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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올 Feb 16. 2024

우리네 인생도 가지치기가 필요해

겨울 정원의 가지치기


  

 봄비인지 겨울비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나섰다. 안개인 듯 안개 아닌, 안개 같은 고운 비다. 많고 많은 좋은 날들을 놔두고, 굳이 오늘인 이유는, 오늘 나의 컨디션이 괜찮고 정원 일이 갑자기 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원에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단단히 복장과 장비부터 챙긴다. 대충 시작했다가 손발에 상처가 나고 옷과 신발을 더럽혀 빨래가 늘어나는 무지막지한 일을 많이 당해보고 나서 요령이 생겼다. 귀찮아서 그냥 나섰다가 당한 일은 두고두고 오랫동안 대가를 치른다. 챙겨 입는 것은 잠깐이지만, 복장과 장비의 혜택은 참으로 은혜롭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가지치기이다. 그런데, 올해 가지치기는 좀 특별하다. 올해 가지치기의 목적은 수형 잡기도 아니고 통풍을 위한 가지 솎기도 아니고 꽃과 열매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올해 가지치기의 목적은 생존이다. 나무를 죽이지 않기 위한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5월 말에 이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집을 매입하는 분이 정원을 새로 조성할 계획이어서 대부분의 나무를 이사한 집으로 옮겨 가기로 했다. 그런데, 5월에 이식하면 나무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2월에 옮겨 가식을 했다가 새 집의 정원이 정비된 후, 11월에 정식을 할 계획이다. 

 정원을 조성한 지 8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대부분의 나무가 묘목이 아니라 7년생 정도 되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인다. 이식 과정에서 뿌리가 잘려 나가고 상처를 입기 때문에 많은 잎과 가지를 건사할 수 없다. 아깝지만, 가지들을 대부분 쳐내고 뿌리가 잘 활착 한 뒤, 필요한 가지들을 새로 받을 예정이다. 괜히 작은 욕심을 부렸다간 나무를 통째로 죽이게 된다.      




엄마 얘네들한테 왜 이래?     


 남편은 출타 중이고 톱과 전지가위를 들고 안개비를 맞으며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데, 우리 집 꼬맹이가 마당에 나왔다. 

 “엄마 얘네들한테 왜 이래? 엄마가 그렇다고 얘네들을 다 대머리로 만들면 어떡해?”

 이러면서 깔깔 웃는다. 그러더니 뭐라 뭐라 쫑알거리며 나무들에게 말을 걸고 나무들을 위로하며 돌아다닌다.

 지금 나의 머리카락 상태는 겨우 봐 줄만 한 숏컷 상태이다. 8차에 걸친 항암치료로 온몸에 털이란 털은 다 빠져 타조알인지 키위인지 모를 몰골로 산 세월을 지켜봤던 꼬맹이가 나를 놀리는 것이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나무들에게 단단히 한풀이를 한 것 같다. 

 하지만 나무들아! 오해하지 말아라! 난 너희들을 살리려고 이러는 거야. 여기 있으면 너희들 다 뽑혀 나가. 나랑 이사 가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자.     



 

 우리네 인생도 가지치기가 필요해


 이맘때면 꼭 해야 하는 정원일 중 하나는 가지치기이다. 가지를 잘리는 식물에게는 분명 아픔일 테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얼핏 보기에는 인간만을 위한 일인 것 같으나 몇 년간 정원을 가꾸어 본 경험으로는 인간을 위해서도 식물을 위해서도 가지치기는 꼭 필요하다. 

 썩은 가지 병든 가지 복잡한 가지를 쳐내야 나무는 온몸 구석구석 햇빛과 바람을 충분히 들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튼튼하게 자란다. 가지가 너무 무성하면 통풍이 안 되어 이곳저곳 썩고 병충해가 더욱 심해진다. 또한 가지치기를 통해 나무는 적절한 수형을 잡고, 꽃과 열매를 튼실하게 맺을 수 있다. 있어야 할 곳에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서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낼 수가 있다.

 선택과 집중! 인생사에도 꼭 필요하다. 인생사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나의 일부를 떼어 내는 아픔을 겪으며 소중한 것도 보내주어야 할 때가 있다. 잘려 나간 가지의 상처가 아물고 새 잎과 새 가지가 돋는 것처럼 묵은 것을 보내고 나면 우리네 상처에도 새살이 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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