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여 나간 나의 조각
1.
문득 소재가 떠오른다. 검열이 시작된다. 거름망처럼 생각을 거른다. 이 소재는 이래서 안 돼. 이 이야기는 저래서 안 돼. 이 단어는 좀… 그래. 아무튼 안 돼. 그렇게 걸러진 말들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거름망 근처에 떠다닌다. 통제 구역 앞에서 진입을 실패한 말들의 모임이 구성된다. 그곳은 그들의 서식지가 되고 그중에서 짝을 찾은 말들은 하나의 팀이 되어 거름망 앞에 다시 선다. 검열을 통과하면 그들은 죽었다 살아난 말이 되어 이야기가 된다. 대부분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한다.
초고를 쓸 때 속도가 붙으면 정말 뿌듯하다. 개운하고 생기가 넘친다. 쓰기의 속도감이 정말 좋다. 속도가 빠르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다. 쓰지 않으면 소재는 증발하고 증발한 것들은 다시는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떠난 것들은 언제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내게 온 순간부터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검열이 무서워서 아예 진입하지 못한 말들도 있겠지. 거를수록 매력은 깎이고 매끈한 이야기가 되는데. 매끈한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일까? 검열한 것들은 유사해서 마치 한 이야기 같을 텐데. 같은 꼴이 되기 싫어서 도망친 말들도 있을 것만 같다.
가끔씩 거름망이 고장 날 때도 있다. 덩어리 진 말을 흘려보내고 한 단어에 꽂혀서 단번에 통과시키고 심지어 거름망이 전부 고장 나서 생각을 와르르 쏟아 적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리기도 한다. 퇴고의 고통은 거기서 시작된다. 내가 토한 것을 멋지게 꾸미려는 시도다. 꾸며봤자 토는 토다.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뒤섞여 있다. 과거의 나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 또한 나였으므로 계속 고통스럽게 퇴고할 수밖에.
일기를 쓰면서도 검열을 한다. 누구에게 보여줄 글도 아닌데 나를 미화해서 쓴 적이 있다. 내 일기에는 하루치의 감정이 적혀있다. 감정을 속인 채 일기를 썼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태였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나는 입 밖으로 감정을 말하고 손 밖으로 그것을 써 내리면 감정을 판결해버린 기분이 든다. 내뱉은 말과 펜으로 쓴 글이 실체화되어 ‘이제 날 어쩔 생각이니.’라고 묻는다. 어쩌긴, 밤새 그것을 치열하게 생각하겠지. 승자 없는 대결처럼.
검열의 단계에서 나를 얼마나 잃었을까. 깎여 나간 내 조각은 어디서 울고 있을까. 부스러기처럼 허공을 떠다닐까. 나를 찾고 있을까. 나이를 먹고 거름망의 구조가 개편되었을 때 내게 한 번 더 다가왔으면 좋겠다. 망을 통과하려던 별 모양의 생각들이 하늘에 모여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