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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카리부 사나, 탄자니아!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아프리카 #탄자니아 #이링가

#다르에스살람 #잔지바르 #스톤타운

#2017년6월27일~29일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탄자니아>

트럭이 아직 채 밝지 못한 말라위의 새벽을 달린다. 540km의 긴 여정을 앞둔 사람들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아직 끝내지 못한 잠에 빠져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길 위를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따스한 햇살에 눈을 뜨니 아침 9시가 다 됐다.

<눈이 멀 것 같은 아프리카의 태양 때문에 선글라스 필수>

트럭에서 내려 출입국 심사를 마친 뒤 탄자니아에 입성. 국경은 이른 아침부터 과일과 야채 등을 팔러 나온 여인들로 북적였다. 린다는 트럭 창문을 열고 여인들에게 미니 바나나 두 송이를 산 뒤 멤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잘 익은 바나나를 먹으며 확연히 달라진 창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국경에 다다르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푸르른 들판이 펼쳐진 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렸다. 장시간 이동에 모두들 점점 지쳐가고 있는 와중에 린다가 떡밥 하나를 던진다.


'오늘 도착하게 될 이링가 캠프 사이트에 킹왕짱 맛있는 브라우니랑 핫초코를 팔아'


초콜릿을 유독 좋아하는 서양인들은 모두 환호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좋을까 싶을 정도로 기대감을 잔뜩 표현하며 말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아직 영어 듣기가 익숙지 못한 남편은 나에게 '뭐야, 무슨 상황인 거야'라고 묻는다. 영어 실력이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닌데 아프리카에 와서 이렇게 강제 통역사 노릇을 하려니 머리가 아프다. 내가 영어를 알아듣는 것은 순전히 미드와 영드의 덕이기 때문에 문장 자체가 구조적으로 들려오진 않는다. 남편 말로는 내가 문법을 공부하지 않아서 그런단다. 음, 맞아. 그게 좀 지루하긴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그 의미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생존 영어니까, 이 정도면 됐지 않은가. 남편에게 통역해줄 때 가끔은 추리가 가미되기도 하지만 야매에게 뭘 바라나. 이게 야매의 스케일인 것을.

<하루종일 푸르른 들판을 보며 달린다>

'이링가 lringa'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7시가 다 되어 간다. 우리가 텐트를 칠 동안 모이는 서둘러 밥을 하고 하루 종일 운전하시느라 수고하신 톰은 간이 의자에 앉아 맥주 한 병을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메뉴는 맛있는 찹스테이크와 샐러드! 한 접시 가득 먹고 그 유명하다는 핫초코를 마시러 Bar를 찾아 나섰다. 베쓰가 가는 길을 알려줬는데 한참을 가도 나타날 생각을 안 하는 핫초코 맛집. 이렇게 Bar가 멀리 있는 캠프 사이트는 처음이었다.

<상상에 몰입도를 높여주는 달이 빛나는 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작은 등불을 매단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흙집이 나타났다. 하늘을 가득 매운 밝은 달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와 엄청나게 잘 어울리는 비주얼이었다. 나는 마치 아프리카 주술사의 비밀 공간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조용히 내부로 들어갔다. 흙벽으로 둘러 싸인 공간에는 테이블마다 초가 놓여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나른한 표정의 여인에게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커튼이 쳐진 공간에 들어가 잠시 달그락 거리더니 김이 나는 핫초코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녀가 내 핫초코에 개구리 눈알이라던가 도롱뇽 꼬리 같은 것을 넣고 휘휘 저으며 주문을 외우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이 공간 이 분위기라면 매우 설득력이 있는 상상이다.

<제조 과정이 비밀에 쌓여 있는 마법의 코코아 등장>

달콤하게 피로를 녹이는 마법의 핫초코를 마시고 텐트 곁으로 돌아가니, 브라우니 케이크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린다가 생일을 맞은 딘을 위해 미리 주문을 해 두었던 것이라고 한다. 나는 남은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며 감탄을 했다. '이 브라우니에도 마법이 걸린 것이 틀림없어!'라고 말이다.

