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아프리카 #말라위 #레이크말라위
#칸데비치 #치팀바비치 #2017년6월24일~26일
테이블 자리에 앉기 시작한 지도 열흘이 지났다. 이 정도 불편을 참았으면 우리도 편한 자리에 앉을 때가 된 것 같아 어젯밤 트럭 문단속하기 전 맨 뒷자리에 짐을 올려 두었다. 그 덕에 쟁여 두었던 간식도 마음껏 꺼내 먹고 잠도 편히 자면서 말라위 국경으로 향할 수 있었다.
잠비아에서의 출국 처리는 빨랐는데 말라위에서의 입국 심사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비자비도 역대급으로 비싸고. 1인당 무려 75달러. 후덜덜한 비자비를 내고 여권을 린다에게 맡긴 뒤 서류 처리가 끝날 때까지 햇볕 좋은 밖깥에서 광합성을 했다. 기다리기가 지루해질 때쯤 호주에서 오신 켈리 아줌마와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켈리는 그녀의 어머니인 엘리와 이번 여행을 함께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일찍 결혼을 해 벌써 손자 손녀가 있는 할머니지만 1년 중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하고, 쌀쌀한 겨울 난로 앞에서 마시는 핫초코를 사랑하는 소녀 감성의 소유자이다. 그런 그녀와 좋아하는 요리 이야기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별 탈 없이 입국 심사가 끝이 났다. 아산테 사나, 린다!
말라위는 세계에서 9번째로 큰 호수를 가진 아프리카 남동부의 나라이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호숫가에 위치한 '칸데 비치 Kande Beach' 캠프 사이트에 텐트를 쳤다. 앞으로 이틀간은 이동 없이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저녁 먹을 때까지 대략 두세 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져 남편과 함께 호숫가로 나갔다. 바다를 닮은 말라위 호수에는 파도도 있고 모래사장도 있었다. 호수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면 그냥 바다라고 믿어도 무방할 정도의 풍경이었다.
노을을 보며 보드라운 모래사장을 걷던 중 멋진 개 한 마리가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파스텔톤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 멋지게 누워 파도를 바라보는 개라니.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개는 왠지 사람의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볼까 잠시 고민했으나 혹시나 개가 심오한 질문으로 역공을 날릴까 봐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호숫가에 놓인 조그만 나무배가 궁금해 다가갔더니 장사꾼들이 하나 둘 몰려온다. 우리는 그저 친구가 되려는 줄 알고 대화에 임했으나 결론은 팔찌를 사든 나무 조각품을 사든 레게 머리를 하든 정하라는 것이었다. 팔찌와 나무 조각품을 안 산다고 하니 뱃머리에 우리 둘을 앉혀 놓고 갑자기 머리를 따주기 시작한다. 샘플로 한가닥씩을 따주고 나서 20달러를 내면 머리 전체를 해줄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비싸서 정중히 거절하고 황급히 그곳을 떠나왔다.
산책을 마치고 저녁 준비가 한창인 트럭 옆으로 가니 호주 커플 키런과 케이시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까 트럭에서 돈을 걷어 사온 과일과 주스와 술들로 '펀치 Punch'를 만드는 중이었다. 펀치는 와인과 위스키에 과일 및 주스 등을 섞어 만든 달달한 파티용 술 같은 것인데 검색을 좀 해보니 그 기원이 의외다. 이 술은 원래 '다섯 가지'라는 의미를 가진 인도어 '폰추'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보통 술, 차, 설탕, 물, 레몬주스 등의 다섯 가지 재로로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인도 바닷가 지역인 고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역시 맛있는 것은 돌고 돌기 마련이다.
