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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두둑 Sep 22. 2024

ADHD 코치의 무기력 탈출기

무기력해서 마음의 크기가 작아진 나에게 필요한 질문들

네, 부끄럽지만 ADHD 코치인 저도 가끔 무기력과 동기저하로 시들시들 맥을 못가눌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시기를 ‘머릿 속 감기'라고 생각합니다.


무기력은 마치 감기 같아서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타고난 면역력에 따라 걸리는 횟수나 기간이 차이가 납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소식은 ADHD가 있다면 머릿 속 감기에 대항할 면역력이 더 낮다는 것입니다. 위로의 소식은 이런 현상이 게으른 성격의 ‘내 탓'이 아닌 전두엽의 발달 기능 저하로 인한 ‘뇌 탓'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적인 소식도 알려드릴께요. 다른 감기와 마찬가지로 머릿 속 감기도 완전한 치료제는 없지만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과 예방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방보다 이미 무기력해졌을 때 조금이나마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무기력할 때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브레이크를 거는 것입니다.

여기서 브레이크는 바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무기력할 때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나요?

아마도 이런 질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난 왜 이렇게 게으를까?’

‘난 도데체 뭐가 문제일까?’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틀린 질문은 단순한 감기였던 무기력을 우울증의 늪으로 빠지게 합니다.  

제대로 된 레시피를 위한 알맞은 질문을 다시 만들어볼까요?


1. 나는 무기력한 상태를 어떻게 정의할까?

첫 번째로 해야할 질문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무기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알아차리게 하는 열쇠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무기력한 상태는 ‘단기적 만족을 추구하는 욕구에 저항하는 힘이 고갈된 상태'입니다. 작게는 더 자고 싶지만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힘, 아무렇게나 퍼져 있고 싶지만 산책을 하러 나가는 힘처럼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 대신 조금 불편하지만 미래의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힘이 방전된 상태입니다.


2. 나의 무기력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시작될까?

찬바람에 유난히 목이 칼칼하고 몸이 으스스하며 콧물이 훌쩍 날 때 ‘혹시 감기가 오려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 후에 ‘에취-’ 재채기와 함께 불길한 예상은 어김없이 현실이 됩니다. 무기력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잘 생각해보면 분명 시작되는 지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제 경우는 지난 웨비나를 기분 좋게 마치고 새로운 계획을 실행 해야하는 지점이었어요. 코칭에 대한 문의도 늘고 콘텐츠의 노출도 늘면서 다시 새롭게 정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홈페이지도 리뉴얼해야하고 새로운 그룹 코칭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하고, 코칭툴도 업그레이드하고 콘텐츠도 새롭게 만들겠다고 결심했는데 막상 실천에 옮기려니 막막함과 버거움이 몰려왔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지만 동시에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앞서가면서 하루가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3. 내가 무기력할 때 어떤 패턴이 나타날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일 ADHD 관련 다양한 책과 논문, 영상을 꼬박꼬박 챙겨보고 내용을 정리하는데 어느 순간 ADHD라는 단어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듯이 관련 콘텐츠를 쳐다보기도 싫어졌습니다. 당연히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싫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매일 아침마다 하던 요가와 명상도 하기 싫어지고 자기 전 스트레칭도 귀찮아졌습니다. 신선한 재료로 영양소를 골고루 챙겨먹던 제가 과자와 젤리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싫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저의 첫 번째 무기력 패턴은 매일 잘 해오던 일도 싫증을 느끼면서 루틴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빈 페이지에 커서가 깜박 거리는 것을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보다 이내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노트북의 배터리가 방전 되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잘 되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주 좋은 핑계가 생겼군.’

두 번째 패턴은 ‘하지 않을 핑계를 찾는다’겠네요.


그때 제 머릿속은 마치 산골지역에서 배달앱을 켰을 때 뜨는 화면 같았습니다.

‘텅’

텅 빈 머리로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은 별로 없습니다. 누워서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엄지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며 릴스를 보다 취침 시간을 훨씬 넘기기도 했어요.


