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는 누구일까

by 세명

17_12._19의 기록


20일 새벽 4시, 나는 아주 가볍게 일어났다. 그리고 가볍게 머리를 깜고 가볍게 준비를 마쳤으며 가볍게 아침식사를 했다. 더 챙겨 먹을지 안 먹을지는 실습지 근처에 위치한 세븐일레븐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고민해봐야 할 사항이지만, 어째 어제저녁으로 먹으려고 했던 다이어트 바를 먹고 나니 나름 배가 찼다. 또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연속으로 탔으며 처음으로 편안하고 개운한 상태로, 이번 연도 안에서 가장 잠을 적게 잤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다. 그래, 글을 쓰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 두려운 마음에, 죄책감으로, 혹은 어쩌면 내 마음속 감추고 싶은 '그것'에 대한 믿음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쓴다.


어제 일이었다. 힘든 실습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과제를 제출하고 또 새로운 과제 준비를 하고, 요즘 정기적으로 받고 있는 학교 상담센터에서의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은 어중간한 오후 7시 15분. 그때 어떤 여자가 길을 지나가다 전형적인 ‘도를 아십니까’의 태도로 길을 물어봤다. 사실 처음에는 정말 단순히 길을 물어보는 것인 줄 알았다. 길을 물어보고 난 후, 그녀는 나에게 갑자기 코 수술을 하지 말라고 했다. 순간 ‘아,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지금 집에 가야 해서 잘 가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가며 자신은 덕을 쌓는 법,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수련하며 자신이 수련하는 절은 강원도 삼척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며 김밥 한 줄을 덕을 쌓는 셈 치고 사달라 했다. 뭐지 싶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마치 귀신에 홀린 듯이 알겠다고 하며 김밥을 사줬다. 그녀는 또 나와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였고 시간이 있냐 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나에 대한 대략적인 '서술'은 신기하게도 맞아떨어졌고 방금 심리상담을 마치고 난 후 더 말하고 싶었던 것들에 응어리가 진 상태에서, (마침 상담에서도 내가 현재 겪는 고민은 진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이상하게 끌렸다.


뭔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일말의 희망이었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 힘드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나 보다. 그녀는 나에게 생일을 물어보며 사주를 봐주겠다고 했고, 궁금한 점이 없냐며 나는 남성스럽지만 세심한 면이 있고 나이가 많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시기 질투를 이유 없이 받기 때문에 늘 겸손하게 살아야 하며 남에게 베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또한 외국에서는 나가 살지 말고 한국에서 살며 조직사회에는 어울리지 말고 프리랜서, 교수 등 남을 가르치거나 내가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군지 물어봤으며 내가 앞으로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야 하는지 말했고 현재 나의 상황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며 소화가 잘되지 않고 몸에 열이 많다고 말했다. 그때 또 한 명의 여자 일행이 왔다. 그녀는 나랑 동갑이었는데 나에게 공덕을 쌓아보라고 말했다. 공덕을 쌓는다는 것은 조상들과 지금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과정이며 조상님이 구천을 떠돌지 않고 하늘의 가장 위에서 편안하게 가시라고, 그러면 현재 안 풀리는 모든 것들이 잘 풀린다고 말했다. 자신이 산 증인이라고, 자신이 그렇게 하자 어머니의 고질병이 나았으며 집에서 새 나갔던 돈들이 다시 들어왔다고 말했다.


사실 딱 봐도 사이비였다. 그들은 그것에 미쳐있었다. 하지만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이상하게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아가씨는 이런 거 안들을 얼굴인데 이렇게 앉아있는 거 보면 조상님들이 앉혀놓는 거고 조상신이 아가씨 가족 중 아가씨를 선택한 거라고, 이제 아가씨 가문을 위해 공덕을 쌓아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에게 돈을 요구하였다. 공덕을 쌓으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통해 제사상을 차리고 그 돈으로 나는 덕을 쌓을 수 있다고 했다. 이상했다. 마치 지금 안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이 이후에 나쁜 일이 생기면 다 내가 그때 공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것만 같았다. 그들은 나에게 지금 당장 같이 가는 것을 요구하였고 나는 정말 황당하게도 알겠다고 했다. 평소의 나로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이것이 종교와 상관되는 것이냐고 물었고 그들은 사이비도 아니고 장기 매매도 아니며 심지어 성매매도 아니고 단지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종교가 아닌 조상님을 위로해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황당했다. 하지만 이게 사이비던 사이비가 아니던, 나에게 돈을 갈취하던 갈취하지 않던 그 순간의 나는 상관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갔고 위험을 무릅쓰고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역. 사실 화장실을 미리 가려고 했지만 그들은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자 돈을 뽑고 가라고 말했다. 수상했다. 하지만 나는 더욱더 궁금증이 생겼기에 참고 **역에 함께 갔다. 도중에 온 나와 동갑인 여자는 약속이 있어 헤어졌고 나는 나와 처음에 만난 여자와 이야기를 하며 '그곳'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곳'을 '회관'이라고 소개했다. 계단을 오르자 신발장에 사람들이 가득 찼고 어린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또 한층을 올라가자 나를 맞이 한 것은 내 또래의 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책상에 앉아 서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는 나를 방으로 이끌었다. 방에는 책상과 뒷벽 장롱이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달력. 책상 위에는 이상한 한자로 쓰인 종이와 공책이 있었다. 그녀는 나의 가족들의 이름, 생년월일, 직업 등을 다 적고 내가 조상님께 드릴 공덕을 준비하기 위해 외워야 할 주문이 있다고 했다.