남편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다시 호수로 가서 수영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호숫가 테이블에 앉아 남편이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때 옆에 있던 켈리와 베쓰와 니키가 해 질 녘에는 악어가 나타날 수 있으니 수영을 자제하라는 공지를 화장실에서 보았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호수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오빠! 악어 나온대! 빨리 나와! 빨리빨리!' 사실 악어가 막 돌아다니고 그런 해변은 아니었지만 나는 혹시나 남편이 물려 갈까 봐 조바심이 났었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세 명의 멤버들은 트럭킹이 끝나는 날까지 이 일로 나를 놀려먹었다. 쳇.
밤이 왔고 오늘도 맛있는 저녁이 차려졌다. 밥도 먹고 키런과 케이시가 만든 펀치도 한 잔 마신 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구경하러 다시 호수를 찾았다. 어둠이 내린 조용한 모래사장에는 별들의 반짝임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 아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를 들었다. 밤이 밝을 정도로 별이 빛났다. 그동안 해와 구름이 필사적으로 별들을 숨겨왔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너무 아름다운 것들에게 낮의 자리까지 빼앗길까 봐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된다. 별이 가득한 하늘은 그 정도로 아름다우니까.
아침 8시. 10달러를 내고 마을 투어에 나섰다. 안내를 해줄 가이드와 함께 캠프 사이트 입구에 설치된 철문을 열고 나서자 대략 10명이 넘는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재미있는 것은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한테는 아무도 안 온다는 것이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다들 투어가 끝나면 무언가를 팔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5분을 따라 걷다가 작은 원두막 같이 생긴 물건 앞에 멈춰 섰다.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고 하니 닭장이란다. 닭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밤에는 사다리를 치워두고 낮에 풀어 줄 때 다시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게 우리 텐트 이름인 'Coop'이잖아!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우물에서는 물 긷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펌프질 하는 시범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애들이 온통 몰려나와 우리 그룹을 에워쌌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때도 안아 달라고 하거나 손에 손을 잡고 걸으며 신나 했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런 해피 바이러스들 같으니라고.
사진을 찍어주려고 핸드폰을 꺼내니 소녀들이 모델 뺨치는 포즈를 뽐낸다. 이곳에 오는 여행객들이 많이들 찍어주고 가서 그런지 엄청나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찍은 사진을 막상 보여주면 좋으면서도 쑥스러운지 자기들끼리 입을 가리고 꺄르르댄다. 귀여운 녀석들.
서로 손을 잡으려고 경쟁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휩쓸려 한참을 걷다 보니 마을 병원이 나타났다. 병원 안쪽에 침상이 있는 방에는 산모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중에는 30분 전에 막 태어난 아기도 있었다. 다행히 산모는 방금 출산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엄마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을 자는 아기의 앞날을 위해 잠시 기도를 한 뒤 그곳을 나와 병원 소개를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인력과 물품이 많이 부족한 상황임을 설명한 뒤 후원금을 부탁한다. 우리는 후원함에 돈을 넣으며 한 명이라도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학교. 하지만 일요일이라 공부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의 학교 소개를 잠시 들은 뒤 아이들을 위해 후원금을 낸 것이 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교회. 예배가 한창인 교회 안에서는 헌금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타악기 말고는 별다른 반주도 없었지만 그들의 찬양은 풍성했고, 가볍게 흔드는 율동에 스웩이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이런 헌금 시간은 처음이었다.
