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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천둥 치는 연기' 속으로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아프리카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

#빅토리아폭포 #2017년6월18일

<아프리카 중 남부에 위치한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폴스>

짐바브웨 하라레에 도착하던 날 공항에서 만났던 선교사님은 이곳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은행이나 ATM에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그 말은 즉슨 계좌에 돈이 있어도 뽑아서 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미달러가 조금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 뒤에 꼬리처럼 걱정 하나가 따라붙었는데, 바로 트럭킹 시작과 동시에 그룹 리더에게 식비 명목으로 1인당 530달러를 제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으악, 돈이 모자란다!!

<돈이 모자라아아아아>

돈이 있어도 돈을 낼 수 없다니. 자칫하면 트럭킹을 출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때 한 줄기 빛처럼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주셨던 선교사님의 메신저 아이디가 떠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카톡을 드리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아시는 분이 빅토리아 폴스에서 사업을 하시는데 잘하면 한국돈을 미달러로 환전해주실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대박. 아직 희망은 있다.

<짐바브웨에서 잠비아로 가는 다리>

선교사님이 사장님께 연락을 해주신 결과 환전은 해줄 수 있는데 지금 출장 중이셔서 빅토리아 폴스에는 오늘 오후에나 돌아오신단다. 트럭킹 일정도 오늘은 빅토리아 폴스에 머물며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어서 다행히도 사장님을 만날 시간은 벌었다. 세상에 이렇게 긴박한 작전이 또 있을까. 나중에 따로 연락을 드려 만날 시간을 정하는데 환율은 짐바브웨 현지 사정을 반영해 1달러당 1400원 꼴이라고 하셨다. 우와, 유로인 줄. 그래도 해주시는 게 어디인가. 감사히 100만 원만 환전을 진행하기로 하고,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폭포 구경에 나섰다.

<무지개를 겹겹이 두른 계곡>

남편은 이곳에 오면 짐바브웨와 잠비아 사이에 놓인 111m 높이의 다리 위에서 번지 점프를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우리는 영국에서 온 조디&레이첼, 아일랜드에서 온 모라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온 캐런과 함께 빅토리아 폭포 입구까지 걸어갔다. 그들은 입장료를 내고 폭포를 볼 수 있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입구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다리가 나올 때까지 걷고 있는데 멀리서 떨어지는 폭포로부터 물안개가 비처럼 날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미리 준비해 간 우비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뛰어 내리기 연습 중.>

우리는 먼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구경해보자며 뛸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20분 정도 서성였을까 몇몇의 여자들이 패기 넘치는 점프를 선보였다. 자, 이제 당신 차례야. 우리는 리셉션으로 가서 몸무게를 재고 기본 인적사항을 남긴 뒤 팔뚝에 참여할 액티비티의 정보를 적었다. 남편은 번지점프, 나는 짚라인을 해보기로 했다.

<쓰리 투 원, 번지! 하며 살짝 미는 스탭들ㅋ>

남편이 점프하러 왔다고 안전 요원들에게 팔뚝의 정보를 보여주니 몸에 맞는 안전 장비를 채우기 시작한다. 나는 점차 표정이 어두워지는 남편에게 방정맞게 응원의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다리 위에서 우연히 만난 두 명의 한국인 청년들도 넉살 좋게 '형님 살아서 돌아오세요'라며 농담을 했다. 그렇게 준비는 모두 끝났다. 뛰는 자세를 여러 번 연습한 뒤 드디어 시원하게 뻥 뚫린 번지대 위에 선 남편.

<아 빌립 아 캔 플라이♪>

쓰리, 투, 원, 번지!


남편은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무지개가 뜬 계곡 아래로 두 팔을 활짝 펴고 날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기억을 잃었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돌아와 그때부터 비로소 번지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잘 뛰었냐고 묻자, 그는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살짝 밀더라'.

