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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짐바브웨 탐구생활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아프리카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

#2017년6월16일~17일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짐바브웨, 빅토리아 폴스>

하라레에서 약 700km 떨어진 국경 도시 빅토리아 폴스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 Victoria Falls'로 유명한 도시이다. 길이 1,676m, 최대 낙차 108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이 폭포는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가르며 인도양으로 향하는 잠베지 강 중류에 위치해 있는데 홍수기인 2~3월에는 분당 약 5억 리터의 물이 쏟아질 정도로 어마무시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 위엄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원주민인 콜로로 족은 빅토리아 폭포를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의 '모시-오아-툰야'라고 불렀다고 한다.

<별 것 아니지만 뭔가 다 멋지다>

도시에 오자마자 장엄한 빅토리아 폴스를 보러 가고 싶었지만, 우선은 지난밤 급하게 묵은 숙소에서 나와 더 저렴한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제 얼추 몸에 익숙해진 각자의 배낭을 메고 어제 방이 없어 퇴짜 맞았던 '맘보 백패커'로 출발. 날씨가 시원해지니 체감상 가방 무게가 절반은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햇볕은 따듯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세상은 마치 방금 물감을 쏟은 듯 노골적인 색채로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 나무 전신주에 붙은 찬양 집회 포스터 하나에서도 말도 안 되게 스웩이 느껴지는 여긴 도대체 뭐하는 동네인가.

<세상이 무너져도 아빠의 어깨는 언제나 든든할 것 같다>

아이는 이 햇살 좋은 날 아빠의 무등을 타고 학교에 간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그들의 행복에 무임승차를 시도해본다. 간간이 들려오는 꼬마 아가씨의 귀여운 웃음소리가 작은 물 수제비처럼 고요한 아침 위에 울려 퍼진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하긴 무엇인들 어떨까. 아이는 아빠의 무등을 타고 학교에 가고 있는데 말이다.

<맘보는 '안녕'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맘보 백패커의 정겨운 대문을 지나니 아프리카 특유의 나무 조각들이 놓인 넓은 정원이 펼쳐졌다. 정원을 가로질러 리셉션으로 향하는데 백패커 직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밖으로 나와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이곳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 참 따듯하다. 그들과 악수를 나눠보면 누구나 그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손으로 통해 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진국인지를 말이다.

<숙소 앞마당 아프리카 갬성 뿜뿜><간단하면서도 든든한 아침식사>

체크인을 하기에 조금 이른 시간이라 짐을 맡겨 두고 밥을 먹기 위해 번화가 쪽으로 향했다. 역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장사꾼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여행 상품을 파는 사람, 나무 조각품을 파는 사람, 엄청나게 단위가 커진 과거 짐바브웨 지폐를 파는 사람까지 참 다양하기도 하다. 나도 기념으로 지폐나 한 장 살까 했지만, 가장 큰 100조 달러가 없다고 해서 가볍게 노땡큐를 시전 한 뒤 치킨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성비 최고인 치킨 체인점 '치킨인'의 세트메뉴>

점심을 먹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근처 대형마트에 갔다. 물가가 생각보다 비싸다. 500ml 코카콜라 한 병이 1달러(약 1,150원)이고, 수건 같은 공산품은 제일 저렴한 것이 9달러(약 10,350원)였다. 실업률이 95%를 육박하는 데다 이렇게 물가까지 비싸면 국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뉴스를 찾아보니 국민의 절반이 구호 식량에 의존해 살아간다는데, 오랜 기간 독재를 해오고 있는 무가베 대통령은 25만 달러짜리 초호화 생일 파티를 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재정 적자를 메우려고 마구잡이로 화폐를 발행해 물가 상승률이 2억 3000만% 까지 치솟는 하이퍼 인플레이션까지 몰고 온 사람이니 말 다했다.

