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예능으로 보는 노랫말의 안녕(安寧)
나는 웹 예능 <문명 특급>의 팬이다. 문명 특급은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에서 파생된 채널로, 현재 독자적인 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인기가 많다. 오늘은 문명 특급의 여러 코너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코너인 ‘숨듣명’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숨듣명. 일명 숨어 듣는 명곡이라 칭해지는 이 코너에서는 논란의 노랫말을 가진 곡들을 소개한다. 파이브돌즈의 ‘이러쿵저러쿵’부터 시작해 제국의 아이들의 ‘Mazeltov’, 나르샤의 ‘삐리빠빠’, 비의 ‘깡’, 유키스의 ‘시끄러’ 등 다양한 노래가 나온다.
숨듣명에서는 노래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당시 작사를 한 이유, 곡을 받았을 때의 기분 등을 인터뷰하며 당시에 그렇게 가사를 써야 했던 얘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의 숨듣명 등을 받으며 논란의(?) 곡 리스트를 넓혀간다.
개인적으로 숨듣명의 진가는 ‘숨듣명 총회’에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숨듣명 총회에서는 총 6명의 관계자와 함께 여러 노래로 진지하게 토론한다. 노래 가사를 두고 무슨 노래가 밖에서 듣기 더 창피한지 얘기하기도 한다. 보다 보면 격하게 공감하기도, 노래 가사의 중요함을 깨닫기도 한다.
노래 가사로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지난해에 종영한 tvN의 <수요일은 음악프로>(이하 음악프로) 에서도 볼 수 있다. 음악프로는 매주 색다른 포맷으로 진행되었다. 그중에서도 ‘백곡 토론’에서는 노랫말 하나로 패널들이 진지하게 토론했다.
노래 가사 안의 연인이 계속 사귈 가능성, 문자 메시지 안의 ㅋ의 개수에 따른 내포된 의미 등 ‘저걸 굳이 왜 토론하지?’라는 생각할 법한 주제로 열띤 토론이 열린다. 보다 보면 웃음기가 싹 빠진 상황에 함께 몰입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어떤 패널들은 ‘이런 가사였는 줄 몰랐다’라고 놀라기도 하고, ‘멜로디에 묻혀 어떤 가사를 썼는지 잘 몰랐다’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시청자였던 나도 내가 즐겨 듣던 노래 가사를 보고 경악했으니 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노래를 들을 때 노래 가사 말을 찾아서 보기보다는 멜로디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멜로디에 집중했던 내 듣기 습관은, 노래 가사 말을 보고 실망하는 모습을 낳았다.
한 번씩 노래 가사를 보고 충격을 받을 때도 있었고, 가사를 보는 데도 ‘무슨 말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노래들이 많았다. 밖에서 누군가와 함께 이 노래에 대해 말하거나 부르기엔 부끄럽지만, 멜로디는 참 좋은 곡들이 많았다.
돌이켜 보면 ‘숨듣명’이란 단어가 없었던 그 순간에도 나만의 숨듣명이 있었다. 모두 자기만의 숨듣명을 품고 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숨듣명’이란 단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숨듣명이 휴대전화으로,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전파되었다. 숨어 듣던 사람들이 양지로 나오니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여론은 노래 가사에 관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노래 가사에 관련된 예능이라 하면 빠질 수 없는 예능이 또 있다. 바로 tvN의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이다. 도레미 마켓에서는 노래를 듣고, 가사 말을 맞추는 게임을 진행한다. 그만큼 가사 말을 사람들은 꼼꼼히 듣는다.
패널들은 가사 말을 보고 ‘영화처럼 아름답다’라고 감탄하기도, ‘이거 노래 가사로 사용해도 되는 거야?’라고 경악하기도 한다. 덮어놓고 듣기만 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몰랐을 노래의 속사정이 드러난 것이다.
한 번씩 노랫말을 다루는 예능에서 작사가와 전화통화를 할 때가 있다. 그때 ‘왜 노래 가사를 이렇게 지으셨나요?’라는 식의 질문을 하면, 대다수 작사가는 ‘그 당시에는 뜨고 싶었다.’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소리가 예쁘게 나는 대로 작사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예능을 보다 보니 노래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한국 음악 중 이렇게나 많은 곡이 ‘숨듣명’으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예능이 있어 앞으로의 노래 가사는 좀 더 좋아지겠지라는 희망도 생겼다. 음악 예능을 매개로 노래 가사에 대한 공론장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요즘도 나는 노래를 듣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그리고는 좋아하는 노래를 튼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까지 지나쳐온 노랫말을 좀 더 유심히 듣고, 유심히 읽는 것이다. 앞으로는 의미 없는 가사들 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가사를 가진 곡들이 더 많이 발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전문 보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