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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낯선 땅, 아프리카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아프리카 #짐바브웨 #하라레

#빅토리아폴스 #2017년6월14일~15일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불가마 인도를 벗어난 비행기는 15시간을 날아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짐바브웨에 멈춰 섰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파랗다 못해 투명한 아프리카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듬뿍 마셨다. 그 순간 지난 한 달간 벗어날 수 없었던 더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가을의 문턱에서나 느끼던 요상한 울렁임이 가슴 언저리에 일렁였다. 아마도 '아프리카'라는 완벽하게도 낯선 단어가 만든 파장인 듯했다.

<날씨가 넘나 좋아 어깨 춤이 절로 나온다>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발을 딛게 된 짐바브웨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도 유명한 나라인데, 한 때 계란 3알을 사기 위해 1,000억 짐바브웨 달러가 필요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달러와 새롭게 발행한 달러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 사용하던 10조 달러 라던가 100조 달러 등은 관광객들의 기념품으로 판매가 되고 있다.

<어서와, 아프리카는 처음이지?>

이 나라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입국 심사 시 30달러를 내면 바로 발급을 해준다. 인접 국가인 잠비아의 비자비는 50달러인데 짐바브웨에서 바로 넘어갈 계획이라면 짐바브웨-잠비아 유니 비자라는 것을 50달러에 발급받을 수 있다. 비용면에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 셈이다. 단, 유니 비자는 짐바브웨에서 잠비아로 바로 넘어갈 때만 유효하다. 다른 나라를 거쳐서 가면 해당이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조형물 하나하나 아프리카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앞으로 내가 보게 될 낯선 것들에 대해 잔뜩 준비를 하려는 잘나 어디선가 홀연히 한국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고개를 돌린 곳에는 '기아대책본부'의 조끼를 입으신 한국인 세 분이 서 계셨다. 정말 우연의 일치로 오늘 한국에서 단기 선교팀이 오기로 해 마중을 나오셨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여행객이라고 말씀드리니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여행을 다 왔냐며 반가워하신다. 그리고는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메신저 아이디까지 알려 주시는 따스함. 왠지 앞으로의 여정이 술술 풀릴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알록달록 원색적인 색감이 돋보이는 하라레 숙소>

우리는 이곳 하라레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 아침 일찍 잠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빅토리아 폴스'로 이동을 해야 한다. 그곳에서 출발해 21일 동안 여러 국가의 사람들과 함께 큰 트럭을 타고 케냐까지 이동하는 '아프리카 트럭킹'을 신청해 두었기 때문이다. 가격은 이동 경비, 가이드비, 텐트 숙박비, 국립공원 게임 드라이브 등을 포함하여 1인당 150만 원 정도이다. 여기에 출발 전날 가이드에게 1인당 50만 원 정도를 식비 명목으로 추가 납입해야 한다. 우리도 꽃청춘처럼 렌터카로 자유여행을 했으면 조금 더 저렴할 수 있었겠지만 이곳 치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터라 안전하게 트럭킹을 이용하기로 했다.

<현지인들의 발이 되어주는 봉고 버스>

숙소에서 소개해 준 택시를 타고 근처 버스 터미널로 가서 빅토리아 폴스행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나니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은 온통 도로뿐이었고, 아직은 적응 단계인 아프리카인들의 낯선 생김새에 조금은 겁도 났다. 그렇다고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정처 없이 번화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 보니 낡은 봉고차들이 중간중간 정차해서 사람들을 태우는 모습이 보였다. 4개월차 여행자의 직감으로 이건 100% 로컬 버스다. 몇 번 눈치를 본 뒤 멈춰 선 봉고로 다가가 운전기사에게 시내에 가냐고 물었더니 맞단다. 가격은 약간의 흥정을 통해 미달러로 둘이 1달러(약 1,200원).

<이은결이 와도 이렇게는 못할듯>

작은 봉고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맨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기한 것은 꽉 찬 봉고에 계속 사람이 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가능해?라고 말할 정도로 사람이 타고 타고 또 탄다. 처음 보는 이 경이로운 광경은 아프리카 여행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자, 아프리카 매력 속으로 출발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라고 말이다.

<아프리카 귀요미는 나야 나, 나야 나>

사람을 가득 실은 봉고가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는 동안 나는 옆 자리에 앉은 꼬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큰 눈에 귀여운 미소가 비현실적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는 아빠와 함께 엄마에게 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은 뒤 꼬마와 셀카를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히히'하며 또 귀여움 폭발 미소를 날려준다. 심쿵사 예약이다.

<파란 투피스를 입은 진정한 색감 깡패 언니>

번화가에 멈춰 선 봉고에서는 마치 마술을 하듯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줄줄이 내렸고, 그 꽁무니를 따라 우리도 차 밖으로 나왔다. 나는 꼬마의 아버지에게 이 근처 맛있는 밥집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치킨&피자 집 앞에 우릴 데려다주시고 쿨하게 떠나셨다. 아 친절하다 짐바브웨 사람들.

