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by 김새옹


저번주쯤, 일이 벌어졌다. 영어 책이 사라진 것이다. 다른 반 책상 위에 두었던 게 뒤늦게 생각이 나서 몇 번을 가보고 근방의 책상 서랍들도 살펴보았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렇게 2일 정도 영어 책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마 이때쯤부터 눈이 시리면서 계속 아팠던 것 같다. 그동안 그 부분 영어 공부를 못한 것이기도 하니까 애도 탔다. 다행히 도서관에 남아있던 영어 책을 받아서 빠르게 친구 필기를 옮겨 적었다.


그리고 오늘로부터 2일 전, 신경 쓰이는 일이 또 한 번 벌어졌다. 1년 전부터 맹목적으로 말해왔던 학과 대신 배움이 기대되는 다른 학과로 마음이 바뀌었다. 엄마는 내게 응원을 해 주었다. 그리고 2일 전, 저녁에 아빠가 그 소식을 듣고서는 극구 반대를 했다. 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귀에는 잘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에겐 바꾼 학과 이야길 조금도 꺼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여러 번 내 입장을 이야기해도 씨알도 들어가지 않은 듯한 아빠의 반응에 점점 대화가 불편해졌다. 어영부영 이야기가 끝났고 나는 방 안에서 학과 취업률을 검색했다. 아빠와의 대화에선 취업 이야기가 주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다음 날엔 바꾸기 전 학과에서 배우는 것들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솔직히 지금 보면 아빠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아빠와의 대화가 없었다면 나는 바꾸기 전 학과에서 실제로 배우는 것들을 알지 못했을 테고, 바꾼 학과에 맞는 생기부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테니까. 내게 그날의 대화는 답답했고, 반복되고 모순되는 말들이 많았지만, 그 혼란 덕분에 더 큰 혼란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본다.




두 일 모두 좋게 마무리되었지만, 신경 쓴 날이 연달아 있어서인지 내 몸은 전혀 좋지 않았다. 눈은 아직도 좀 건조하면서 시리고 어제부터는 왼쪽 잇몸이 붓고 입술에 뾰루지가 생기고, 5시까지 잠을 설쳤고 그래서 피부 트러블까지 생겼다. 일주일간 나는 내게 벌어지는 일들에 치여서 나를 제대로 돌보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일이 모두 끝난 어제는 3주 남은 시험으로 또다시 나를 몰아붙였으니까. 5시까지 잠을 설친 건 내가 4시에 누웠기 때문이니까. 아무리 낮잠을 잤어도 그건 좋은 판단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공부는 잘 됐다. 눈은 뻑뻑했지만 할 만했고 오랜만의 몰입에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잠이 부족하다는 몸의 절박한 신호들에 나는 일주일간의 나를 돌아보게 된 거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수행평가와 시험에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빨리 해야 하는데.. 할 게 천지인데.. 이 생각이 들지만 나는 이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확신이 든다. 왜냐하면 그 많은 할 것들을 할 힘은 글쓰기에서 나오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건강해야 과정도 결과물도 건강하지 않겠는가. 그 건강함은 글을 쓰는 시간 속에서 비롯된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몸을 갈아서까지 좋은 결과를 얻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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