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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pr 19. 2018

커피_커피잔에 담긴 일상

 커피는 일상이다


 “커피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탄베 유키히로가 쓴 『커피 과학 (2016, 황소자리)』의 본문 첫 문장이다. 커피를 매일 직접 갈고, 내리고, 마시고, 때로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한 번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지 않았다. ‘커피는 나에게 뭐지?’ 그저 취미활동인가? 아니면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듯 생물적인 욕구에 따라 마시는 음식일 뿐인가? 매일 커피를 마시고 사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 봤다. 좀 그럴싸하고 멋있는 뭔가가 없을까 여러 날을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어이없게도 그냥 ‘일상’이다. 커피는 나에게 일상이다.


커피는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라, 매일 아침을 함께 시작하고, 피곤하고 나른 한 오후를 함께 보내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없는 듯이 늘 한자리를 잡고 있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옆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무다. 이 녀석은 특별하지는 않지만 곁에 없으면 금방 빈자리 티가 난다. 커피 한 모금이, 그 달콤 쌉쌀한 맛이 간절해지던 때를 막상 커피가 곁에 없으면 얼마나 허전한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는 일상이다. 커피는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함께 시작하고 보내는 동반자이다. 그러니 그가 없으면 불안하고 허전해진다. 시시한 듯한 일상이 그렇듯이.

< 집에서 기르는 커피나무 >

  우리는 일상을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일상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이유로 인해 일상이 흐트러지거나 깨져버리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감기몸살에 걸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끼니마다 밥을 먹는 것도, 학교를 가거나 직장을 가는 간단한 일상을 보내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때가 되면 그저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워진다. 때론 지루하고 의미 없어 보이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가족이나 동료의 일상이 무너지는 일이 생겨도 마찬가지다. 늘 내 옆에 있을 것 같던 부모형제나 자녀, 무덤덤하던 옆 자리 동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긴다. 

일상은 나 혼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 그 관계를 연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씨줄과 날줄, 그리고 커피. 그때 문득, 일상이 특별한 것이라는 역설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혹자들은 일상이 소중하다고 하고, 행복은 바로 일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커피 한 잔의 일상

커피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고 제각각이다. 집에서 커피메이커로 내려서 마시는 사람도 있고, 아침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서 마시는 사람도 있다. 직장 내에 카페가 있는 경우도 있고, 근처에 커피 전문 카페들이 예전보다 많아져 커피가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가까이에 있는 커피를 마다하고 멀리 있는 커피를 찾은 이들도 있다. 커피 마니아들 중에는 테라로사나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이 있는 강릉까지 커피 한 잔을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주말에 커피 향에 이끌려 강릉으로 내 달리면 푸른 동해바다의 풍광은 덤이다.


나는 아침마다 커피를 직접 내린다. 틈틈이 로스팅 해 놓은 커피를 그라인더로 갈고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신다. 처음에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매일 하다 보니 손에 익어 그런지 이젠 자연스럽다. 

사실 아침에 커피를 매일 내리는 번거로움 보다는 그 이전 과정이 더 힘들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만들려면, 우선 생두를 구입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주로 구입하는데, 요즘엔 수입되는 종류가 많아 기호에 맞는 생두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케냐 AA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산 커피 경우만 하더라도 르완다, 말라위, 부룬디, 에티오피아, 예맨, 케냐, 탄자니아 등으로 다양하다. 구수한 맛과 향기로 인기가 높은 에티오피아 종에는 G1 시다모 구지(바야/보카소/이과바예/헤보/헤아바), G1 예가체프, 예가체프 데베칸, 빌로야, 첼레케투, G1 훈쿠테 등 이름이 생소한 것들이 많다. 사실 아마추어 입장에서는 대륙별(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생두도 구분하기 힘들다.


생두를 구입한 후에는 로스팅 과정이 기다린다. 가정용 소형 로스터기를 가지고 있는데, 한 번 로스팅할 때 250g씩 12분 내외로 네 차례 정도 1kg을 로스팅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생두에 포함되어 있던 수분이 빠져 850g 정도가 된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는 대략 15∼20g 정도의 커피가 필요하니, 한 번 로스팅 하면 40∼50잔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양이 된다. 그러니 한 달에 2∼3번 정도는 로스팅을 해야 한다. 