동네 구경이 절반쯤 접어들었을 때 우리에게도 장사꾼 한 명이 붙어 계속 대화를 하며 걸었다. 그는 정중했고 친절했으며 자신의 물건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어가 끝나니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그림 가게로 우릴 안내했다. 처음부터 그저 팔려고만 했다면 가게에 들어가지도 않았겠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우리와 대화하는 모습이 고마워서 그림을 하나 사기로 했다. 그런데 A4 용지만 한 그림 하나에 60달러를 달란다.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캠프 사이트로 돌아가려는데 그가 남편을 붙잡고 추가 흥정을 시도한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몇 번의 흥정 끝에 엄청난 디스카운트로 6달러에 그림을 사가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지갑을 가진 나는 이미 텐트에 돌아간 뒤여서 남편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왔다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현지인들과 함께하는 낚시 체험에 나섰다. 어제 보았던 그 작은 고깃배에 나와 남편 그리고 제프, 니키, 조디, 레이첼까지 총 6명이 탔고, 노를 저을 현지인들이 6명 정도 추가로 배에 올랐다. 호수는 잔잔하지 않았다. 그래서 크게 밀려오는 파도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배는 좌우로 심하게 요동쳤고 물도 막 차올랐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보던 풍랑 만난 배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진심 무서웠다. 하지만 잔근육이 영화 300 못지않던 여섯 명의 선원들은 힘찬 구령과 함께 열심히 노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는 기적적으로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낚시가 처음이었다. 지렁이를 낚시 바늘에 꿸 줄도 몰랐다. 하지만 '사인 업'이라는 소년이 지렁이 꿰는 것도 알려주고 낚시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섬 바위에 올라 어디에 낚싯대를 드리울까 내려다보는데 물이 끝내주게 맑아 속이 훤히 보인다. 물고기들이 많은 곳은 알았으니 이제 냅다 들어 올리는 타이밍만 찾으면 되지만 당최 쉽지가 않다. 그래도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결국 첫 물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었다. 오 재미있다. 새로운 재미로구나. 지렁이를 바늘에 꿸 때 느껴지는 죄책감만 없으면 취미로도 그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뭍으로 돌아가는 길은 파도 방향과 같아 아주 순조로웠다. 호숫가에 다다르자 노를 젓던 선원들이 뛰어내리더니 얼른 내려 배를 같이 밀라고 재촉한다. 우리는 모두 바쁘게 내려 원투쓰리를 외치며 무거운 배를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았다.
내가 섬에서 낚시에 집중할 동안 남편은 낚시 선생님과 친구가 됐나 보다. 낚시가 끝나고 현지인들과 로컬 맥주인 '바나나 맥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단다. 제프도 같이 가니 걱정 말라고 해서 다녀오라고 보내 주었다. 나중에 남편은 2L의 바나나 맥주를 마시고 아까 못 샀던 그림까지 5달러에 사가지고 돌아왔다. 맥주집에서 그림 장수를 다시 만났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교환하자고 해서 셔츠 하나를 주고 팔찌를 받아 왔는데 행복해하는 그의 표정에 남편이 되려 기분이 좋아졌다고. 공산품이 귀한 말라위에서는 이런 물물교환은 흔한 일이다. 같이 갔던 제프는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줬다는ㅋ
호숫가에서의 이틀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지만 아직 북쪽에 위치한 '치팀바 비치 Chitimba beach'에서의 하루가 더 남았다. 아침을 먹고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치팀바는 주변에 산이 있어 칸데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났다. 늘 그랬듯 우리는 먼저 텐트를 치고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해변에서 멤버들과 함께 비치 발리볼을 했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비치 발리볼이 처음이었다. 아프리카에 와서 정말 처음 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경기는 4대 4로 팀을 나누어 진행됐고, 처음에 서브하는데 약간의 애를 먹었다. 하지만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름의 비법들을 전수해 주었고, 곧 경기 흐름을 끊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열심히 생애 첫 비치 발리볼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남편은 친친 제프와 함께 동네 아이들이 가져온 공으로 모래사장 축구를 했다. 아이들은 축구공 살 돈이 없어서 풍선에 신문지를 여러 겹 덧댄 후 끈으로 묶어 공처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끝내주게 그림을 잘 그리던 어떤 아이는 펜이 안 나와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은 가방에 있던 펜 하나를 내어 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우리에게 학교 주소를 알려주며 한국에 가면 이곳으로 축구공과 공책과 연필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당장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나중에 필요한 물건들을 꼭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난 앞에 서면 난 늘 이렇게 무기력해진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조금씩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나누는 것만으로 되는 걸까. 아름다운 풍경이 걷히고 가난의 흔적이 드러나니 생각이 깊어진다. 여행을 비롯한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미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