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할머니
다같이 외쳐, 코리안 잼!
교회를 갔다가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뒤뚱 걸음으로 걸어오신 할머니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말을 걸었다.
“ 어디 가슈 ”
“ 홍제역이오"
“어이쿠! 잘 됐네 나랑 같은 거 타면 되겄다”
그리고 할머니는 신나 얼굴로 갑자기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말을 거시는 경우는 가장 흔한 이유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기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듣이 들었다.
“내가유 유방암이랑 췌장암이 있어유."
“아 그러시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근디 이렇게 수술을 다 받고 다 나았당께요. 이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여요"
아마 그 할머니도 나와 같은 교회인 것 같았다. 어쩐지 자세히 보니 언뜻 교회에서 마주친 기억이 있는 것도 같다. 암튼 할머니는 본인의 수술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다가 암을 발견했고 어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그 치료를 다 받고 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걸어가다가 자갈밭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치게 되었고 그 즉시 119에 실려갔다가 치료를 받고 다 나았지만 아직까지는 다리가 많이 아파서 양말이 자극이 되어 양말도 잘라신는다며 바지를 걷어 다리를 보여주신 후 이제서야 조금 후련하셨는지 그 사건들이 어느덧 1년이 지났다는 이야기였다며 마무리를 하셨다.
어찌나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까 하며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또
“내가유 저기 이태리를 간 적이 있어유. 그때 내가 수술을 하고 낭께 뭘 함부로 못 먹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때 된장이랑 고추장이랑 청국장을 챙겨가서 거기 식당서 막 펼쳐놓고 먹으니까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거에유”
라며 깔깔 웃으시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이제 공항에 들어갈때유 내 손가방에다가 청국장을 넣어서 가져갔는데 이제 그 공항 검색대에 딱 걸린거에유. 그래서 그 외국인 젊은 놈이 나한테 가방을 열어보라고 이렇게 쳐다보더라고"
할머니는 덩치 큰 험상궂은 외국인의 모습을 흉내 내며 또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내가유 노우! 노우! 이렇게 외쳤지. 그랬더니 그 외국인이 계속 열어보라고 막 실랑이를 항께 내가 그 양반한테 가방을 줬지유. 그 외국인이 가방을 딱 영께 가방 안에 청국장이랑 뭐 시기들이 막 들어있잖아, 그래서 그 외국인이 이게 뭐냐고 물어보길래 내가 코리안 잼! 코리안 잼! 이렇게 외치고 가방을 확 뺐고 뛰어갔당께요”
순간 너무 웃겨서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할머니도 웃으며 말했다.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그 외국인도 황당해갔고 나한테 순순히 뺏겨주더라고. 어이쿠 아가씨 지금 이렇게 웃고 있구먼. 보기 좋아유"
“네?”
“지금처럼 웃고만 살아도 시간이 부족해유”
갑자기 할머니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말했다.
“사람이란 말이에유 사는 방법이 참으로 간단하당께요. 내가 뭐 이것저것 겪고 살아보니까 딱 삶에서 필요한 지혜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유. 첫째, 지금처럼 활짝 웃기. 어서 다시 웃어 봐유! 코리안 잼!”
할머니의 코리안 잼 소리에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또 웃어버렸다.
“좋아유. 그리고 둘째, 나한테 어떤 일이 닥쳐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거에유.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그러려는 이유가 있는거니까유. 저기 버스가 오네유!”
그렇게 버스 정류장 할머니는 마을버스를 맨 처음으로 탔고 사람 많은 마을버스의 빈자리를 능력껏 찾아 앉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멀리서 서서 새로운 말동무를 찾은 할머니를 멀리서 바라보며 조용히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할머니의 말을 곰곰이 떠올려봤다. 할머니가 말한 것이 삶에서 가장 필요한 지혜 top 2는 아니지만 할머니의 삶 속에서는 그것들이 가장 큰 지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활짝 웃었던 기억이 별로 없고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나에게 닥친 그 일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요즘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패턴이고 나 의 삶의 패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록 나도 같은 처지이지만 이제는 정말 그러려니 받아들여보라고,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하는 것이 결국에는 나를 인정하고 진짜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활짝 웃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니 말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어르신이 말을 건다면 따뜻한 인사 한마디는 꼭 하자고. 갑자기 본인에게 재미나 슬픔이나 혹은 삶의 교훈을 주실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