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맛은 무엇입니까 - 책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을 읽고
우리 삶에서 고통은 빠질 수 없다. 소소하게는 내 의견을 거절당하는 것부터, 크게는 사업에 실패하는 것까지. 우리는 고통의 질곡에서 살아간다. 고통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좋은 기회로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 라임>을 읽었다. 책은 총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이야기의 인물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르게 마주한다.
어느 날 한 여자가 식당에 혼자 왔다. 그리고는 주문한 레몬청 한 병. 그녀가 무언가를 쓰는 것 같기도, 혹은 우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식당 알바생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독자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여성의 고통을 파편적으로, 그리고 단면적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그녀에게 건네줄 수 있는 것은 레몬청에 필요한 따뜻한 물 뿐이다.
코를 막고 레몬 조각에 이를 깊이 박아 보았다.
강렬한 신맛에 입 안이 아렸다.
레몬차를 마실 때에는 달달한 설탕이 레몬의 신맛을 가린다.
그렇지만 음미하다보면
문득 날카로운 신맛이 혀를 찌른다. p.23
그녀는 총 13잔의 레몬차를 마셨고, 시간이 흐른 후 화자는 레몬청을 만드는 법을 배우며 그녀를 떠올린다. 이야기는 끝이 난다.
단맛의 설탕이 신맛의 레몬에 스며들기까지 일정 기간을 가만히 두어야 하는 작업. 나는 레몬 청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과 고통이 혼재되어 있으며, 고통스러운 기억 위로 행복했던 기억이 쌓이기 때문이다.
레몬 청은 결국 고통을 행복으로 감싸 안은 형태라 생각한다. 첫맛은 달달하지만 끝은 신맛이 감도는, 설탕에 절인 레몬 조각처럼 말이다. 하지만 레몬 조각을 씹을수록 그 특유의 신맛이 피부에 스며들 듯, 우리의 인생에서도 고통을 곱씹을수록 주위의 행복은 가려지고 만다.
글에서 여자는 레몬 조각을 형태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근잘근 씹었다. 그녀는 과연 무슨 마음으로 레몬 조각들을 꼭꼭 씹었던 것일까. 우리는 그녀가 아니기에 그녀의 심경을 알 수 없다. 그녀에게 레몬 청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화자처럼 말이다.
이 글에서도 화자는 제삼자로 설정되어있다. 상담사의 관점에서 내담자의 고통을 들여다본다. 특이한 점은 내담자에게 신맛으로 충격요법을 하는 ‘핑거라임 요법’ 상담사라는 것이다.
핑거라임에 익숙해지면
보다 큰 자극,
보다 큰 고통이 필요해지고,
근본 원인을 고스란히 남긴 상태로
문제를 덮어버리는
악순환의 고리만 굳어진다.
우리의 의도는 일시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지,
도피성 짙은 방어 기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p.53
이 이야기에서 핑거라임은 다른 고통을 덮어주는 자극으로 표현된다. 내담자는 적정량 이상의 핑거라임을 원하고, 상담사는 이를 말린다.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내담자는 더 큰 자극을 갈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상담사는 내담자와 거래를 하고, 내담자의 귀마개와 상담사의 핑거라임은 비밀리에 교환된다.
처음에는 내담자와 상담자가 서로 분절돼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은 도움이 필요해 보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을 도와주는 입장이니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소리를 통해 그 선을 없앴다. 소리 때문에 고통받던 내담자와 사람들의 하소연을 매일 듣는 상담사는 필요 이상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의 선은 사라지고, 그들은 고통 앞에서 동등한 위치로 그려진다.
핑거라임은 자신의 고통을 지우기 위해 다른 고통을 갈망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행복에 눈을 감은 사람들을 그린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나는 예전에 유행했던 ‘소확행’이란 단어를 참 좋아했다. 자기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행복함을 느끼는 것. 어쩌면 우리는 행복을 너무 거창한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은 우리 주변에 있어”라고 하지만 “그 행복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찾아봐”라고 하지 않는다. 행복을 느끼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이 고통에 점철되지 않게, 내 주변의 작고 소중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자주 챙겨보는 유튜버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귤 같은 인생”. 신 귤을 주무를수록 에틸렌이란 성숙 호르몬이 나와 단맛이 증가하는 것을 보고 떠올렸다고 한다. 귤이 스트레스를 받아 성숙해지듯, 우리도 일정한 고통을 받으며 성숙해진다며 말이다.
우리는 늘 행복할 수만은 없다. 살아가면서 늘 따라오는 두통에 시달릴 것이며, 어쩌면 가슴 터질듯한 슬픔도,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이 있기에 우리의 행복이 더 소중해지는 것이 아닐까.
두 가지 다른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나의 신맛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혀가 아릴듯한 신맛이 나는 핑거라임인지, 혹은 달콤함 속에 숨은 신맛이 나는 레몬 청인지 생각해봤지만, 나의 신맛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나의 신맛은 달콤하지만, 그 뒤로 씁쓸한 맛이 감도는 자몽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의 신맛은 어떤 향일까’하고 고민하며 책을 덮는다.
[원문 보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