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7.보츠와나 초베 국립공원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아프리카 #보츠와나 #트럭킹

#초베국립공원 #2017년월19~20일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보츠와나>

트럭킹의 아침은 언제나 텐트를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각자 배정받은 텐트에는 이름이 달려 있는데 우리 집은 'Coop' 즉 '닭장' 되시겠다. 히포나 라이노 같은 멋진 이름이 달린 텐트였다면 더 기분이 좋았겠지만 뭐 이것도 나쁘지 않다. 텐트를 깔끔하게 접어 가방에 넣고 앞으로 21일간 함께하게 될 요리사 '모이'가 준비해 둔 아침을 먹는다. 아침 식사는 시리얼과 과일과 토스트 그리고 따듯한 차 한잔. 모이가 테이블에 뷔페식으로 차려두면 각자 스타일에 맞게 식사를 하면 된다.

<아프리카는 오늘도 맑음>

굉음과 함께 커다란 트럭에 시동이 걸렸다. 잠시 후 출발 예정이니 다들 잽싸게 준비를 끝내라는 우리의 기사님 '톰'의 신호이다. 트럭 아래쪽에 있는 짐칸에 각자의 짐과 텐트를 싣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간이 의자 등을 함께 정리하고 나면 드디어 준비 완료. 차량 내부 앞쪽에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좌우에 3개씩 좌석이 있고, 그 뒤로 2명씩 앉을 수 있는 버스 좌석이 쭉 배치되어 있다. 린다는 테이블이 있는 좌석이 인기가 많으니 돌아가며 앉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트럭에 오르니 테이블 좌석만 빼고 나머지 자리가 다 맡아져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엄청나게 배려하나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테이블 좌석이 끝장나게 불편했던 것뿐이었다.

<카드 게임 1인자 코리와 2인자 할렌>

어찌 되었든 테이블 좌석에는 캐런과 제프와 코리 그리고 할렌과 우리 부부가 앉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별 말없이 가다가 코리가 가져온 겨울왕국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로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게임은 첫 번째로 카드를 다 소진한 사람이 왕이 되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루저가 되어 다음 판이 시작될 때 루저가 킹에게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패 2장을 넘겨줘야 하는 룰로 진행이 되었다. 조금은 어색했던 분위기도 어느덧 예측 불가능한 게임 앞에 한층 부드러워졌고 그 덕에 지루했던 이동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며칠에 한 번씩 이렇게 우리 먹일 장을 본다>

보츠와나로 넘어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대형마트. 모이와 린다가 며칠간 먹을 식료품을 사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자유롭게 쉬거나 쇼핑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이 틈을 타 각자가 마실 맥주나 간식거리를 산다. 우리도 약간의 간식과 음료수를 사고 모이가 봐온 식재료 정리를 도운 뒤 다시 트럭에 올랐다.

<마네킹인데 움직이는 것 같아. 흥겨워!>

식량을 잔뜩 채우고 우리는 '초베국립공원 Chobe National Park' 근처의 캠프 사이트로 향했다. 초베국립공원은 보츠와나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동물들이 밀집해 있는 국립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의 일정은 캠프 사이트에서 점심을 먹은 뒤 하루짜리 작은 짐을 챙겨 국립공원으로 이동해 게임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이다. 게임 드라이브란 사파리용 오픈 트럭을 타고 야생 동물들이 사는 국립공원을 돌아다니는 것인데, 운에 따라 동물을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다고 해서 저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게임이라는 것이 원래 이길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토마스와 함께하는 1박2일 초베국립공원 여행>

초베에 함께 가게 된 전담 가이드 토마스가 오픈 트럭에 올라 자기소개를 할 동안 린다는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 보내다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게임 드라이브가 끝나면 오늘은 숲 속에 마련된 캠핑장에서 하루를 자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야생 동물 만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기대가 충만한 상태인데 숲 속에서 캠핑까지 하게 되다니. 아프리카는 나에게 참 많은 처음들을 안겨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세상이 낯설고도 설렌다.

<다큐에서만 보던 풍경들이 3D로 눈앞에 펼쳐지는 초베 국립공원>

국립공원에 들어가자 훼손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나타났다. 입이 커다란 하마는 강가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고, 한 무리의 코리끼 가족은 아기 코끼리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느라 바빠 보였다. 인도에서 그렇게 마셨던 맥주 '킹피셔'가 새의 이름이라는 사실도 이곳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목이 긴 기린은 코끼리 가족 틈에 섞여 어딘지 모를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전파를 타고 펼쳐지는 화면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야생의 순간을 말이다.

