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에 대한 물음에서 철학은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문제의식은 근세철학에까지 이어진다. 실체는 대개 영원불변한 만물의 근원 정도로 이해된다. 본문에서 다룰 내용은 실체에 대한 질문에 합리론자들이 각자 내놓은 답변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다. 글의 내용은 마땅히 합리론이라는 토대를 만든 데카르트에서 시작하여 그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의 실체론에 대한 조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라이프니츠보다 나이가 많은 스피노자를 나중에 다루는 이유는 그의 실체론과 비교해 보았을 때, 라이프니츠와 데카르트의 실체론의 노선은 유사하기 때문이다. 후자는 기독교에서 파생된 자비로운 신의 존재를 믿었고 가정했다. 반면 전자의 경우 전통적인 신모형을 배척하고 색다른 이론을 내놓는다. 만물의 근원은 결국 신으로 칭해지기에, 신에 대한 스피노자의 생각은 당연히 실체론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에 후학들이 내놓은 답변이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핵심은 데카르트의 실체론이 가진 문제점들을 그 둘이 어떻게 비판하고 해결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데카르트는 실체를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은 실체는 오로지 하나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은 당연히 신이다."[1]라고 정의한다. 다음 장에서 덧붙이길, "그러나 물체와 정신 혹은 사유실체는 피조물로서 공통된 실체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신의 조력뿐이기 때문이다."[2]라고 서술했다. 데카르트의 체계에서는 실체란 곧 세 가지를 일컬었다. 실체 중의 실체인 신과 사유실체인 정신, 마지막으로 연장실체인 신체다. 그는 사유실체-혹은 정신, 영혼 등-와 연장실체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 심신이원론자였다. 연장이란 공간을 차지하는 성질을 일컫는다. 연장을 가진 사물이 곧 물체다. 사유란 생각하는 성질을 가졌다. 그는 사유는 연장이, 연장은 생각하는 능력이 부재하다고 생각했다. 즉, 육체와 정신은 각자의 법칙대로 움직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당대의 조류긴 했다. 다만, 그의 입장에서 정신과 신체는 명석판명한 차이가 있었단 점도 명심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론으로 유명했다. 방법적 회의론은 의심할 수 있는 건 모두 의심하는 학문적 방법을 일컫는다. 이는 우리는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으며, 얻는다 하더라도 아주 한정적인 지식일 것이라는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논증을 증명할 때 이런 학문적 방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았다. 예로 신존재증명 중 하나인 '존재론적 증명'은 이런 비판들을 받았다. 완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관념은 정말 완전한가? 존재한다가 정당한 술어인가? 등의 의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데카르트의 신존재증명 모두 많은 비판을 맞닥뜨렸다. 하지만 실체론에 한해선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연장실체와 사유실체가 상호작용하지 못한다면 육체와 정신의 대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라는 의문이다. 데카르트의 대답은 송과선이라는 신체 기관을 통해 둘이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훌륭한 답변이 아니었다. 그러한 연유로 심신의 대응문제는 근대철학자들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라이프니츠 역시 세 가지의 신존재증명을 세상에 보였다.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증명에 신의 속성을 끼워넣기도 했고, 우주론적 증명이라는 논증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선학의 것과 비슷하나 그보단 강력한 논증들이었다. 그렇다면 심신의 문제에 관하여 라이프니츠는 어떠한 입장이었을까? 이엔 상반된 해석이 존재한다. 이원론자라고도 해석되는 이유는 그가 신체와 영혼을 엄연히 구별하였고 서로만의 법칙대로 운동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가 심신일원론자라는 주장은 그가 신체와 영혼 모두 단자라는 것으로 환원시켰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 단자란 라이프니츠가 고안해 낸 개념이다. 연장되는 것은 무한히 쪼개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근원적인 것도 영원불변하는 것도 아니다. 단자는 연장을 가지지 않아 쪼개지지 않는다. 상호작용도 하지 않는다. 즉 다른 것에 존재에 자신의 존재를 영향받지 않고, 영원불변하며 변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자는 실체다. 한 학술자료를 인용하자면, "인간의 정신은 하나의 우월한 단자이고, 인간의 신체는 열등한 단자들로 구성된 현상이다.[3]" 유한한 존재들은 이러한 단자들의 복합체이고, -유한의 차원에서-세상 만물의 근원이다. 이러함으로 단자는 실체다.
