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템의 부재
3.
다이어리를 사는 데 또 실패했다. 매번 구매하던 곳에서 구매하던 물건이 안 나온다. 새로운 다이어리를 샀고 결과는 엉망이다. 하루치의 글을 쓰는 칸이 턱없이 부족하다. 망했다.
3년째 쓰던 다이어리는 흔히 말하는 ‘인생템’이었다. 동네 문구점에서 발견한 뒤로 마음을 모두 줘버린 나의 일기장. 나의 인생템에는 모눈이 있고 큼직한 칸이 있었다. 줄이나 모눈이 그려져 있으면 글씨를 바르게 쓸 수 있다. 그게 좋았다. 삶에도 모눈이나 줄이 있다면 잘 따라갈 수 있을 텐데. 덜 고생하고 덜 아파하며 더 바르게 살 수 있을 텐데. 한때 다른 다이어리를 구매했으나 결국 며칠 못 가서 다시 돌아왔다. 귀여운 그림도 없다. 색이 들어간 장도 없다. 간결하지만 모든 걸 채우기에 아주 적합한 일기장이었다.
새로 산 것은 표지가 예뻤다. 내지도 모눈이었고 얇고 저렴했다. 저렴하다면 의심했어야 했는데. 하루 일기를 적는 칸이 120개뿐이었다. 졸지에 나의 1년은 120일이 됐다. 지난 일기장을 뒤져봤다. 365일 중에 하루치 일기를 쓰는 날을 세어보니 240일은 족히 넘었다. 남은 120일의 일기는 어디에 써야 하나. 남은 마음은 어디에 담아야 하나.
이럴 때면 온전히 마음을 주는 것이 무섭다. 영원에 가깝도록 오래갈 줄 알았던 물건이 말도 없이 사라지니까. 언제까지 사랑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까. 길을 잃은 느낌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이 맞는 길인지는 모른다. 새 것, 새 사람, 새로운 상황,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은 나를 무력하게 한다.
이전에 사랑했던 것에게 맡겼던 마음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나. 그 마음 그대로 시작할 수 있나. 새 것에게 느끼는 마음과 이전의 마음이 다르다면 진심은 어느 쪽일까. 모두 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러나 나는 새로 산 다이어리와 친해져야 한다. 포장지를 뜯어서 환불할 수 없다. 한 장 두 장 훑어보다가 펜 잉크가 묻은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다. 써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지가 모두 모눈이라는 것. 글씨는 제대로 쓸 수 있겠어. 얇고 가벼우니까 휴대성도 좋고. 또... 나름대로 장점을 찾는 나였다.
인생템은 수요가 나뿐이라 공급이 중단된 걸까. 섭섭함과 아쉬움으로 새 다이어리를 맞이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