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 안 미워. 미움받을 자격 없어, 너.
2.
춥다. 사람의 감정을 감당하기 힘든 계절이다.
남들이 내게 감정을 꺼내 보이면 난 그것을 꼭꼭 씹어 삼킨다. 먹고 싶지 않아도 입에 꾸역꾸역 들어온다. 난 타인의 감정이 내 감정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상실이 나의 상실 같고 그들의 기쁨이 내 기쁨 같다. 긍정이 부정보단 쉽게 소화된다. 빠르게 삼키고 빠르게 배출된다. 부정적 감정은 모래알을 씹는 것 같다. 씹으면서도 먹으면 안 될 것을 먹는 기분이다. 소화는커녕 입 안이 텁텁해서 다른 음식은 쳐다보지도 못한다. 당사자는 모래알을 우르르 쏟아내고 난 그것을 주워 먹는다. 난 쓰레기통이 된다.
무방비 상태에서 타인의 부정적 감정을 받아낸 적이 있다. 분명 나를 향한 말이었고 보이지 않는 말은 칼이 되어 나를 쑤셨다. 지쳐있던 내 표정이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한동안은 지치는 순간에 긴장이 됐다. 체력이 바닥나고 마음이 닳아 없어지면 그때처럼 공격받을까 봐. 여전히 그 순간이 무섭다. 두려워하는 게 지친다. 여전히 그 시간을 안고 산다.
화낸 것을, 사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애초에 나를 들쑤시지 않았을 것이다. 웃기게도 그중 누군가는 다음 날 말간 얼굴로 인사를 한다. 난 온몸으로 감정 폭탄을 껴안았는데 지는 혼자서 그곳을 탈출했다. 안전지대에 올라간 채 날 내려다본다. ‘너 거기서 뭐해? 아직도 거기 있어?’라고 말하는 듯이. 뭐하긴 이 자식아, 네가 토한 거 내 몸에 묻어서 못 나가잖아. 그 사람의 소통은 그런 것이다. 그 사람의 문법엔 ‘남에게 사과하기’는 없다. 나와는 다른 문법으로 듣고 말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미워하는 데도 힘이 든다. 난 하루치의 힘을 그곳에 사용하고 싶지 않다. 정해진 양을 가성비 있게 쓰고 싶다. 사람에게 마음을 맡기고 사람의 마음을 얻을 힘이 없다. 그럴 힘이 없어도 된다. 여기까지 오는 데 몇 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