<오늘도 10시간이 넘어가는 끝없는 이동>

달달했던 밤을 지나 다시 찾아온 새벽. 4시부터 출발 준비를 하기 위해 억지로 잠에서 깨어났다. 5시 반 아침 식사라고 해서 나름 일찍 일어난 건데 다들 벌써부터 텐트를 접고 난리다. 뭐지. 뭘까. 굉장히 의아해하며 눈치껏 서둘러 텐트를 접고 준비를 마쳤다. 아침을 먹고 장기간 이동에 대비한 점심 샌드위치도 싼 뒤 트럭에 오르니 5시다. 남편과 나는 왜 이렇게 일찍 출발하는 것일까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찾아온 깨달음의 순간. 탄자니아 시간이 말라위 보다 한 시간 빠름ㅋ 하루 종일 차만 타고 이동하다 보니 시간 체크할 일이 없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나마 일찍 일어났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탄자니아의 바오밥은 이렇게 생겼다>

'이링가 lringa'에서 '다르에스살람 Dar es Salam'으로 가는 길에서는 수백 그루의 바오밥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던 신이 거꾸로 던져 심은 듯한 모습의 바오밥 나무는 마다가스카르에서만 볼 수 있고 탄자니아의 것들은 가지가 부산스럽게 많은 형태를 띤다. 이렇게 바짝 말라 보이는 바오밥 나무에도 꽃이 피긴 핀다고 한다. 비록 수십 년을 자란 후에야 피는 데다, 일단 핀다 해도 2~3일이면 떨어지기 때문에 볼 기회가 흔치는 않다고.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 출처: 구글>

어린 왕자가 하루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별을 통째로 삼킬 듯 자라났던 그 바오밥 나무는 최대 2000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단출하게 100년도 못 사는 나는 나무의 기나긴 삶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무는 짐작도 안 되는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을 스쳐간 바람이며 햇살까지 모두 기억하겠지. 그리고 그 기억은 고스란히 마음 깊은 곳에 테가 되어 남을 것이다.

<가젤은 이제 동네 개처럼 흔한 동물이 되어 버렸다.>

트럭이 '미쿠미 국립공원 Mikumi National Park' 사이로 난 길 위를 달릴 때는 좌우로 임팔라나 가젤, 얼룩말 같은 동물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다 동물도 보다 바오밥 나무도 보다 간식도 먹다 보니 드디어 '다르에스살람 Dar es Salam' 입성. 내일은 페리를 타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잔지바르 섬으로 들어가는데, 멤버들 중 일부는 그곳에서 트럭킹을 끝내게 된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캠프 사이트 Bar에 가서 늦게 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프리카 대표 맥주 킬리만자로>

케런은 곧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인데 남자 친구가 스쿠버다이빙 중 물속에서 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밀며 프러포즈를 했다고 한다. 로맨틱 갑. 그렇게 결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묻길래 만 나이로 서른이라고 하니 뻥치지 말라며 야단이다. 내가 체구가 작아서 그렇지 꽤 오래 살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니 동양인들 나이는 짐작이 안된다며 혀를 내두른다. 나도 너희가 다 내 또래인 줄 알았단다ㅋ

<바다를 가로질러 아침으로 가는 사람>

바다와 가까워지니 아침 풍경이 또 다르다. 오늘은 조금 여유롭게 7시 출발 예정이라 해변에 나와 조깅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바다를 뚫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해를 향해 천천히 달리는 이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남편도 해안을 따라 시원하게 뛰어보고 싶어 했지만 트럭에 시동이 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환영합니다 호텔'의 퀄리티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작은 바지선을 타고 바다를 건넌 후 그곳에서 택시로 15분 정도를 가니 페리 선착장이 나타났다. 선착장에서 잔지바르 섬까지는 약 1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섬에 도착하니 커다랗게 '카리부 Karibu'라는 글씨가 보인다. '환영합니다'의 의미를 가진 스와힐리어이다. 여기에 '매우'의 뜻을 가진 '사나 Sana'를 붙이면 '열렬히 환영합니다'인 '카리부 사나 Karibu Sana'가 되는 것이다. 탄자니아에서는 이렇게 스와힐리어와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는데, 이 외에도 린다가 몇 가지를 더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 아산테 Asante'

