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적 주의전환의 악순환에 대해
직장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하루 종일 자책감이 드는 상황, 게다가 내일은 중요한 발표가 있는데 준비가 아직 덜 된 상황입니다.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기 시작합니다. 한 영상이 끝나면 자동재생으로 다음 영상이 시작되고, 또 다음 영상이 이어집니다. 눈이 침침해져 시계를 보니 어느덧 세 시간이 흘렀습니다. 뭘 봤는지 당최 내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몸은 무겁고, 마음은 더 답답합니다.
'분명히 쉬었는데 왜 더 피곤하지?'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소파에 누워 TV를 켜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모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같은 행동이라도 그 마음의 작용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왜 어떤 휴식은 우리를 재충전시키고, 어떤 휴식은 오히려 더 지치게 만드는 걸까요?
핵심은 행동의 목적이 '불편한 감정을 없애기'인지, 아니면 '불편한 감정은 허락하면서도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인지에 따라 달렸습니다.
회피적 주의전환은 '원치 않는 생각이나 감정에서 벗어나고, 심리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행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때 행동의 주된 목적은 당연히 '도피'입니다. 불안함, 우울함, 찝찝함을 없애는 것이 목표죠.
이 행동의 성공 기준은 단순합니다.
'기분이 나아졌는가?'
ADHD가 있다면 이 회피적 주의전환 패턴은 더욱 익숙합니다.
끝나지 않은 과제들이 머릿속을 떠다닙니다. 세탁물, 이메일, 마감, 약속...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압도됩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집어듭니다. '잠깐만' 보려던 SNS가 두 시간으로 늘어납니다.
중요한 프로젝트 앞에서 갑자기 방 청소가 시급해집니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고, 오래된 영수증을 분류하고, 5년 전 사진을 정리합니다. 생산적인 것 같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은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몰입과 회피의 경계. 좋아하는 게임이나 취미에 몇 시간씩 빠져들 수 있지만, 정작 끝나고 나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만 남습니다. 재미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자극을 찾아 떠도는 마음. 영상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영상을 클릭합니다. 게임 하나를 하다가 지루해지면 다른 게임을 켭니다. 아무것도 깊이 즐기지 못한 채, 끊임없이 다음 자극을 찾습니다.
회피하는 마음, 불편한 마음을 쫓아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는 행동은 잠시동안은 잠잠해질지 몰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오히려 더 몸집을 불린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죠.
결국 피하려던 감정은 더 크게 튀어 오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쉬었는데도 전혀 쉰 것 같지 않은'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제 같은 상황을 다르게 접근해 볼게요.
똑같이 불안함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쫓아내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불안을 내 마음의 한구석에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불안이 여전히 나에게 있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때의 성공 기준은 기분이 나아졌는가가 아닙니다.
'내가 선택한 의미 있는 활동에 온전히 참여했는가?'입니다.
불안함이 여전히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더라도, 나는 내가 선택한 활동에 온전히 참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저와 함께 세션을 진행한 고객의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보고서에 자료도 빠지고 내용도 부족해서 상사에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고, 우울한 기분이 밀려왔습니다. 평소라면 이런 행동 패턴이 이어집니다.
'나는 안 되는구나'라고 되뇌며 하던 일을 모두 내팽개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퇴근
집에 돌아와 자책감과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혼자 술을 마시고 TV 보다가 씻지도 않고 그대로 잠들기
다음날 아침, 더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
"매 순간 불편한 감정으로부터 열심히 도망가느라 뭘 해도 피곤하셨겠네요. 만약... 우울함과 좌절감을 떨쳐내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기로 한다면요. 당장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감과 우울함이 있는 채로 원하는 행동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고 싶으세요?"
"어쨌거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죠."
"일을 마무리하면 정말 좋겠지만 우울한 감정을 무릎에 얹은 채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뭘까요?"
"적어도... 내가 수정해야 할 부분은 다시 들여다는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소와는 다른 쉽지 않은 선택일 텐데 그렇게 선택을 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해 줄 수 있는 것도 있을까요?"
"집에 가서 정말 마음 편하게 맥주 한 캔 따서 소파에서 다리 뻗고 좋아하는 영화 보고 싶어요. 그리고 푹 자고 싶어요."
"그럼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실험해 보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우울함은 여전히 가슴 한편에 있었지만, 보고서를 다시 수정했습니다.
퇴근길에 시원한 맥주와 치킨을 샀습니다
집에 와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먹었습니다.
고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우울한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있더라고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자신이 꽤 괜찮게 느껴졌어요.
"기분이 좋지 않아도 여전히 할 일을 해내고 마음 편하게 즐긴 나 꽤 괜찮은데? 싶었달까요."
"이번에는 감정에게 선택권을 넘기지 않으셨네요!"
평소처럼 술을 마시며 멍하니 있었다면, 그건 '우울함을 없애려는' 시도였을 겁니다.
그리고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것도 소용없네'라며 더 좌절했겠죠.
하지만 이번에는 우울함을 품은 채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험을 해본 거죠.
일을 마무리하는 것 -> 책임감 있는 나
좋아하는 활동으로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 것 -> 나를 돌보는 나
퇴근 후 술 한잔을 마시며 쉬었지만, 하나는 도망이었고 하나는 의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왜 이 차이가 중요할까요?
'회피적 주의전환'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며, 때로는 잠깐의 기분 전환이 필요해요. 적당한 회피는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역설적 효과' 때문이에요.
고통을 없애기 위해 취미 생활이나 휴식을 이용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내 기분이 좀 나아졌나?'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다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면 '이건 효과가 없어'라며 좌절하게 되죠. 오히려 피하려던 감정이 더 크게 튀어 오르기도 합니다.
반면 '유연한 주의전환'은 감정과의 싸움을 멈추게 합니다. 대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현재에 주어진 상황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불쾌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도망치는 중인가? (회피적 주의전환)
아니면 내 감정을 안고서, 나에게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한 것인가? (유연한 주의전환)
같은 드라마를 보더라도, 도망치며 보는 것과 선택해서 보는 것의 경험은 완전히 다릅니다. 감정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현재의 활동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밤, 당신의 주의는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불안을 피하는 곳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삶을 채우는 곳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