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보내드렸다.

영원한 안녕이라는 마침표.

by 세명

오늘도 다른 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아침 9시까지 초등학교 돌봄 봉사활동을 가야 하지만 금요일인 지금까지 월요일에 일본에서 귀국한 직후 쭉 앓고 있던 감기 녀석이 썩 가시지 않아 봉사활동을 못 간다는 전화를 하려고 할 즈음이었다.


“오늘 엄마 어디 가야 할 곳이 있어”

“어디?”

“그냥 있어. 몸도 안 좋으니 집에서 동생이랑 쉬고 있어”


엄마는 그렇게 뒤돌아 본 채 설거지를 하셨다. 도대체 어디길래 숨기려고 하는지. 궁금증이 서려 계속 물어봤다.


“어디 가려고 하는데?”

“... 할머니 물품 소각.”

“그곳을 왜 혼자가?”

“그런 험한 곳을 왜 따라가려고 해”

“험한 곳인데 그럼 왜 혼자 가려고 해”


그곳에 가 혼자 눈물을 훔칠 엄마 생각과 돌아가신 지 2년이 어느새 넘은 할머니의 아직 다 치우지 못한 방을 쳐다보며 어쩌면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씨구”


엄마는 설거지를 계속했다. 혹시나 늦장을 피우면 엄마가 혼자 떠날까 싶어 자고 있는 동생을 깨워 준비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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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용인에 있다고 했다. 집에서는 차로 대략 1시간 40분 거리. 엄마가 운전을 하고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그렇게 서울을 지나 분당을 지나 어느새 용인에 왔고 용인의 끝자락, 거의 산골짜기에 이르러 내비게이션이 도착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동도사라는 절이었다.


“엄마, 절이었어?”

“글세, 나도 방금 알았어”


절에서도 태우나 싶었다. 살아계실 적 불교의 교리를 좋아하셨던 할머니를 위해 세례명이 마리아인 할머니를 이곳으로 모셨나 싶었지만.


전화를 걸자 담당자는 절로 올라오라고 했고 우리는 추운 몸을 이끌고 절로 올라갔다. 이때의 날씨는 영하 16도였다.올라가자 보이는 조그마한 소각로와 옷을 단단히 껴입은 할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이렇게 태우실 줄은 몰랐어요”


우리를 보자마자 담당자가 하는 말이었다. 하긴 집에서 출발하기 전 확인차 전화를 2통이나 하던 그였으니, 이 추운 날 1시간 정도 걸리는 소각을 하는 사람들이 어지간히 대단해 보였나 보다.


“그러게요, 왜 이렇게 추운 날 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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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각하는 장소는 참 특이했다. 참으로 신기했던 것은 절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각로 옆에는 유품을 소각할 때 불교, 기독교, 천주교 별로 하는 방법이 벽에 붙어있던 것이었다. 어쩌면 죽은 자에게 그 어떤 종교를 구애하지 않고 단순히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 평안하기만을 빌어주는 듯한 일종의 배려 같았다.

소각로에 불이 활활 피어올랐다. 물품을 집어넣기 전 담당자는 우리에게 기도를 하라 했다. 기도가 끝났다고 말하자 그는 엄마가 미리 보내 둔 박스를 하나씩 열어 그 안에 있던 물품을 소각로에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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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물건을 꺼낼 때마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생전에 할머니가 쓰시던 오래된 이불, 병실에서 쓰시던 내가 과거에 선물 받은 담요, 할머니의 손수건등이 하나하나 불씨로 타올랐다.


눈물이 흘렀다. 울지 않기로 다짐했고 이미 오래 지난 일이라 울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다. 생전에 그리 ‘화통 삶아먹은 목소리’라고 자랑하시며 본인은 ‘백 년 묶은 구미호’가 되지 않으리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당신의 모든 삶을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당신의 극히 일부분은 모든 것이 힘들었고 순탄치 않았기에 보내는 사람은 여전히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담당자는 엄마에게 할머니가 살아생전 4계절 내내 거르지 않고 입으셨던 재킷을 잘 가시라는 의미로 소각로에 집어넣으라고 했다.재킷을 소각로에 던지며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모든 눈물을 위로할 수는 없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옆을 지키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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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물건이 타오르는 것을 지켜봤다. 그 소각로 속에 태워지는 물건들이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하긴 주인 없는 물건들이었으니 본래 자신들의 역할은 이미 끝났었지만.

하나하나 물건을 넣을 때마다 활활 불길이 타올랐지만 이내 점점 식어져만 갔다. 그 불길을 보며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낯 인간일 뿐인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살다가 타오르는 불길처럼 열정적이게 살다가 가는 것. 사실 저렇게 활활 타 올라나 봤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저렇게 타오를 수 있는 힘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뜨거운 불길로 인해 차가운 생명들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졌는지, 나는 그런 존재였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런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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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할 물품들이 다 타자 담당자는 다 끝났다며 소각로의 불을 껐다.

“ 이제 마지막으로 차에 타셔서 이 절을 떠나시기 전에 창문을 조금 내려서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시고 떠나세요. 후회 없이, 걱정 없이 잘 가시라고요”

우리는 휴게실에 들려 잠시 몸을 녹였다. 영하 16도의 날씨에 밖에 있었으니 비록 소각로 옆이더라고 발은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그리고는 빨리 차에 타 다음 목적지를 모색했다. 어느덧 3시. 점심을 먹지도 못했으니 어지간히 배가 고플 만했다.

운전대를 매고 절을 내려가는 내리막길에서 엄마는 창문을 조금 내렸다.

“애들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하자. 속으로 해도 돼”


밖으로는 부끄러워 내뱉지 못해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동생이 창문 밖으로 크게 소리쳤다.

“할머니! 사랑해요!”

그러자 엄마도 소리쳤다.

“엄마! 고마웠고 미안해!”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쩌면 정말 고마웠고 미안한 감정, 그리고 이제서라도 보내드리는 후련함이라 할까.


그렇게 우리는 그 장소를 떠났다. 절에서 바로 보이는 이동저수지의 꽁꽁 얼어붙은 모습은 절경을 이루었다. 어쩌면 할머니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평안히 보내드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토대로 용기 내어 그때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꺼내보려고 한다.

“할머니, 엄마랑 동생, 그리고 다른 가족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할머니의 말씀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