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의 탄생,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
5.
올리브 씨앗을 제거해야 한다. 올리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잔뜩 사다 주셨다. 씨앗을 뺀 올리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음엔 씨앗이 없는 것을 사 먹어야지 다짐했다.
파스타와 샐러드를 자주 해 먹는다. 그때마다 올리브를 쓰는데 매번 씨앗을 제거하는 게 제법 귀찮다. 냉장고 안의 올리브는 살짝 딱딱하고 차갑다. 한 번에 다섯에서 여덟 알을 꺼내 중간에 칼집을 낸다. 엄지로 과육과 씨앗을 분리한다. 손톱에 올리브 조각이 끼고 짠 냄새가 밴다. 손가락이 시려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한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한 끼 식사에 들어갈 올리브 과육이 생긴다.
씨앗이 있는 게 당연한 건데. 중간이 뻥 뚫려 과육만 남은 올리브가 편해서 씨앗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확실히 중간이 뚫린 올리브가 보기에도 예쁘다. 그러나 씨앗이 있는 게 당연하다. 편하게 먹도록 생산된 것이지 원래 그런 모양의 열매가 아니다. 씨앗이 없는 올리브를 먹을 땐 온전한 열매였던 시절을 떠올린 적이 없는 것 같다.
씨앗을 빼면서 올리브가 어떻게 자랐을지 생각했다. 쨍한 햇빛과 시원한 물을 받으며 뿌리를 키웠을 테고 단단한 열매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 모든 식재료가 그렇게 크지. 생산 과정과 식탁의 거리가 멀다. 아무래도 난 식재료의 탄생과 단절된 채로 음식을 먹었던 게 아닐까.
나의 할머니는 농사를 짓고 계신다. 할머니를 따라 밭일을 경험한 어느 날, 식재료는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무 하나를 뽑기 위해서는 아주 기본적인 물과 햇빛 그리고 애타는 정성이 필요하다. 서로 엉기지 않게 가을쯤 솎아줘야 하고 스프링클러를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위치를 바꿔 구석구석 물을 줘야 한다. 깨는 사람보다 더 큰 줄기를 털어 그 안의 알맹이를 알알이 모아야 한다. 깨 터는 과정을 버겁게 지나면 흙이나 모래가 섞인 깨를 채로 걸러낸다. 바람의 방향에 맞게 쭉정이를 날린다. 깨를 허투루 날리면 정말 속상하다. 자주 쓰는 식재료인 깨는 나에게 ‘크기 대비 가장 고생하는 식재료’가 되었다. 벌레가 싫어도 배추벌레를 떼어내야 하고 민달팽이가 기어 다니는 밭을 씩씩하게 가로질러야 하며 열무 잎이 따가워도 한 움큼 들고 옮겨야 한다. 쌀, 단감, 시금치, 브로콜리, 양배추, 상추, 갓, 당근, 마늘, 파까지 쉽게 얻어지는 건 단 한 종류도 없다.
참 야속하지만 고생한 것에 비해 먹을 땐 순식간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더 오래 더 길게 음미하면서 먹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허리 굽혀 솎아낸 깨는 나물을 무칠 때 다 써버리고 상추는 부드럽고 맛있다며 겉절이로 한 두 끼 해치우면 금방 사라진다. 바람 속에서 한 잎 한 잎 소중하게 딴 갓은 김치로 담그면 왜 그렇게 숨이 푹 죽어 양이 적어지는지. 속상했다. 동시에 소중했다. 그렇게 완성된 식탁이었으므로 음식에 대한 애틋함이 커졌다.
이 검은 올리브를 키운 사람도 열매가 튼튼하게 자랄 동안 마음고생을 했겠지. 난 폭우나 태풍이 오면 우리 집 창문이 흔들리는 것보다 할머니 밭의 아이들이 걱정된다.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대봉과 단감 수확이 적었다. 식구들과 감을 따면서 “단감도 이게 다야. 올해는 감이 정말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농사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날씨가 엉망이면 한 해 농사가 수포로 돌아가고 출근과 퇴근 없이 온종일 밭을 나가야 하고 농사일을 쉽게 보는 사람들의 허무맹랑한 말에 기가 차는 날도 있으므로.
내일은 샐러드를 먹을 것이다. 올리브 씨앗을 빼고 파프리카와 양상추를 곁들여 누군가의 일 년치 정성을 먹을 것이다. 그 정성이 내 피와 살과 뼈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