‘원 많고 한 많은 조상님들, 구천에 올라가시어 해음하옵소서’.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녀는 나에게 기억이 나지 않으면 속으로 ‘조상님 편안히 가세요’라고 하라고 말했다. 그러며 뒷벽 장롱을 열어 나에게 맞는 한복을 입혔고 절을 가르쳐 줬다. 두려웠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빠져나갈 수 있을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다시 2층으로 내려가 제사상 앞에 데리고 갔다. 제사상을 보면 안 된다며, 그것은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고개를 숙이게 했고 곧이어 외국인이 한복을 입고 들어왔다. 나와 같이 당했는지 그녀도 어리둥절해하였고 그들은 우리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다. 제사를 지내며 술을 따르고 절을 시켰다. 한 30분쯤 그렇게 했다. 속으로 계속 주문을 외우라고 했다. 그러며 맨 마지막으로는 조상님께 빌고 싶은 소원을 빌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힘들었다. 기운이 빠지고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순간 정신을 잃었다면 나도 그들과 같이 맹신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조상님에 예의를 다하라며 제사상에 있는 음식들을 들고 와 나에게 다 하나씩 먹였다.


나는 빨리 집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밖에 있는 나의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누라고 부추겼다. 나는 집에 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도망치듯 나왔다. 그녀는 나를 역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리고는 12월 31일 아침, 강원도에 있는 본인들의 절로 같이 가보자고 말을 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졌다. 모든 죄책감이 물밀 듯이 치솟으며 정말 나의 조상님이 보고 있을까, 내가 잘못되고 우리 가족이 잘 안 되는 일이 다 조상님 탓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이 어쩌면 나의 탓이 아니고 우리의 탓이 아닌, 정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이 힘들었던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기보다는 거북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인가. 나름 기독교 집안인데 이런 제사를 지낸 것이 절대 옳은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의상 그녀에게 집에 들어갔다고 문자를 보냈고 다음날 그녀에게 연락이 왔지만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차단했다.


실습을 하는 내내 마음속에 맴돌았다. 어쩌면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은 그들을, 자기를 나의 귀인이라고 부르며 어쩌면 일생에 딱 한 번의 기회이며 나로 인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들을 내가 무시하고 나에게 들어온 복을 나 스스로가 차 버린 것이 아닌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오늘 실습에서 있었던 모든 안 좋은 일들이 다 내가 순간 그녀와 연락이 끊긴 순간 귀인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조상님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순간 생각이 들었다. 뇌에 박혀 그렇게 떠오른 내가 부끄러웠다. 그들은 나에게 98%의 노력과 2%의 운, 이것의 거꾸로인 공 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다. 단순히 노력과 능력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들은 나에게 공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 우리가 왜 믿느냐고 물었다. 조상님도 그렇다고 그들은 나에게 말했다. 뒤에 순간 말해놓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 것이다. 나의 생생한 증언으로부터 이런 말에 쉽게 현혹된 나약한 인간이었던 내가 부끄러워 기록하는 나의 일기이며 한편으로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절대적인 존재가 나를 도와주고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하는 믿음에 관하여 또 이러한 '조직'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이 종교냐고 물었다. 그들은 종교가 아니라고 했다. 기독교인 사람들이 공을 쌓기 위해 온다고 말했다. 조상님에게 공을 쌓는 것은 절대 사이비가 아니라고 했다. 사이비는 말이 안 되는 것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것은 진실이기 때문에 사이비가 아니라고 했다.


결론은 내리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믿음을 통해, 그러한 행위를 함을 통해 변화했고 행복하고 자신들이 공을 쌓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딱히 비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이러한 절대적인 신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냐 하는 질문이다. 나의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인데 우리는 너무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인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엉엉 우는 경우가 많다. 삶이 그만큼 고되니까. 물론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나보다 강한 자 앞에 서게 되면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는 일종의 복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것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나의 고달픈 세상살이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 너무 미쳐 살게 되면 나를 잃을 수도 있고 또 신이든 조상이든 매달리기보다는 먼저 나 스스로에서 해답을 찾아야 창조주가 우릴 만든 보람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환자와 이야기를 하다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을 듣고 바로 그 환자에게 달려갔다. 그 환자분은 공덕을 쌓는다는 것은 잘못된 의미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는 공덕을 쌓는다는 것의 의미는 조상님께 쌓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쌓는 다고 했다. 물론 재물을 타인과 나눔으로써 나의 마음의 덕이 쌓아지는 것은 맞는 개념이긴 하나 그런 재물을 이미 돌아가신 조상님께 드리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것은 조상님들은 자신의 자손들을 절대 나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다행히 빠져나왔지만 사실 조금 두렵긴 하다. 혹시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가능성이 정말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들은 나에게 공을 들였다는 것, 이런 곳에 불려 와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을 100일 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가족도 안되고 가장 친한 친구도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복이 달아난다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일말의 부정을 타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며 벌써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2달 후 고속터미널 역에서 같은 장소를 지나가다가 그녀를 또다시 만났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얼음장처럼 그 자리에 몸이 굳었다. 그러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다가와 말했다.


'**병원은 어디로 가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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