로스팅하기 전에 생두를 꼼꼼히 살펴서 벌레 먹었거나 모양이 이상하거나 상한 것들은 먼저 가려낸다. 이런 과정을 핸드픽(Handpick)이라고 한다. 원두에 상한 것들이 섞여 있으면 잡맛이 난다고 하니 열심히 골라낸다. 그래야 로스팅도 고르게 된다. 몇 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커피 맛의 생명은 로스팅에 있다. 어떤 이들은 드립(Drip)에 있다고도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로스팅이 맛을 좌우한다.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피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강하게 로스팅하면 쓴맛을, 약하게 하면 신맛을 더 즐길 수 있다. 로스팅의 정도를 ‘배전도’라고 하는데, 미국 기준으로 가장 약한 단계인 라이트에서 제일 강한 이탈리안까지 8단계, 일본의 경우는 약배전, 중배전, 강배전으로 3단계로 나눈다. 예민하고 섬세함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의미다.  

< 로스팅 하기 전의 생두 >

    스톱워치로 정확한 시간을 재어가며 로스팅을 하지만 생두의 원래 상태(크기, 수분 함양 등)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로스팅 과정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투명 유리로 들여다 보이는 커피콩의 색깔의 변화를 세심하게 지켜봐야 한다. 강릉의 보헤미안의 박이추 선생은 로스팅할 때는 끼니도 로스팅 기계 옆에서 할 정도라고 하니 로스팅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짐작이 된다. 로스팅 후에는 쿨러(Cooler)로 재빨리 식히고, 그런 다음 한 번 더 핸드픽을 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새까맣게 탔거나 덜 익은 콩, 갈라지고 깨진 콩들을 들어낸다. 그 후에는 유리 밀폐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로스팅 직후의 커피가 맛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로스팅 후 이틀 이내의 커피는 맛이 밋밋하고 때로는 원두의 비릿한 맛이 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커피 특유의 바디감이 없다. 3~4일 정도 밀폐 용기에서 숙성을 시킨 후, 2주 이내에 먹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야 커피가 가진 단맛, 쓴맛, 신맛 그리고 과일향 등 다양하고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2주가 지나면 산폐가 일어나 맛이 변형되기 쉽다. 로스팅한 커피 원두에 기름 성분이 베어 나오면 산폐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이제 드립을 할 차례다. 드립을 할 때는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 대개 85~90도 정도의 물을 사용하는데 온도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로스팅의 정도, 커피의 양, 커피 가루의 굵기에도 영향을 받는다. 여러 번 시도를 해 보면서 자기 나름의 포인트를 찾는 게 과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시는 커피가 맛있을까? 번거롭고 까다로운 과정이긴 하지만, 자신의 기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재밌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커피는 틀림없이 맛있다.


커피를 마시면 건강에 좋은가

  물론, 모든 사람이 커피를 맛있어하고 좋아하는 건 아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만의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커피를 전혀 마시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커피가 너무 자극적이라거나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든지, 잠을 못 잔다든지 하는 사람들도 많다. 커피 맛에 대한 호불호뿐만 아니라 커피가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여러 가지다. 하루 한 잔 정도의 커피는 혈액순환이나 소화에 좋다고도 하고, 건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커피 과학]의 저자 탄베 유키히로는 교토대학교 대학원 약학연구과에서 공부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현재 시가 의과대학에서 암에 관한 유전자학 및 미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커피에 대한 그의 책은 커피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는 커피와 건강 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몇 가지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2년 네덜란드 연구자가 커피 음용자는 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이 낮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메타 분석에 따르면 커피 섭취량이 하루 한 잔 늘어날수록 약 20% 간암 위험 저하가 있다.’

‘방광암과 관련해 하루 한 잔으로 위험이 35% 상승한다는 메타분석 결과가 있다.’

‘심장질환과 노졸증 위험은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오히려 소량~중간 정도 마신 사람이 낮게 나타났고, 하루 3~4잔을 변곡점으로 하여 섭취량이 증가하면 위험 상승 쪽으로 향하는 U자형 용량-반응 곡선이 된다.’

‘2012년, 총 40만 명을 12년간 추적 조사한 NIH(미국국립위생연구소)의 대규모 코호트 결과 커피를 마시는 집단의 조사기간 총사망률이 전혀 마시지 않는 집단보다 낮았다.’

< 강릉 보헤임안 박이추 선생이 내려 준 커피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커피는 건강에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둘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좋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즐거움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저 즐기면 그뿐이다. 추운 겨울의 커피 잔으로부터 전해오는 따뜻함과 더운 여름날 아이스커피의 알싸한 시원함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여유가 된다면, 각자의 기호에 맞는 커피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고, 때로는 커피 맛의 마법을 부리는 특별한 바리스타를 찾는 커피 여행도 해볼 만하다. 하루를 같이 하는 커피와의 새콤달콤한 일상이 그저 지금처럼 주어지기를, 늘 그러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은 아니지 않나. 커피와 함께하는 일상을 오늘도 감사히 여기며 커피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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