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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14. 2023

제35화 비를 맞으며 함께 걷는 길

사리아(Sarria)~포르토마린(Portomarin)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93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29.5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걷기 9일 차(29일 차)

#사리아(Sarria)~포르토마린(Portomarin)

#24.8km / 7시간 17분

- 누적 : 732.5km / 799km

#숙소 : Pension Portomino 45유로, 2인실

- 포르토마린 제일 뒤쪽에 위치. 싱글 침대 2대, 샤워실은 별도


고대 도시 사리아(Sarria)

사리아 인근은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고인돌을 비롯한 역사 이전 시대의 유적들과 켈트족 문화유적에 이르기까지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된 곳이다. 1200년 경 레온 왕국의 알폰소 9세가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비야노바 사리아라고 불렀다는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사리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를 숙소로 잡았다. 길가 양편으로 알베르게가 줄지어 있는 걸 보면 이곳도 순례객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리아에 많은 순례객이 모이는 이유가 있다. 이곳에서 콤포스텔라까지는 120km 정도인데,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를 하면 순례인증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짧은 구간을 순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이곳에는 블로그에 꼭 가봐야 하는 곳 두 곳이 소개되어 있어 있다. 하나는 빵집이고 다른 하나는 스테이크 가게다. 빵집(Panadería Pallares)은 1876년부터 147년의 전통을 가진 곳이고, 스테이크 가게(Restaurante Parrillada)는 구운 고기, 립아이, 갈비, 락소, 송어 등을 전문으로 하는 사리아(Sarria)식 바비큐를 하는 곳이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서 있는 빵집까지 걸어갔더니 이미 문을 닫았다. 오늘(10.12)이 스페인 국경일이라 오후 두 시에 일찍 문을 닫았다. 원래는 저녁 아홉 시까지 운영한다. 스테이크 가게도 줄 서서 먹는 집이라 해서 잔뜩 기대를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더니 7:30 오픈인데 15분 전인데도 인기척이 전혀 없다. 이곳도 국경일이라 운영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허탕. 유럽 쪽으로 여행할 때는 휴일을 잘 챙겨봐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24시 운영’은 찾기 어렵다.


비를 맞으며 걷다

7:15, 아침 기온은 18도로 어제 아침보다 더 높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밖으로 나가 확인을 해 보니 비는 아직 오지 않고 바람만 많이 분다. 배낭 제일 밑에 있던 판초우의도 꺼내 놓고, 배낭 덮개도 씌우고, 스패치도 착용하고 길을 나선다.


길은 시내 중심으로 가지 않고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 초입의 좌측으로 나 있다. 중간에 긴 돌계단이 있고 돌계단을 지나서도 여전히 오르막이다. 오르막 양편으로도 알베르게와 카페가 많다. 순례객이 많이 모이는 곳답게 일찍부터 문을 열고 영업을 한다. 비가 올 것이라는 걸 아는지 비옷도 내놓고 판매하는 곳도 있다. 오르막 끝에 SARRIA라고 커다란 조형물이 있다. 기념사진을 찍기에 좋다.


2.2km에 성당이 있다. 길은 성당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성당 옆을 지나 직진하고서는 다시 돌아온다. 왼쪽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서 작은 돌다리를 지나면 두 갈래길이다. 대부분은 그냥 직진 방향으로 숲길을 따라간다. 3.3~3.7km 짧지만 경사가 가팔라서 힘들다. 힘겹게 올라가면 들판에서 부는 바람이 땀을 모두 훑어간다.

바람이 강하게 분다. 비를 품은 바람이다. 하늘에는 구름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 코스에는 카페가 중간중간에 있어서 쉬어가기에 좋다. 길의 후반부에는 커피와 음료수, 간식 자판기가 있는 무인카페도 여럿 있다. 더위나 비를 피해 잠시 쉬어가도 된다.