<물가가 후덜덜한 짐바브웨의 마트>

생수와 과자 및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데 짐바브웨 지폐 장사꾼 하나가 따라붙는다. 자신에게 10조 달러짜리 지폐가 있는데 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장 큰 100조 달러짜리 아니면 안 산다고 버텼다. 그러자 그 사람이 주머니에 고이 넣어 두었던 100조 달러 한 장을 꺼내 보여준다. 우리는 돈을 받아 들고 0이 몇 개인지 세기 시작했다. 오, 100조가 맞다. 가격을 물었더니 100조짜리 한 장에 20달러를 달란다. 아무리 희귀 아이템이라도 이건 너무 비싸다 싶어 안 산다고 하니 우리를 붙잡고 자기가 가진 고액권 지폐 7장을 20달러에 다 주겠다고 한다. 살펴보니 20만 달러부터 1억, 5억, 10억, 250억, 10조, 100조까지 다양하게 구성이 되어 있었다. 나름 괜찮은 거래 같아 큰 맘먹고 20달러를 내주고 7장의 지폐를 받아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장 금액이 큰 100조 지폐는 A4 용지에 프린트한 가짜 지폐였다. 만져 보면 종이가 지나치게 빤딱빤딱하고 깨끗한데 당시에는 왜 몰랐을까ㅋ 그래도 나머지는 진짜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달걀 살 때 리어카로 돈 싸들고 가야했다는 그 시절 화폐>

장사꾼과 헤어져 다시 길을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방금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자태의 캐릭터가 나타났다. 라이온 킹의 감초 역할을 담당했던 티몬과 품바의 멧돼지 품바! 똥똥한 몸매에 삐죽 튀어나온 어금니까지 장착하고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 거리를 누비고 있다니. 역시 아프리카는 격이 다르구나. 그렇다면 나도 격에 맞는 대사를 날려 주어야지. '하쿠나 마타타!'

<아프리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만찢캐 품바>

맘보 백패커에서 우리에게 내준 방에는 공주 모기장이 달린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다. 남편은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다가 그 속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문 앞에 놓인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체크한다거나, 새소리를 따라 해본다거나 하는 별 것 아닌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말이다.

<굴러 다니기 딱 좋은 넓디 넓은 침대>

방값도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데 아침까지 준다는 맘보 백패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트럭킹이 시작될 미팅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짐을 싼 뒤 식당이 있는 리셉션 건물로 갔다. 식사는 과일, 씨리얼, 토스트, 계란 프라이, 소시지로 호화롭게 차려졌고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숙소 앞마당 아프리카 갬성 뿜뿜><간단하면서도 든든한 아침식사>

한참 식사를 하는데 맘보 백패커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여자 아이 두 명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먼저 식사를 끝낸 남편이 소파에 앉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노래 타임이 시작되었다.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언니와 함께 우리를 위해 10곡이 넘는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노래마다 제각각인 율동도 어찌나 살뜰히 잘 추는지 박수가 절로 나왔다. 우리 둘만을 위해 펼쳐진 게릴라 콘서트가 따로 없었다.

<게릴라 콘서트의 매력적인 꼬마 주인공들>

아이들의 신나는 게릴라 콘서트가 끝나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짐을 싸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번에는 트럭킹의 시작점이자 가이드 미팅 장소인 '시어 워터 빌리지'로 향한다. 트럭킹의 진짜 출발은 내일이지만 출발 전 함께 떠날 멤버들과 사전 미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전 침대에서 자는 낮잠이 진짜 꿀잠>

'시어 워터 빌리지'의 리셉션에 가서 '아프리카 트레블 코'의 트럭킹을 신청했다고 말하니 야전 침대가 장착된 텐트 하나를 내준다. 아, 오늘부터 텐트에서 자는 것인 줄은 몰랐는데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그나마 오늘은 출발 전이라 침대라도 있지만 내일부터는 매트 한 장 깔고 잠을 자야 한다. 겨울이라 저녁에는 꽤나 쌀쌀할 텐데 침낭이 얇아 괜찮을지 모르겠다.

<침낭 사러 마트 가는 길에 만난 원숭이 가족>

앞으로 우리가 타고 갈 트럭도 사진에 담아보고, 얇은 침낭을 보조해줄 두터운 보온 이불도 하나 구매한 뒤 물어 물어 미팅 장소를 찾아갔다. 우리가 소식을 늦게 접했는지 다른 멤버들은 이미 모두 모여 사전 공지를 듣고 있었다. 자리에는 가이드 겸 그룹 리더인 케냐 출신 '린다'와 영국, 아일랜드, 호주, 캐나다, 미국에서 온 16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때부터였을까. 강제 영어 듣기 평가가 시작된 것이.

<21일간의 대장정을 함꼐할 우리 그룹의 트럭>

미팅이 끝난 뒤 다 함께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우리는 영국에서 온 두 명의 여자분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녀들의 이름은 조디와 레이첼. 두 분은 친구 사이인데 긴 휴가를 내고 함께 먼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오셨다고 했다. 평소에 즐겨 보던 셜록이나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 이야기나 여행에 관한 간단한 대화들을 이어가며 앞으로의 여행이 지옥의 영어 캠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부디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한결 편해져 있길. 아니 그보다 당장 21일을 함께할 이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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