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4 - 세상엔 믿지 못할 일들이 많아서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날 때

by 생강

4.


아, 거짓말. 거짓말이지? 그렇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아 거짓말.


Y와 나는 탄식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이 교차하는 지점 한가운데 전동 킥보드가 서 있었다. 차가 지나갈 수 없도록 누군가 심술을 부렸다고밖에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몇 운전자들이 내려 그것을 치우려 했고 나와 친구는 ‘거짓말’이라고 중얼거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믿고 싶지 않을 때, 나는 거짓말이라고 외친다. 거짓이지?라고 되물으며 상황을 부정한다. 세상엔 거짓이라 믿고 싶은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므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갇혔다. 나의 편리함이 타인의 불편으로 환생하는 것도,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정말 그렇게 까지 각박하게 구는 것도 일상이 되어 버린, 미안하다, 고맙다 이 한 마디가 절실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화를 내지 않고도 물건이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내가 잘못된 정보를 들고 왔을 때 바로 잡아주는 사람에게 지금 날 무시하느냐고 소리치지 않을 수 있다. 산책하는 개와 주인에게 왈가왈부하지 않을 수 있다. 어린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선택권을 줄 수 있다. 노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화내야 할 순간에 정확히 화내고 아닌 순간에는 잔잔할 수 있다. 사람은 그럴 수 있다.


농축된 화가 터지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려할 여유가 없고 배려할 수 있는 반경이 좁아져서 이윽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차가워지는 세상 같지 않은가. 슬프지만 나는 계속 살아야 한다.


나의 배려심 반경을 확인해본다.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굳이 그렇게 까지 차가웠던 적은 없는지, 그리하여 몇 사람을 떠나보내진 않았는지. 나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에 가까운 사람이었는지.


나의 작은 아픔 때문에 남의 큰 아픔을 보지 못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꼭 타인이 되어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이 작아질 때까지 옆에 있어줄 수 있다. 상처에 약이 되는 말을 해줄 수도 있다. 혹시 나의 잘못이 널 아프게 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말할 수 있다.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같이 울어줄 수도 있다. 손 꼭 잡고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속삭일 수 있다.


거짓말 같은 세상 속에 더 거짓말처럼 따뜻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다. 사람에 가까운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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