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홈 딸
직장이 멀어서 큰 아이와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던 작은 애가 인천으로 발령을 받아 컴백홈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 나갔던 딸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가족 1호는 헤벌쭉 웃으며 딸이 집에 온 것이 마냥 좋기만 한 아빠의 모습입니다.
"엄마 김치찌개는 역시 맛있어~"
"구~~ 래? 엄마표 찌개 괜찮지?"
평소 요리실력은 꽝이지만 엄마가 만든 김치찌개는 최고라며 엄지 척을 해주는 딸 덕분에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어릴 쩍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항상 식탁에 책을 쌓아놓고 읽던 아이였어요.
엄마의 책 읽기 지도를 거부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의 독서 욕심에 기쁨을 보태어 주던 딸이었지요.
어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고부터는 바쁘다는 핑계로 책과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책 읽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그랬었다는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졸업 후 취업을 하고부터는 책 읽기와 많이 어색해진 사이가 되었었지요. 이유는 바쁘다는 핑계였고,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해진 현실이기도 했어요.
피곤에 절었을 땐 TV를 틀어 놓고 멍하게 화면을 보면서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 딸도 그런 상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새로 맡은 업무가 버겁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예전 같으면 잔소리를 퍼부었겠지만 이제 20대 후반 성인이 된 딸에게 집에서는 휴식을 주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마음속에서 올라와 입안에서 우물쭈물하는 충고를 포장한 잔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많이 아주 많이 참고 있는 인내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책을 읽으면 네가 하는 고민들이 조금은 풀릴 수도 있을 거야"
"엄마도 그랬어. 그런데 지나가면 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더라. 그 순간을 잘 지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우~~ 웅 알았어요"
딸은 어릴 적부터 미주알고주알 모든 일들을 엄마에게 얘기해 주고 함께 수다를 푸는 친구 같은 아이였습니다. 아들만 있는 집 친구들에게 조금은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는 이유도 이러한 것들 때문이지요.
다행히 우리 아이들이 모든 걸 아니 대부분의 엄마가 궁금해하는 일들을 함께 공유해 주는 듯해서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책 읽으라고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면 가족들은 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쓰는 글에 자신감이 없었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이들과 떨어져 있다 보니 엄마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 넌지시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댓글을 써주지 않으니 아이들이 내 글을 읽어 보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일단 저의 일상을 오픈하였습니다.
딸이 집으로 들어왔으니 이제는 자연스레 엄마의 일상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항상 피곤에 절어서 아침 기상을 힘들어하던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는 모습을 볼 테니까요.
예전 식탁에서 책을 보며 쫑알쫑알 질문을 퍼붓던 그 어린 시절의 우리 딸의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앞으로 얼마동안 이렇게 우리와 함께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생활하는 동안 예전 책 읽는 수다쟁이 딸의 모습이 보고 싶어 집니다.
요란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습니다. 어제 빛나던 아침 햇살 대신 빗소리가 아침을 열어줍니다.
딸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출근할 수 있도록 뭐라도 챙겨봐야겠습니다.
이쁜 딸과 엄마의 새로운 시작이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지도록 아침을 준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