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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pr 25. 2019

제1화 해외여행을 또 가는 이유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가는 날

고통의 추억

좀이 쑤신다. 엉덩이에 불이 나는 듯하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Suvarnabhumi Airport)에서 탑승하여 9시간을 넘게 좁은 좌석에 앉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중간 기착지인 취리히 공항(Zurich Airport )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1시간을 더 가야 한다. 거기서 한 시간 반을 기다렸다가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갈 예정이다. 취리히에서 바르셀로나의 엘프라트 공항(Aeropuerto Josep Tarradellas Barcelona-El Prat)까지 1시간 40분이 소요되니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13시간이 넘는다.


자리가 넓은 비즈니스 석에 앉아서 가면 좀 더 편하겠지만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그런 호사를 누릴 형편은 되지 못할 것 같은데, 그렇게 내 사정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게 비행기 안에서의 긴 시간이다.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맥주 마시고 살짝 취해 잠을 자도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 간다. ‘다음에는 이렇게 멀리 가는 여행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또 일을 만들고 만다. 


방콕에서 살고 있는 지금, 9일간의 긴 연휴가 생겼다. 태국은 송크란(sonkran) 설날이자 축제가 있다. 요즘은 설날의 의미보다는 축제의 의미가 더 강하다. 가장 더운 4월 중순, 3~4일의 휴일동안 길거리에서 물총놀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뒤 주말을 더하고, 하루이틀 휴업일을 보태면 긴 연휴가 생긴다. 방콕에서 파견 근무를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시점이라 해외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여러 번 망설이다, 기회가 있을 때 가자 싶어서 결심하고 먼 길을 나선다. 

비행기를 타고서 서너 시간까지는 장거리 비행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 때문일까. 그러다가 5시간 정도 지나고 나면 스멀스멀 그 고통의 기억들이 엉덩이 어딘가에서부터 기어 나오고야 만다. 몸이 뒤틀리고 허리가 아프다. 종아리 근처도 뭉쳐서 욱신거린다. 일어서서 통로를 왔다 갔다 해보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해 보면 좀 나아지긴 하는데 고통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하루라도 젊을 때

그럴 때는 여행 생각이나 하는 게 상책이다. 눈을 감고 이번 여행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사그리다 파밀리아(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놀라움을 나도 느낄 수 있을까? 구엘 공원(Parque Güell )이 그렇게 이쁘다는데, 까사 밀라(Casa Mila)는 어떤 놀라움을 선사할까? 카탈루냐(Museu Nacional d'Art de Catalunya) 미술관에서 그동안 책에서만 봐왔던 그림들을 찬찬히 살펴봐야지. 아침은 커피랑 빵으로 여행의 분위기를 만끽할 거야.’ 그러다 살짝 잠이 들면 두 어 시간은 다행스럽게도 고통 없이 잘 지나간다.

자다가 잠시 깨어 스스로 위로를 한다.

 '그래도 지금 이 나이니까 이렇게라도 먼 길을 가는 거야. 한 10년쯤 지나 나이 육십을 넘기고 나면 장거리 비행도, 오래 걷는 것도, 외국 음식을 먹으며 지내는 것도 더 힘들어질 거야. 그러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보다는 집에서 편하게 쉬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더 들 거야. 그러니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가자, 지금이 제일 좋은 나이, 좋은 시기라고 생각하며 즐기자. 여행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리에 힘이 남아 있을 때 가야지. 이까짓 엉덩이의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자, 이제 여행의 즐거움만 생각하자.' 


어쩌다 공항이나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면 참 대단하다 싶다. 은퇴한 나이가 되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시간도 많아지니 여행을 떠나기는 쉽다. 일과 직장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마치 스스로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열심히 다닌다. 하지만 체력이 문제다. 근력이 약해지고 무릎과 허리 등 관절이 건강하지 못해 오래 앉아서 가는 긴 비행은 힘들기 마련이다. 전망 좋은 좋은 호텔이나 햇살 좋은 해변에서 며칠 쉬다가 오는 여행이면 몰라도, 미술관, 박물관, 성당, 유적지를 돌아보는 여행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곳은 언제나 관광객이 많기 마련이라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공항마다 수속을 밟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짐을 맡기고 찾고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좋은 여행으로 마음먹기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은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큰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여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자. 

‘하루 종일 바쁘게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사진 찍고, 맛집 찾아 인증사진 올리는 여행은 하지 말자.’

‘좀 느리게 걷고, 더 천천히 보고, 맛을 더 오래 음미하면서 시간을 온전히 즐기자.’

'남들에게 자랑하고 보여주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에게 시간을 주는 여행을 하자.'

그런 여행을 하면, 젊은 시절 보지 못했던 것, 느끼지 못하던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낯섦을 만나는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콩닥콩닥거리게 만든다. 나이 생각쯤은 저만치 날려 버린다. 김치찌개, 삼겹살 생각은 한 열흘쯤은 꾹 눌러 버릴 수 있다. 한 사람 몸이 겨우 들어가는 호텔 샤워실의 불편도 능히 감수할 수 있다. 다리 아프면 자주 쉬면 되지. 좋은 여행으로 마음을 고쳐먹으며 살며시 다시 잠에 빠져든다. 


꿈이었을까? 하루종일 걷는다. 다리가 아파온다. 다시 엉덩이가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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