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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주 Jan 09. 2024

우리의 여행은 당신의 관광보다 힘들다

인도여행 다섯

나를 치려고 안달난 인도킬러들을 피해 내가 도착한 곳은 통신사 영업점이다. 내가 사려고 하는 건 내 휴대폰에 데이터를 수혈해줄 심카드이다. 여기 선불유심 하나요! 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신사답게 번호표 뽑고 순서 기다린다. 뭐가 필요하냐고 상담이 시작됐고 통신사에서 일하시는 인도 여성께서 내게 영어를 왜이리 못하냐고 구박한다. 인도 억양이 섞인 영어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탓하는 건 느껴진다. 어감은 언어를 초월한다. 자꾸 동료들이랑 수다 떨며 나를 보면서 웃는다. 이 얼굴이 인도에서는 먹히는 모양이다. 어찌어째해서 미남계를 발휘해 만든 유심은 2시간 뒤에 된다고 한다.


호텔방으로 돌아오니 일본 친구가 깨있었다. 일본 친구는 내게 함께 여행 가보자고 제안했다. 티루칠라팔리는 원래 여행 일정에 없던 도시라 나는 이 도시를 바로 떠나도 괜찮지만 어제 내게 잠자리를 제공해준 친구와 가까워지고 싶어 함께 이 도시를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여행 어플에서 유명 관광지라고 불리는 종교 사원을 찾아 떠났다. 가보니 돌로 된 탑이었고 그곳은 신발을 벗는 조건으로 20루피를 내야하는 곳이었다. 맨발은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발가락들은 자기들의 해방에 기뻐하였다. 한국인이 돌로 된 탑을 떠올릴 때 석가탑이나 다보탑을 생각하지만 인도의 스케일을 그런 상상에 가두지 말자. 그곳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탑으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더럽게 높았다. 이 탑도 하늘에 닿기 위한 시도였겠지. 왜 다들 신은 하늘에 있다고 믿었던 걸까? 괜히 옛날 사람 탓만 하게 된다.


그렇게 툴툴거리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꼭대기는 마치 언덕 위에 있다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경치였다. 과연 이 탑은 쌓아 만든 것인가 바위를 깎아서 만든것인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 어떤 답일지라도 인간의 놀라움을 느끼는 건 똑같기 때문에 (데이터가 안 터져서) 찾아보진 않았다. 꼭대기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는 매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공기를 등산 끝에 마시는 막걸리처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만세를 하며 몰래 겨드랑이를 건조시켰다. 오 바람의 신이시여 나를 건조시키소서.


동양인 두 명이 힌두교 신전 위에서 힘들어하며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그 광경이 재미있었는지 주변에 있던 인도인 고등학생들이 웃는다. 내게 찾아와 중국인이냐고 또 머리가 참 예쁘다고 칭찬해줬다. 마침 머리가 더워서 꽁지머리로 묶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부부도 있었는데 슈퍼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적당히 티루칠라팔리의 풍경을 찍고 내려가려고 했다.

나의 체력으로 이 높은 곳까지 온다는 건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이나 할 짓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해 내려갈 때는 한 번에 한걸음씩 아주 천천히 내려가야 했다. 걸음을 옮기며 일본인 친구와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본인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라고 한다. 나이는 23살인가 24살이었고 방학마다 제일 싼 외국행 티켓을 끊고 온다고 한다. 그 친구는 티루칠라팔리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고 그냥 예매부터 했고, 이곳으로 와서 직접 여행을 느껴보려고 아무런 정보 없이 온 것 같았다.


우리의 신발이 기다리고 있는 시작점에 도착해 우리는 가장 인도스러운 (그러니까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을 찾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도 현지인의 생활방식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현지인이 찾는 식당은 저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식당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티루칠라팔리는 애초에 관광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디에든 커리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현지인이 가는 식당보다는 그냥 깨끗한 식당이면 그냥 들어가고자 했다.


그렇게 찾은 식당은 의자에 등받이도 없고, 접시조차 바나나잎을 쓰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손으로 밥을 먹었다.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옆에서 밥을 먹던 인도인에게서 손으로 먹는 요령들을 어깨 너머로 배우고 시도했다. 밥은 뜨겁다. 그래서 바나나 잎에 펼쳐 식힌다. 그리고 그 위에 마살라(커리)를 붓는다. 손으로 간이 짜지 않게 잘 섞는다. 그리고 한 입 거리로 밥을 뭉쳐 집고 입에 가져가고 엄지손가락으로 밀어넣는다. 우리가 익힌 현지인의 손기술이다. 이렇게 먹지 않으면 먹기 좀 힘들다. 처음 먹는 인도현지식이었지만 의외로 입맛에 잘 맞았다. 손도 잘 씻기만 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예쁜 걸 보고 맛난 걸 먹는 관광이 아닌 현지식을 먹고 현지인과 함께 호흡하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여행을 하고자했다. 삶이 바뀌는 겁내지 않고 도전해보면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 그 삶에서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멋진 핑계를 곁들여 손으로 밥을 먹어본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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