<이 판을 먹어치워 가볍게 Yo>

그동안 인도에서 강제 채식주의 생활을 해왔지만, 이곳에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육식의 나라에 온 기념으로 돼지, 소, 닭이 모두 들어가 있는 미트 스페셜이라는 피자를 시켜 온갖 감탄을 내뱉으며 식사를 했다. 이렇게 뼛속까지 영양분이 공급되는 것 같은 식사는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생동감이 넘치는 하라레 번화가의 풍경>

배도 든든하게 채웠겠다 거리로 나와 이곳저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 이런 낯선 곳에 오면 무섭기도 하고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잘 다니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인도에서 하도 강하게 단련을 해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거칠 것 없이 거리를 누빌 수 있었다.

<옥수수 하나씩 물고 동네 구경 시작>

현지인들은 길가에서 파는 거대한 군옥수수 하나씩을 물고 여기저기 기웃대는 조그만 동양인 둘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우리도 그들이 재미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윤기 나는 검은 피부가 아름다웠고, 그 위로 걸쳐진 화려한 색감의 옷들이 정말 멋졌다. 눈으로 흡수되는 모든 삶들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자꾸 경쾌해져 갔다. 마주치면 '헬로'라고 인사하는 우리의 거침없는 행보에 이런저런 말을 거는 현지인들도 점점 많아졌다. 짐바브웨어로 옥수수가 뭔지도 알려주고 말이다.

<세상 친절하고 유쾌한 짐바브웨 사람들>

이 기세를 몰아 집에 돌아갈 때도 로컬 버스를 타려고 세워져 있던 아무 봉고나 찾아가 기사 아저씨께 말을 걸었다. 지도를 보여주고 이쯤으로 가냐고 물으니 안 간단다. 그러더니 차에서 내려 자기 휴대폰으로 택시를 불러 준다. 가격도 알아서 저렴하게 흥정해주시고. 짱. 택시가 오기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잘 통하지 않는 영어로 한바탕 수다를 떤다. 대화에서 언어가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은 대화가 지속되기 위한 '질문'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거기에 누구 하고도 편견 없이 이야기를 나눌 열린 마음만 있다면 비록 영어가 짧아도 대화는 풍요로울 수 있다.

<20시간 대장정의 서막. 영혼이 이탈 중.>

아프리카 적응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 날, 우리는 새벽 6시 반 '빅토리아 폴스'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오른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털모자에 패딩 차림이다. 이곳이 지금 겨울이기 때문이다. 기온은 10~20도를 왔다 갔다 하는 정도로 우리에겐 딱 좋은 날씨지만 이들에게는 너무너무 추운가 보다. 버스가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나자 중간쯤에 앉은 분이 벌떡 일어나 눈을 감고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현지 언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버스에서 기도를 하는, 기도가 끝나고 모두가 '할렐루야'를 외치며 박수를 치는 이 문화는 크리스천인 나에게도 매우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삶과 밀착되어 있는 그들의 신앙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무거운 간식 박스를 번쩍 번쩍 들어 올리는 여인들>

20시간이나 가야 하는 버스에 마실 것 하나 없이 덜렁 탑승한 우리는 점차 목마름에 지쳐갔다. 그때 기적적으로 버스가 중간 마을에 멈추어 섰다. 버스가 멈추자 음료와 과자를 파는 여인들이 일제히 다가와 물건이 든 무거운 상자를 창가까지 힘차게 들어 올려 장사를 시작한다. 우리도 창가로 물 하나와 콜라 하나를 사고 빵도 하나 사서 지친 몸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이다음에 멈춰 선 휴게소에서는 단돈 2달러에 티본스테이크도 사 먹을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고무만큼 질긴 고기를 전투적으로 뜯어먹는 우리를 보고 '그 녀석들 참 잘 먹네'라는 표정을 지었다.

<타이어 씹는 것 처럼 질겼지만 소스는 맛있었던 스테이크>

버스는 그렇게 17시간을 달려 엉덩이에 쥐가 날 때쯤 빅토리아 폴스에 도착했다.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숙소 예약도 안 해 놓은 상태라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버스에서 내린 곳에 택시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리 봐 두었던 숙소까지 10달러에 이동을 하기로 하고 가보니 방이 없단다. 그래서 기사 청년에게 5달러를 더 주고 근처에 비슷한 가격대의 숙소를 추천받아 겨우겨우 짐을 풀 수 있었다.

<늦은 밤, 겨우 찾아 들어온 빅토리아 폴스 숙소 앞>

직접 아프리카에 오기 전 이곳은 나에게 그저 미지의 세계일 뿐이었다. 조금 아는 것이라고는 흑인들이 사는 곳 혹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도움이 필요한 나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 막 들어선 지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했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 살아있는 배움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두려움과 편견은 내려놓고 이 완벽하게 낯선 대륙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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