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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올 Sep 27. 2023

정원의 사과나무

나는삐뚤어질테다 사과나무

 나의 정원에는 미니사과나무가 있다. 이 사과나무의 이름은 ‘나는삐뚤어질테다’이다.

 우리 꼬맹이가 말한다.

 “엄마! 이 사과나무, 피사의 사탑 아냐? 얘는 왜 자꾸 삐뚤게 커?”

 “오빠 닮았나 보다.”

 이제 막 사춘기의 강을 다 건너가는 아들하고 똑 닮았다.      

 

 정원은 작은데 나의 욕심은 한없이 커서 온갖 나무와 식물을 심다 보니 늘 자리가 부족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무를 주간형(위쪽으로 길쭉한 형태)으로 키우고 있다. 근데, 유독 말을 안 듣는 녀석들이 있다. 유전적으로 쩍벌로 타고난 놈들은 막을 길이 없다. 사과나무 이 녀석은 말을 듣기는 하면서도 고분고분하기는 싫은 모양이다. 하는 폼이 딱 우리 고딩이 아들이다.


 하도 삐뚤게 자라 올봄에는 똑바로 서도록 힘을 주어 밀어 보았다. 갑자기 뚜둑하더니 나무가 흔들흔들 힘이 없었다. 깜짝 놀랐다. 큰 뿌리 하나가 끊어진 거 같았지만, 파 볼 수도 없고, 파 본들 다시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노심초사 나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면서 지켜볼 수밖에. 다행히 뿌리를 새로 잘 내렸는지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지금은 살짝 흔들어 보니 땅에도 튼튼하게 잘 박혀 있다.


‘알았다. 삐뚤이 사과나무야! 안 건들 테니 건강하게만 잘 자라라!’     

주간형으로 키우려고 수형을 잡아도 계속 삐뚤게 자란다.


 아들은 고3이다. 고3이지만, 대한민국 고3 입시생의 표준은 따르기 싫은 아들. 우리 집 삐뚤이 사과나무처럼 고분고분하지는 않은 아들. 내가 공부 강요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하라 한다고 해서 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관계만 나빠질 뿐 내 말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pc방을 못 가게 하면 몰래 갈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들아! 안 건들 테니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만 잘 자라라. 엄마가 기다릴게!’     


 성경과 신화, 민담 속에서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한 사과. 이 사과에는 수많은 사연과 스토리가 있다. 아담의 사과,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패리스의 사과, 빌 헬름 텔의 사과, 뉴턴의 사과를 거쳐 스티브 잡스의 사과까지 사과는 선과 악, 사랑과 질투, 전쟁, 자유와 독립, 과학과 문명 등 인류의 많은 고난과 역사를 상징해 왔다. 우리 집 사과나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상징하는 소심한 반항의 아이콘이다.      



못난이들의 합창

 사과가 익어 간다. 작년에는 3개밖에 못 땄는데, 올해는 제법 달렸다. 작년에는 울 꼬맹이한테 양보하느라 온 식구가 입맛만 쩝쩝 다셨다.

 드디어 사과를 수확했다. 루비에스라는 미니사과이다. 크기가 탁구공 정도의 크기이다.

참 이쁜데, 참 못 생겼다.

못난이들의 합창! 그래도 내 눈에는 사랑스럽다.

 물기를 머금고 연둣빛과 빨간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쳐다만 봐도 새콤달콤한 맛과 사과 향이 그냥 보인다. 보일 듯 말 듯 파운데이션을 살짝 칠한 듯 뽀샤시하다. 싱싱한 포도의 뽀얀 빛이 도는 표면을 떠올리면 된다.

 근데 참 못생겼다. 비료와 농약도 없이 알아서 크도록 두었더니 군데군데 거뭇거뭇한 얼룩과 반점, 벌레 먹은 상처가 치료되어 생긴 흉터까지. 마트에서 마주쳤다면 분명 음식물쓰레기로 보였을 것이다. 길가에 쏟아 놓기라도 한다면 '누가 사과를 여기 버렸나?'가 아니라 '누가 음식물쓰레기를 여기 버렸나?'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내 정원의 사과이기 때문에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교수의 말도 자세히 보아야 이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도 딱 들어맞지 않는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계절을 살며 익어가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았는데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냉장고에 넣어 두고 보물 꺼내듯이 아침마다 하나씩 꺼내어 아이에게 건넨다.

그때마다 ‘이거 우리 마당 사과야’라는 자랑 한 마디를 잊지 않고 함께 건넨다.            

   

한입 베어 문 사과.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흉내 내며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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