨스티어라는 힙합듀오와 여타의 래퍼들 사이에 디스곡이 오고가는 등 큰 갈등이 있었다. 이 갈등은 나름 잘 마무리 되었던 것은데, 미지근하기를 넘어 이제 차갑게 식어버린 감자를 필자가 굳이 꺼내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맨스티어-또 맨스티어로 분한 개그맨 듀오 뷰티풀너드-의 개그스타일이 『계몽의 변증법』에서 -아마 아도르노에 의해- 기술된 강요된 웃음에 대한 설명의 예로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가 뷰티풀너드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으며, 그들에 대한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선 맨스티어가 누구인지,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인지 배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짚어보자.
맨스티어는 누구고 뷰티풀너드는 누군데?
소위 ‘부캐놀이’라고 부르는 문화는 몇 년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강하게 박동치고 있다. 뷰티풀너드는 최제우와 전경민이 함께 결성한 팀으로, 주로 부캐놀이를 통해 웃음을 준다. 맨스티어는 이 뷰티풀너드의 수 많은 부캐중 하나다. 아주 다양한 꽁트, 희극을 찍는 개그맨들이라고 봐도 좋을 것같다.
뷰티풀너드는 맨스티어라는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여 한국 힙합문화의 안좋은 면모를 보여주고 그를 통한 개그를 영상화한다. 맨스티어의 첫 영상은 21년 중순에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현재가 24년이니 약 3년간 진행되었는데, 사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큰 논란으로 불거지진 않았다. 둘의 연기력이 너무 출중하여 유튜브에 진심어린 욕설이 달릴 때가 꽤 자주 있었다는 것 정도? 오히려 맨스티어를 즐기며 함께 웃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이는 아마 힙합매니아들과 현역 래퍼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 이들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힙합매니아들에게 큰 논쟁거리가 되었을까? 단순히 맨스티어와 뷰티풀너드의 조회수가 이전보다 크게 증가했다는 것 말고도 몇 가지 이유를 더 짚을 수 있다. 우선, 힙합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점차 부정적이 되어갔다는 점을 지목할 수 있다. 실제 힙합이라는 문화와 장르가 한국에 유행하면서, 일명 ‘힙찔이’들이 크게 증가했다. 또 유명한 래퍼 여럿이 뉴스 사회면에 여럿 등장하였다. 어느새 힙합이라는 문화는 많은 사람에게 허세는 잔뜩 부리지만 실제로는 짜치는, 혹은 마약하고 군대나 빼는 사람들이 향유한다는 이미지를 얻어버렸다. 국민남매인 악동뮤지션이 한국의 유명 힙합 경연프로그램에 특별출연했을 때,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은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는 가사를 내뱉는다. -이후에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망치는 중이라고 하고- 그는 이후 인터뷰에서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는 명제가 힙합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닌 오늘 날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경향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명제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쌓여있던 힙합에 대한 부정적이미지와 시너지를 이루면서 폭발적인 인지도를 얻게되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맨스티어가 너무 랩을 잘했다는 점이다. 최제우는 실제 래퍼를 꿈꾸기도 했던 사람이었고. 뷰티풀너드는 활동을 하고 -개그성이었지만- 곡도 하나씩 내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해갔고, 실제 힙합페스티벌등의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는 뷰티풀너드가 더 이상 예능만이 아닌 힙합으로도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이들은 개그맨인지, 아니면 랩퍼나 힙합뮤지션으로 봐야하는지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된다. 때마침 개그의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었기에, 힙합매니아들 중 이들에게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 이들은 뷰티풀너드의 개그가 풍자가 아닌 조롱이라고 비판 -혹은 비난- 하며, 조롱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정녕 옳은 일이냐고 추궁했다. 위의 상황이 지속되던 중 한 래퍼가 먼저 맨스티어를 디스하였다. 그 래퍼의 활동명은 PH-1으로, 힙합에 대한 도를 넘어선 풍자를 멈춰달라는 요지의 곡을 발표한다. 맨스티어 역시 자신들이 실제 힙합문화에 대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임을 명확히 하는 내용의 디스곡을 내며 반격했고, 추가적으로 몇몇 래퍼들이 SNS로 혹은 노래를 발표하며 반응하기 시작한다. 대중들은 이게 한국의 힙합계의 업보라고 주로 생각하며 비판하는 스탠스가 강했다. 그래도 나름 래퍼들 사이에선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주제로한 곡들이 여럿 등장하며 나름 잘(?) 끝났다.