분명 여러 의문이 드는 설명이다. 단자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복합체를 이루는가? 신체와 영혼의 대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세계는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 건가? 전술했듯 라이프니츠는 자비로운 신을 믿었다. 그렇기에 신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를 창조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의 의문들도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단자들은 "정신적 사건들과 물리적 사건들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도록 단자들이 서로 시간을 맞추어 움직이는 것은 단자가 말하자면 똑같이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이다."[4]단자의 복합체이나 각각의 원리에 의해 운동하는 신체와 영혼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기에 마치 대응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신의 예정조화 덕이다. 신이 생각하기에 이런 세상이 이렇지 않은 세상보다 더 못한 세상인 것이다. 여하튼, 정신이든 영혼이든 신체든 결국 단자에서 근원 된 것이라고 라이프니츠가 생각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가 그의 실체론에서의 핵심이다. 지식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스피노자가 가졌던 원칙은 해당 지식이 논리적으로 필연적이야 참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체를 탐구하는 데에도 이 원칙에 따랐다. 다음은 그의 신존재증명에 대한 요약이다. (1) 신을 생각하는 것은 실체를 생각하는 것이다. (2) 존재는 실체의 본질에 속한다. (3)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이 논증의 문제점은 차치하자. 중요한 것은 그가 실체의 존재를 논증했고 신이라고 명명했다는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사물을 두 가지로 구별했다. 자기원인을 가지는 것과 자신 이외의 것으로 존재하고 특징이 설명되는 것. 실체는 전자다. 실체란 만물의 근원인 만큼 자신의 특성과 상태가 그것들 자체만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리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그것은 실체는 무한한 속성을 지녔으며 자신과 같은 존재-즉 무한한 존재는- 둘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술했듯 스피노자는 자비로운 신을 상정하지 않았다. 실체가 무엇이냐는 의문에 그의 답은 실체는 곧 자연이며 자연이 곧 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피노자가 이해한 자연이란 무엇이었을까? 자연이 곧 신이라지만 당연히 애니미즘 같은 걸 상상한 것은 아니다. 더불어 실체를 사물들-서로를 통해 영향을 받고 설명되어야 하는 유한한 것들-의 단순한 복합체라고 생각하여서도 안 된다. 이와 같이 자연을 이해할 경우 자연은 유한한 실체들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존재가 되며 자기 자신을 통해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에 의해 설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은 실체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스피노자의 실체모형은 모든 사물을 포함하고 있는 담지자로서의 모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에선 심신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해소된다. 우선 몸과 연장은 실체 안에 포함된 양태이다. 양태는 "실체가 변한 모습이다."[5]그리고 "속성은 실체와 양태를 연결하는 개념이다."[6]몸과 정신도 신체 안에 포함된 양태를 표현하는 속성일 뿐이다. 즉 어떠한 경우에선 양태를 정신으로, 다른 경우에서는 신체라는 속성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신의 대응문제는 두 개는 결국 같다라는 말로 답변된다.
그의 신존재증명은 신의 존재가 아니라 신에게 자기원인이 필요한 이유를 논증할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인격적인 신을 배제함으로써 몇 가지 문제점에서 벗어났다. 우선 신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받는 비판을 줄일 수 있었다는 점. 그 다음은 기독교적 신을 증명하기 위해 시도되었지만 비판을 받았던 논증을 자신의 체계에서 제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 근대합리론자들이 벌인 실체에 대한 토론을 요약해보았다. 정리하자면 기하학과 수학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철학 체계를 세운 데카르트에게 실체란 세 가지였다. 신과 정신, 신체가 그것이다. 허나 그의 논증이 스스로의 체계에 비교하자면 철저하지 않았으며 정신과 신체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신의 존재를 논증하기 위해 보다 완성도 있는 논증을 만들었다. 스피노자는 실체를 담지자로서의 신으로 만들어 정신과 육체는 결국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 문제를 해소했다면, 라이프니츠는 단자라는 실체를 상상했고, 신체와 육체 모두 단자이며 자비로운 신의 예정조화를 통해 대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논리를 구상했다. 비록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체계와 실체론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선학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을 했으며 더 발전된 설명을 보여준 것만은 확실하다.
참고문헌
1. 철학의 원리, 르네 데카르트 (원석영 옮김), 2002
2. 서양철학사 1,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니에 (윤형식옮김), 이학사 2016
3. 데카르트 실체 개념의 문제점과 후대 합리론자들의 해결방안, 박삼열, 2010.02
[1]철학의 원리, 르네 데카르트(원석영 옮김), 2002, 43p
[2] 철학의 원리, 르네 데카르트 (원석영 옮김), 2002, 43p
[3]데카르트 실체 개념의 문제점과 후대 합리론자들의 해결방안, 박삼열, 2010.02 25p
[4]서양철학사 1,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니에 (윤형식옮김), 이학사2016
[5] 데카르트 실체 개념의 문제점과 후대 합리론자들의 해결방안, 박삼열, 2010.02 14p
[6] 데카르트 실체 개념의 문제점과 후대 합리론자들의 해결방안, 박삼열, 2010.02 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