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뭉치 냥이
아이를 낳고는 모든 게 처음이니 당최 쉬운 일이라곤 없었다. 조그만 아기를 처음 안고, 처음 씻기고, 처음 젖 주고. 엄마가 됐지만 뭔가 어설픈 나날이었다. 특히 작디작은 신생아의 손톱을 잘라주는 일은 내게 몹시 어려운 미션이었다. 자칫하면 손톱으로 자기 얼굴을 긁어 상처낼 수도 있다는 말에 몇 날 며칠 생각만 하다 진짜 깎아줘야겠다 결심한 그날. 결국 남편이 해냈다. 아기 분유 한 번 타준 적 없고, 새벽에 자다 깨 자지러지게 울어도 아랑곳 않고 쿨쿨 잘도 자는 얄미운 남편이었는데 그날은 좀 멋졌다. 겁 없이 톡톡 아기 손톱을 잘라주는 모습이.
고양이 크림이와 함께 산지 만 3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발바닥 털을 밀고 발톱을 깎아주는 일은 초보 엄마처럼 쉽지 않다. 유튜브와 책으로 방법을 숙지했으나 어디 이론과 실전이 같으랴. 집사 품에 안겨 얌전하게 발을 내미는 영상 속 고양이들과 다른 크림이를 보며 종종 당황했고, 평온하게 털을 깎는 집사의 스킬에 때때로 좌절했다. 어려우니 이따금 미루게 되고 그러다 털 속에 핑크핑크한 발바닥 젤리가 모두 갇혀버리는 지경까지도 갔다는. 지 발에 손이 스치기만 해도 움찔 싫은 티를 팍팍 내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절로 눈치가 보이는 털 밀기와 발톱 깎기다.
아침부터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오늘 저녁에 크림이 털 깎자. 항시 혼자는 엄두를 못 내고 딸아이와 함께 2인 1조로 츄르 2봉을 준비한 채 시작한다. '웅~' 기계 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미리 이발기를 작동시켜 놓고 아이는 츄르 1봉을 뜯은 채 스탠바이다. 살금살금 기분 좋아 보이는 틈을 타 크림이를 품에 안는다. 크림이가 상황을 지켜볼 수 있도록 앞쪽으로 안지만 이 자세는 금세 뒤집힌다는. 발버둥 치려는 찰나 뜯어놓은 츄르를 잽싸게 맛보게 한다. '촵촵촵촵' 야무지게 먹는 소리에 맞춰 앞발 한 개, 운이 좋으면 두 개 정도의 털을 깎을 수 있다. 몸을 길게 늘여 버둥거리다 내 품에서 빠져나가길 다섯 번 정도 반복하면 이 고된 작업은 끝이 난다.
이렇게 싫다는데 하지 말까? 길고양이들도 털은커녕 발톱 깎아주는 이 없이도 스스로 살아가잖아. 내가 이렇게 사정해 가며 깎을 일이야?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타협하다가도, 안전을 생각하면 어찌할 수 없다. 조용히 있다가도 치타처럼 우다다다 달려가는 크림이 때문에. 그러다 미끄러져 제때 정지하지 못하는 웃픈 상황을 몇 차례 보았기에.
가끔 유튜브 영상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 집 냥이도 저들처럼 다소곳하게 발을 내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다정한 얼굴로 우아하게 털을 깎아주고 개운한 마음으로 너는 츄르를 나는 아아를 마시면 어떨까 하고. 검색을 해보니 어릴 때부터 발을 만지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교육을 시켰어야 한단다. 아이도 반려동물도 다 엄마 탓인가 슬프다가도 정신을 차린다. 비교대상은 옆집 아이, 다른 고양이가 아니라 어제의 내 아이, 내 고양이라는 것을. 육아와 육묘가 다를 게 없다. 쓸데없이 마음이 비장해진다.(헤헤)
늘 앞발 먼저 깎기에 앞발은 나름 깔끔. 뒷 발은 서로의 한계에 부딪혀 쥐 파먹은 채로 성급히 마무리한다.
이것은 그날의 흔적. 털이 어마어마하다. 나는 왜 하필 검은 옷을 입고 있었던 걸까? 목이 늘어진 추레한 티셔츠가 그날의 고단함을 말해준다.(하하)
털뭉치 냥이.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