<엄청난 낙차로 인해 폭포가 구름이 되는 광경>

번지와 짚라인 탑승을 마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오늘의 진정한 하이라이트인 빅토리아 폭포! 입장료를 내고 공원 안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니 드디어 웅장한 그 실체가 드러났다. 폭포에서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가 났고, 바다가 거꾸로 뒤집힌 것처럼 물이 쏟아져 내렸다. 지난밤 잠을 자던 숙소의 텐트 안에서도 우린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함에 나는 잠시 공포감 비슷한 것을 느끼기도 했다. 현지 원주민들이 왜 이 폭포를 두고 '천둥 치는 연기'라고 표현 했는지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곳이 바로 천둥 치는 연기의 품>

공원은 폭포를 여러 가지 포인트에서 볼 수 있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폭포에 가까운 포인트로 갈수록 보슬비 같던 물안개가 굵은 빗방울로 변해갔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의 위력은 마치 작은 태풍 같아서 우비를 입고 있음에도 온몸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눈도 뜨기 힘들 만큼 쏟아지는 물안개를 헤치고 폭포와 가장 가까운 포인트에 도착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미끄러져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서워서 얼른 사진을 찍고 그곳을 벗어나려는데 우리처럼 온몸이 흠뻑 젖은 현지인들이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공원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질 수 없지. 우리도 뛰자!

<폭포의 안개 사이로 깨발라하게 뛰어 다니기>

한바탕 소란스러운 폭포 구경을 마치고 입구 쪽으로 되돌아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이 우릴 반긴다. 살랑이는 바람에 옷을 말리며 걸어가는데 한 무리의 현지인들이 우리에게 '봉쥬르'라고 인사를 한다. 내가 '헬로'라고 답 인사를 하니 갑자기 멈춰 서서 영어를 할 줄 아냐며 놀란다. 어떤 포인트가 놀라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함께 급 셀카를 찍기로 했다. 내가 카운트 다운을 하자 각자 소울 충만한 흥 대방출ㅋ 역시 아프리카 사람들은 따라갈 수가 없다.

<흥 스웩이 폭발하던 셀카 현장>

KFC에서 햄버거와 치킨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사장님과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안내받은 계좌로 한국 돈을 송금해야 했는데, 때마침 인터넷이 잘 안 터진다. 설상가상으로 카톡도 잘 안 간다. 가뭄에 콩 나듯 간신히 터지는 와이파이를 붙들고 한국의 시부모님께 부탁을 드려 사장님 계좌로 입금 성공!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달러를 들고 우리가 있는 숙소까지 와주셨다. 사장님을 도와 함께 일하고 계신 젊은 조카분은 우연히 내 인스타를 봤다며 여행 잘하라고 응원까지 해주셨다. 다시 한번 선교사님과 사장님 그리고 조카분께 단전부터 끌어올린 깊은 감사를 전한다.

<아프리카 KFC 양념치킨 핵꿀맛>

돈을 받자마자 그룹 리더 린다를 찾아가 내야 할 돈을 깔끔하게 청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낮잠을 잤다. 비록 험난했지만 해결이 되어 진짜 다행이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어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아프리카 트럭킹을 하고자 하시는 분이 있다면 미달러를 넉넉히 준비해 오시길 강력히 당부드립니다.

<사장님이 혹시나 해서 추가로 챙겨 주신 남아공 돈 랜드>

저녁은 전통 공연이 열리는 근처 레스토랑에서 그룹 멤버들과 다 함께 먹게 되었다. 나는 캐나다에서 온 코리 옆에 앉아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리는 약간 과묵했지만 먼저 말을 건네면 즐겁게 대화에 임해주었다. 내 앞에 앉은 샘, 케이시, 제시에게는 본의 아니게 우리가 새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 일에 대해서 설명해야 했다.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진땀을 좀 뺐지만 말이다. 이야기 끝에 새로 뽑은 대통령은 좋은 사람이냐고 묻길래 오바마 같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더니 모두가 반색을 하며 정말 잘됐다고 축하를 해주었다. 이제 대통령 때문에 창피할 일 대신 축하받을 일이 많아져 참 좋다.

<맞는 듯 안 맞는 화음이 포인트인 전통공연>

걱정거리도 일단락되고 새로운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오늘까지는 일단 순조로운 항해가 이어지고 있다. 남편은 낯가림이 있는 편이라 아직은 사람들이 약간 불편하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편해질 것을 안다. 앞으로 타게 될 트럭도, 치고 접는데 조금은 서툰 텐트도, 높게만 느껴지는 언어의 장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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