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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두둑 Nov 25. 2020

나의 불안은 어디서 왔을까?

불안에 대한 마음챙김 기록 (2)

지금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어릴 적 몇 가지 기억 중 하나는 부모님의 부부싸움이다. 잠이 들었다가 어렴풋이 벽을 타고 들리는 엄마와 아빠의 다투는 소리에 꼭 잠이 깼고 왜 싸우는지 들으려고 벽에 귀를 대고 집중하느라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덕분에(?) 난 지금도 핸드폰 진동소리에도 잠이 깰 정도로 잠귀가 밝다.


주로 소리치는 쪽은 엄마였다. 혹시 나 때문에 싸우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엄마는 기분이 좋을 때는 나에게 애정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었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면 돌변해 사정없이 매를 드는 분이시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반장이 되던 날에도 엄마는 아빠와 다툼으로 한 동안 심기가 불편했고 결국 나는 반장이 되었다는 것도, 반장턱을 내야 한다는 말도 못 해 반 친구들의 눈치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와 아빠는 매번 엄마의 눈치를 보며 기분을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식당을 운영하느라 고단했던 엄마는 나의 학교생활이나 성적에 대해 물어보는 일이 드물었다. 엄마는 분명히 나를 사랑했음에 틀림없지만 일관적이지 않았고 난 혼란스러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 성인이 되어서는 연애를 하며 관계에 대한 불안과 불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결국 사랑은 식어버린 국이 될 거야. 식은 국은 짜. 짠 국은 손이 가지 않지. 결국 이 사람은 날 버릴 거야' 

'믿을 사람은 없어. 결국 믿을 사람은 나 하나뿐이야'

실제로 그 믿음이 현실로 이루어져 누군가에게 차인적도 있고 다시 만났다가 그가 언제 또 마음이 식을 까 봐 조마조마하다가 결국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한적도 있다. 


언젠가는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눈치를 보며 혼자 단정 짓고 마음을 접고 헤어짐을 준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짧아지거나 길을 걷다 손을 놓으면 '마음이 식은 건 아닌가? 내가 귀찮아진 건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피곤하다고 하면 '혹시 내가 피곤 해진 건가' 싶었다. 


그렇게 몇 번의 이별을 겪은 뒤 한 동안 헤어져도 크게 상처 받지 않을 만큼 나만의 적정 속도를 정하고 적당히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연애를 했다.

나는 '우리 헤어지자'라는 말에 쿨하게 '그래'라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돌아설 수 있었고 그런 나 자신이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관계에 대한 불안과 불신 바로 아래 온전히 사랑받고 싶고, 또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는 내면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관계에 수동적이었던 나는 요즘 좋은 감정이든 불편한 감정이든 담아두거나 숨기지 않고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가족에게 그리고 애인에게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를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이전에는 상대방에게 불편한 말을 하기 싫어 자연스럽고 은근하게 인연의 끈을 놓는 쪽을 택했다면 이제는 진심을 담아 말과 행동을 다듬은 후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애명상을 하며 난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기도 한다. 내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 사랑을 충분히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긴 호흡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쓰는 것도 꽤 괜찮은 자기돌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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