8km, 두 시간 반을 걸은 뒤, 비가 오기 시작한다. 준비한 판초우의를 꺼내 입는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아니라 강한 바람과 함께 몰아치는 비다. 다행히 비의 양의 많지 않아 걸을만하다. 코스가 끝날 때까지 비가 오락가락해서 판초우의를 입었다 벗었다 한다.


함께 걷는 사람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이들 중에 놀라운 사람들이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오래 걸어서 불편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원래 몸이 불편한 사람도 순례길에 서 자주 보게 된다. 산을 내려오는 중에 뒤에서 보니 왼쪽으로 넘어질 듯 걷는 노인분이 있어 배낭을 잡아주니 괜찮다고 오히려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분은 그나마 아내와 동행이지만 오른쪽으로 기울어 걷는 분은 내내 혼자다. 저런 몸으로 배낭을 메고 콤포스켈라까지 걷는다는게 가능할까 싶다. 이분들은 아마도 몸의 한쪽에 마비가 있는 듯하다.


앞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도 걷는다. 남녀가 함께 걷는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는 부부인가 했는데, 도중에 여러 커플이 보이는 걸 보아서는 어떤 단체에서 온 듯하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사람과 걷고 있길래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총 여섯 커플이 왔고, 안내자와 맹인 파트너를 매일 바꾼다고 한다. 카카벨로스에서 출발했으니 7일 정도 소요되는 일정이다. 두 사람은 30cm 정도의 가느다란 링을 잡고서 걷는다. 두 사람 모두 존경스럽다고, 걷기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고 했더니, 맹인 분이, 자기는 러너라면서 별로 힘들지 않다고 씨익 웃는다. 그러면서 훌쩍 앞서 간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테고, 또 아무 이유도 없을 수도 있다. 길을 걷는 내내 그 이유를 찾아보려 애써기도 한다. 저들을 보면서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이 길이 치유의 힘을 가졌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몸이 불편한 저들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마도 저들은 그런 기적을 바라지도 않겠지만.


오레오와 너와 지붕

갈리시아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작은 집 모양의 구조물을 볼 수 있다. 돌, 벽돌,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거의 집집마다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옥수수 등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로 <오레오 Horreo>라고 한다. 쥐를 피하고 통풍이 잘 되도록 땅에서 약간 높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언뜻 보아서는 옛 건물의 일부가 남았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틈새로 옥수수가 보인다. 크기도 제각각이다.

이곳은 얇은 퇴적암을 쌓아 벽을 만들어 돌담과 집벽을 만든 집이 많다. 지붕을 보면 우리의 너와집과 비슷하다. 너와집은 기와 대신 참나무 껍질 등으로 만든 너와로 지붕을 이은 한국의 전통 집이다. 옛날 화전민이 사용했던 집으로, 맑은 날은 지붕 재료가 수축하여 통풍이 잘되고, 비 오는 날은 습기를 빨아들여 빗물이 새는 것을 막는다. 지금은 거의 보기가 힘들다.


갈리시아 지방에는 너와집과 비슷하게 지붕을 얹었다. 자세히 보니 나무가 아니라 돌이다. 담장을 쌓은 것보다 더 얇고 납작한 돌을 겹치게 이어서 지붕을 얹었다. 북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과 한겨울 눈보라를 이겨내는 이곳 사람들의 지혜의 산물이다.

포르토마린이 보이는 언덕은 제주도의 밭담을 닮았다. 담을 쌓은 돌의 모양이 다를 뿐이다. 비가 오는 이곳의 풍경이 그래서 더 정겹다. 이역만리 이곳에 사는 사람도 우리네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사는 게 뭐 별건가.

포르토마린으로 들어가는 길은 미뉴강(Rio Mino)을 넘어간다. 다리를 건너가면 길 끝 로터리에 돌계단이 있다. 이 계단은 2세기 로마인들이 만들었던 원래의 다리에서 유일하게 남은 부분인데 댐이 건설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져 포르토마린의 상징이 된 것이다. 계단을 오르면 아담한 니에베서 성모 경당(Capela das Neves)이 있다. 여기서 순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포르토마린에 도착한다.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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