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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두둑 Oct 25. 2020

출판사 도움 없이 책 만들기

10주간 매일 조금씩 글을 쓰다 보니 책이 되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했었다. 

단편적인 생각을 정갈하게 펼치고 정성스럽게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글로 남기는 것이라 믿는다.

사진은 순간을 담는데 그치지만 구체적인 생각과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매개체는 역시 글이다. 대부분의 영상도 결국 글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활자의 매력은 역시 절대적이다.


문제는 잘 쓰고 싶은 마음은 큰데 특출 난 글재주도 없고 꾸준히 글을 쓸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단조롭고 소박한 나의 일상이 정말 글감이 될 수 있을까? 

과연 누군가 읽을만한 글을 내가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 때문에 시작조차 않는 것.


그렇게 이런저런 핑계로 글쓰기를 미뤄오던 어느 날, 나를 너무도 잘 아는 친구이자 동기부여 메이커, 긍정 에너지 충전기인 친구가 준 색다른 생일 선물로 뜻밖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커뮤니티 이름은 <조금 적어도 괜찮아>

매일 10주간 글을 쓰면 그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주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익명의 신청자들을 모아 단체 카톡방과 구글 공유 폴더를 만들었고 우리는 각자 신청한 필명으로 공유 문서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11명의 참가자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글을 쓰며 카톡방에 본인이 쓴 글의 일부와 느낀 점을 공유했다.


지금 생각해도 오그라들지만 우리는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소통했다. 재미난 것은 일면식 없는 사람들끼리 글로만 소통했다는 것이다. 나이, 성별, 직업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어떠한 편견도 생기지 않았다. 오직 글로써 서로에 대해 점점 알아간다는 경험이 신선했다.


우리는 쓰고 싶은 글을 분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쓰되 매주 1회는 커뮤니티 매니저가 공유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하나의 주제에 11명의 다른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첫 미션 주제인 '아침의 소리'에 대해서 누군가는 분주한 출근을 깨우는 알람을, 어떤 이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또는 소리 없는 고요함 속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 글을 썼다.

  

10주가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설렘으로 한 동안 퇴근 후 글 쓰는 저녁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매일 글을 쓰고 인증을 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 되기도 했다. 물론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독촉하거나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순간 어쩐지 미루고 싶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떤 날에는 정말 한 문장도 써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 쓴 글을 지우고 노트북을 덮어버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기 좋은 날이든 아니든 (거의) 매일 정말 조금씩이라도 쓰다 보니 내가 쓴 글들이 쌓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10주 동안 하찮은 글이지만 계속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친구가 일부러 돈을 내주고 그 모임을 가입한 게 가장 크지만 내 글의 하찮음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글을 자주 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잘 쓰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글이 써지지 않으면 쓸 수 없었다.


긴 글을 쓴다는 것은 눈썹도 그리지 않은 민낯의 얼굴로 필터 없이 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 긴 호흡의 글을 쓰다 보니 정말 내 밑천까지 박박 긁게 된다. SNS 포스팅용 글은 함축적인 문장 몇 개로 멋짐을 포장할 수 있지만 긴 글을 쓴다는 것은 꾸밈보다 진심을 택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은 글을 쓰다가 유난히 막혀서 왜 그런가 가만히 생각해보며 쓴 글을 계속 읽으니 진짜 내 생각이 아니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고서야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결코 길게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진심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글쓰기로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아무리 하찮은 순간이나 생각도 쓸만한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 시간은 흐르고 순간은 지나가고 기억은 사라지더라도 글은 남는다는 것, 무엇보다 나 자신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습관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책이 만들어지면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글을 쓰면 쓸수록 이 허접한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듯 해서 주문 수량을 대폭 줄였다.



10주간 글을 쓰고, 목차를 정리하고, 표지 디자인을 고르니 드디어 택배로 15권의 책이 도착했다. 그리고 10월의 어느 볕 좋은 날, '조금 적어도 좋아' 커뮤니티를 함께한 친구와 조촐하게 우리만의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물론 이 책은 어느 서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초 소규모 리미티드 에디션에 초판 1쇄로 끝날 책 한 권이지만 우리의 진심이 담긴 소중한 추억과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문막 시골집 마당에서 열린 후두둑 & 제이드의 출판 기념 Tea Party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 어디에 뭐라도 쓰는 동기부여가 되기 바란다.  왜냐하면 나만의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즐기는 아주 근사한 방법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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