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다정한 친구들을 몇 봐왔다.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왜 그렇게까지?’였다.
왜 그렇게까지 타인을 신경 쓰고 챙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도 딱히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내세울 게 없어서 저러나, 싶기도 했다. 정말 오만하고 무례한 생각이었다.
롤모델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롤모델 발표 숙제가 있어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열심히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자주 연락하게 된 친구를 봐오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타인을 신경 쓰고 챙기는 행동은 나를 신경 쓰고 챙길 때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타인을 챙기는 것은 나 스스로를 챙기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다정이란 남만을 위한 헌신이라고 정의했었는데 다른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다정한 사람은 사려 깊다. 나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이 남에게도 다정할 줄 알고, 남에게 다정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다정할 줄 안다.
내면이 건강한 사람은 남을 신경 쓸 여유가 있고, 말투와 행동에 배려와 존중이 묻어 나온다. 그 배려와 존중은 나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 내면은 더욱 건강해진다. 선순환이다.
나는 다정이라는 결괏값만 보면서 살아온 것 같다. 다정 이전의 과정과 이후의 영향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안 될 거라는 비관은 아니다. 다정한 사람이 되어가면 다정한 사람이 된다. 지금부터 내가 하기 나름이겠지. 쓰지 않던 마음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카르마라는 말을 믿는다. 먼저 다정을 행하면 어떤 방식에서든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얕봤던 다정한 사람은 사실 똑똑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