여기까지 솔직하게 답을 하고 나면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제부터 시작이니 여기서 멈출 수가 없네요.


4. 무기력할 때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무기력을 앓는 동안 힘들게 쌓은 루틴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무감각하게 지켜보다 문득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바라본 스스로의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ADHD 코치라는 사람이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다니 정말 수치스러워’

‘난 누군가를 도울 자격도 능력도 없어’

‘난 역시 꾸준한 사람이 아니야’


갑자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이 순간에 충동적으로 처음으로 생각나는 나라가 어디든 항공권을 예약하고 업무 계획 대신 탈출 계획을 세웠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실제로 발리 항공권이 얼마인지 검색은 해봤음을 고백합니다^^;)


항공권과 현지 맛집 검색으로 뜨거워진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봅니다.


5. 무기력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내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 일의 특징적 요소는 무엇일까?

계란 후라이의 터진 노른자처럼 퍼져있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어김없이 해내고 있는 한 가지는 바로 ‘코칭세션’이었습니다. 제가 절대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 만큼은 제 시간이 아닌 제 고객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코칭 세션 때 제 상태를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저도 지금 동기부여에 시동이 켜지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 00님과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처럼, 00님도 아무리 무기력해도 타협하지 않는 시간이 있다면, 그리고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아무리 무기력해도 우린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지각을 할 지언정) 출근을 꼬박꼬박 하고, 건강을 위해 끼니를 챙겨 먹고, 청결을 위해 청소기를 돌리기도 합니다. 저는 칫솔질을 할 가벼운 동기조차 없을 때에도 산책하고 싶은 반려견의 눈망울을 보면 아파트 한 바퀴라도 돌 힘을 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며칠 동안 방은 안치워도 매주 수요일 재활용을 버리는 날엔 꾸역꾸역 패트병의 라벨을 벗기고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꼼꼼하게 떼어야 합니다. 물 마시는 것은 귀찮을지언정 오그라든 식물의 잎을 보는 순간 바로 달려가 물을 주는 것은 잊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의 특징적 요소는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는 순간’입니다. 제 코칭 고객과, 반려견, 제가 키우는 식물들과 제가 살고 있는 지구에게까지 저는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나 봅니다.


6. 무기력한 내가 바라본 나의 모습은 정말 맞는 모습일까?

웃음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바라본 제 정체성은 사실이라기 보다는 분명 어딘가 왜곡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니콘을 생각한다고 해서 유니콘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듯 우리의 생각이 언제나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그 보다는 그런 생각을 만들어내는 나의 감정 상태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보자면,


‘난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잘 하고 싶지만 부담스럽고 막막할 때 무기력함이 찾아오고, 그럴 때 매일 하던 일도 싫증을 느끼고 루틴이 무너지고 하지 않을 핑계를 찾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 때 내가 드는 감정은 수치심과 자책감이며 이런 감정을 가지고 바라본 나의 모습은 ‘자격이 없고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는 일은 기어코 해내는 사람이다’

나의 무기력함은 때로는 왜곡된 정체성을 만들지만 그것이 꼭 사실일 필요는 없다.


제가 보기에 위 문장은 훨씬 믿을만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수치심과 자책감이 줄어드는 느낌도 듭니다. 다시 동기에 시동이 걸리는 느낌도 나네요. 어차피 제게 필요한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는 힘이 아니라 시동을 걸기에 적당한 만큼입니다. 이 여섯 가지의 질문은 적어도 두려워서 미루고 있던 일을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에너지를 줍니다. 제게는 하이브리드 엔진이 있어 일단 주행을 시작하면 배터리가 같이 충전되면서 에너지가 재생산 되거든요^^ 


이렇게 다시 한 번 제 글을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이번에는 노트북 충전기를 꽂고 끝까지 글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이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필요한 에너지를 드렸기를 희망하며 혹시 깜깜한 무기력의 터널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천천히 자신을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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