<사자의 발자국을 따라 고고>

트럭을 타고 국립공원 이곳저곳을 누비다 보니 무거워진 붉은 해가 조금씩 땅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게임 드라이브에서는 빅5라 칭하는 동물들을 다 보게 되면 운이 굉장히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표범, 코뿔소, 사자, 버팔로, 코끼리가 포함된다. 그중 오늘 우리가 본 빅5 동물은 코끼리가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가이드 토마스는 마지막으로 바닥에 찍힌 사자의 발자국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사자다! 멋이라는 것이 폭발 중>

그렇게 흔적을 따라 이동하던 트럭이 갑자기 조용히 멈춰 선다. 가이드의 손 끝이 가리킨 수풀 사이로 암사자 두 마리가 여유롭게 누워 노을을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자들은 귀찮다는 듯이 소란을 피해 이동한다. 센스 있는 토마스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사자들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처럼 트럭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사자가 지나갔다. 느리고 위엄 있는 걸음걸이에서는 야생의 여왕다운 품위가 느껴졌다. 그리고 순간, 내가 탄 트럭에 창문이 없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노을 속을 지나는 기린 두 마리>

사자를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국립공원 안은 온통 어둠이 가득했다. 어둠과 함께 찾아온 추위는 창문이 없는 트럭에 힘입어 모두를 오들오들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따듯하게 모닥불이 피워진 캠핑장이 곧 나타났고, 웬일인지 텐트도 미리 세워져 있었다. 신나서 텐트로 들어가려는데 우리 집인 닭장이 없다. 어? 뭐지. 알고 보니 우리 트럭킹 회사인 '아프리카 트레블 코'의 다른 팀이 묵을 캠핑장으로 잘 못 온 것. 재빨리 트럭에 올라타 얼음장 같은 바람을 헤치고 다시 10분 정도를 달렸다. 가다 보니 반대편에서 우리 같은 차 한 대가 달려온다. 트럭이 마주 서자 그쪽 멤버들도 우리가 묵을 캠핑장에 잘못 갔었다고ㅋ 캠핑장 크로스!

<초베 공원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진짜 우리 캠핑장. 비록 샤워실은 없지만 나름 아늑한 간이 화장실이 2개 설치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정겨운 모닥불이 있었다. 맛있게 요리된 찹스테이크를 풍성하게 한 접시 먹으며 미국에서 온 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딘은 여자친구인 샘과 함께 여행 중인데 우리처럼 동남아를 돌아 인도를 거쳐 이곳에 왔다고 했다.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네팔 히말라야와 인도를 꼽았다. 인도는 아마 샘이 좋아했을 것 같다. 그녀는 베지테리언이고 그곳은 베지테리언의 천국이니까.

<캠핑의 꽃, 마시멜로우 굽기 대잔치>

식사가 끝나고 토마스가 긴 나무 꼬챙이를 나누어 준다. 그리고 열린 판도라의 상자 같은 봉지 하나. 마시멜로우다! 영화에서 많이 봤던 캠핑의 꽃, 캠핑의 로망 구운 마시멜로우를 먹는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멤버들에게 수줍게 '이게 나의 첫 캠핑이고, 첫 마시멜로우야'라고 고백했다.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 다양한 마시멜로우 맛있게 먹기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중 최고봉은 호주에서 온 키런의 레시피였는데, 악마의 쨈 누텔라를 바른 두 장의 비스킷 사이에 구운 마시멜로우를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칼로리 폭발에 완전 슈가 하이 제대로 올 것 같은 비법이다.

<부지런히 촬영 중이신 레이첼>

나는 가져온 생수로 간단히 얼굴과 발을 씻고 양치를 한 뒤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모닥불 앞에서 호주에서 온 제프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들어왔다. 하루 종일 국경도 넘고 야생 동물들 쫒아다니느라 피곤했는지 우리 둘 다 머리가 땅에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렇게 5시간쯤 잤을까. 새벽 4시에 출발 예정인 2차 게임 드라이브를 위한 알람이 울렸다. 몽롱한 정신으로 짐을 챙기고 텐트를 걷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차가운 아침 공기에 대비해 옷도 여러 겹 겹쳐 입은 뒤 오픈 트럭에 올라탔다.

<이것이 바로 야생이다!>

어제처럼 국립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저 멀리 여러 대의 트럭들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근처에 다가가니 놀랍게도 한 무리의 야생 개 떼가 방금 사냥한 임팔라로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꽤나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으드득으드득 뼈 씹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진짜 야행의 현장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 여우 한 마리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잠시 뒤 덩치 큰 하이에나 한 마리도 소문을 들었는지 어슬렁대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독수리 떼까지 한 둘 모여드니 개들의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다. 보초 서는 개들은 동료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용맹하게 잔당들을 물리쳤지만, 얌체 여우는 언제 그랬는지 고기 몇 점을 주워 먹고 유유히 사라졌다. 역시 치고 빠지기의 달인. 왜 교묘하게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이들을 보고 여우 같다고 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야생의 개들은 지금껏 내가 알던 그 개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까 말까 한 야생 개들의 식사까지 생중계로 보고 나니 진심 아프리카의 매력에는 출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못 나가면 또 어떤가. 주어진 시간 동안 넘치는 매력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매시간 매초 감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혹시 여유가 생기면 그 매력 하나 내 삶에도 심어 보면 좋겠다. 내 안에 심긴 그것이 나무가 될지 선인장이 될지 꽃지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프리카를 떠나 여전히 보통의 삶을 살고 있을 어느 날, 문득 나타나 지금처럼 나를 기쁘게 해주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