아도르노의 강요된 웃음
이제 ‘강요된 웃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아도르노는 모두까기와 난해한 글쓰기로 유명한 철학자이다. 아도르노의 이러한 성향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의 ‘강요된 웃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갈린다. 그만큼 ‘강요된 웃음’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어렵거니와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개념이다. 사람은 누군가가 웃으면 따라 웃는 생득적 습성이 있다. 재미 없는 개그, 혹은 아주 재밌지 않은 개그라도 누군가가 찰지게 리액션을 해준다면 보는 입장에서 크게 웃게 된다. 웃으면 행복해진다는데 좋은게 좋은거 아닌가?
하지만 아도르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문화산업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강요된 웃음’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기획물에 웃음포인트를 끼워넣는 것을 웃음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개그콘서트나 무한도전, 미국의 토크쇼를 생각하면 그가 비판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낼 수 있다. 개그를 친 직후에 사람들이 웃거나 환호하는 효과음을 넣는다거나, 혹은 방청객이나 다른 프로그램 참여자가 크게 웃어준다거나하는 상황 말이다. 이렇게 웃음포인트를 잡아주면 처음엔 개그가 웃기지 않더라도, 신체적인 매커니즘에 따라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이것이 바로 웃음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도 웃으면 좋은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요된 웃음은 충분히 악용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있다고 해보자. 어떤 사람이 명확히 특정한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조롱할 의도로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조롱 후에 웃음포인트를 잡아준다고 쳐보자. 아도르노는 웃음은 곧 대상 -혹은 현상- 에 대한 동의로 직결된다고 말한다. 이는 과장된 어투긴 하지만, 웃음이 대상에 대한 악감정을 중화시키고 감소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이 이러한 웃음포인트를 통해 웃음을 강요하고 그를 통해 대중들이 사회적 부조리를 수용하고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맨스티어(뷰티풀너드)랑 강요된 웃음이 무슨 연관?
웃음포인트 잡아주기는 뷰티풀너드가 자주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수위높은 대사를 친 후, ‘웃참’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웃으며 말리는 척’하는 방식으로 웃음포인트를 잡는다. 웃음참기도 결국에는 웃음인 만큼, 뷰티풀너드의 방식은 아도르노가 말한 ‘강요된 웃음’에 딱 맞는 방식이다. 맨스티어를 비판하던 힙합매니아들의 의견을 고려해본다면, 이러한 명제를 구성할 수 있다.
“뷰티풀너드는 웃음을 강요하여 힙합에 대한 혐오를 대중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명제는 힙합매니아들에게만 설득력 있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힙합매니아가 아닌 시청자에게도 ‘강요된 웃음’에 대한 징후를 느끼게 만든 회차가 있었다. 바로 『국가의 부름을 받은 래퍼 - [힙합다큐: 언더그라운드] 』편이 바로 그 회차다. 이 회차에는 발달장애로 인해 작은 키로 면제를 받은 김민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실제 분한 사람의 이름도 김민석이고 실제 발달장애로 면제를 받았다.- 이 회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맨스티어의 멤버 중 한 명인 케이셉이 입영통지서를 받아서 자신의 동료에게 군대 면제받는 법을 물어보고, 그 동료가 자신의 주위에 면제받은 형이 있다면서 그를 불러주는 내용이다. 물론 그 형이 김민석이고. 이 회차에서는 군면제가 많은 래퍼들을 풍자하는 동시에, 발달장애를 소재로 한 개그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개그 사이사이에 리액션을 통해 여기서 웃으세요~ 하고 웃을 지점을 집어준다.
해당 회차의 한 장면, 두 사람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김민석 본인이 자기도 좋아서 한 개그라고 말하여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데 밖에서 뭐라 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를 보고 장애인에 대한 조롱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일리가 있긴 하다. 이에 따라 뷰티풀너드가 웃음을 강요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만약 이럴 경우 웃음은 누군가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웃음은 타자에게만 폭력이 되는 게 아니다. 강요라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즉 웃음을 강요하는 행위 자체가 웃는 사람에게도 폭력이 될 수 있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러한 비장애인의 온정적 시선이 오만함과 우월성을 전제로 한 차별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다.
결론
뷰티풀너드가 정말 사람을 조롱할 목적으로 영상을 찍어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아마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전하려는 것일테다. 실제로 필자도 그들의 영상 몇 개를 아주 재밌게 보았다. 필자의 목적은 단지 이들을 통해 아도르노의 ‘강요된 웃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전 아도르노와 『계몽의 변증법』에 대해 쓴 글에서 ‘강요된 웃음’에 대해서는 쓰지 않고 넘어갔기도 했고.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쨋든 웃고 즐기면 좋은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이 의견에 반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웃음이 진짜 웃음이고 진짜 행복일까? 웃음이 누군가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결론은 개인의 몫이다. 필자 역시 의견을 정하지 못하기도 했고. 이 글에서는 그저 ‘강요된 웃음’에 대해 설명하고 한 번 이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