'안녕하세요 = 잠보 Zambo'

'네, 그래 = 사와사와 Sawasawa'

<병이 예쁜 아프리카 사이다 '사바나'>

잔지바르 시티인 '스톤타운'에 도착해 린다가 미리 예약해준 호텔로 갔는데 하룻밤에 무려 50달러나 한다. 하지만 말이 호텔이지 엄청나게 허름한 곳이어서 가성비가 아주 별로였다. 대신 위치는 아주 좋았다. 숙소 바로 앞에 은행이 있어서 ATM 이용도 쉽고 번화가와도 가까웠다. 그래서 다른 멤버들이 향신료 투어를 한다고 무리 지어 나간 동안 우리는 트립어드바이저에 소개된 집 근처 맛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곁들여진 화이트 소스가 엄청난 맛을 내는 생선 스테이크>>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6 Degrees South Grill and Wine Bar'에 앉아 시원하게 사바나와 킬리만자로 맥주를 마시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다. 오늘의 메뉴는 생선 스테이크와 소고기 스테이크. 소스부터 굽기까지 뭐하나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이 만찬이 다 합쳐서 2만 원도 안된다. 맛은 두말할 것 없이 끝내준다. 생선 스테이크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니.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간다.

<잔지바르 앞 바다는 맑고 푸르고 아름답다>

식사를 마치고 지나가다 발견한 아이스크림 집에서 젤라또로 입가심을 한 뒤 본격적으로 동네 구경에 나섰다. 이곳은 참 묘한 구석이 많다. 바다 옆으로 넓게 트인 길을 걷다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좁다란 골목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다. 길을 잃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스톤타운의 골목에는 숨겨진 매력들이 가득이다.

<저 골목들 사이에 더 작은 골목들이 가지처럼 뻗어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문'이다. 나무 소재에 금속으로 장식을 넣은 이곳의 문은 꼭 우리네 한옥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고유의 문양들이 자아내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독특하다. 나중에 나에게도 무엇이든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내 집이 생긴다면 저런 모습의 문 안에 살고 싶다. 사람이 드나들수록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세월이 드러나는, 저 안으로 들어가면 세상 모든 근심 내려놓고 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따듯한 문 말이다.

<한옥의 문을 떠올리게 하는 잔지바르의 문>

골목골목을 헤매다 보니 어느덧 기념품 상점이 길게 늘어진 메인 거리가 나타났다. 딱히 물건을 살 생각은 없지만 궁금하니 무엇을 파는지는 들어가 보기로 했다. 1층에는 열쇠고리, 자석을 비롯해 커피와 차 그리고 조각들을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로 나무로 만든 동물 조각이나 샐러드 스푼 같은 것들을 여러 개씩 장바구니에 담았다. 2층에는 그림과 옷, 전통 게임 등을 팔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눈에 띄었던 기념품은 사자 발자국이었다. 멋지긴 한데 이걸 어디다 쓰지라고 의문이 들 찰나 조그마한 메모지에 쓰인 사자 발자국의 용도가 눈에 띄었다. 땅콩 접시나 재떨이 혹은 종이를 누를 때 쓰는 문진으로 쓰란다. 음, 설득력 있다.

<땅콩 접시로 쓰기엔 너무 고퀄 아닙니꽈아>

동네 구경이 끝나고 우리는 ATM 앞에서 '세렝게티에 갈 것이냐 말 것이냐'에 관한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세렝게티는 선택 투어라서 1인당 518달러(약 60만 원)라는 큰돈을 따로 내야 했는데, 우리에게 남은 달러는 이제 케냐 들어갈 때 사용할 비자비뿐이었다. 예산에 타격은 크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세렝게티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미친척하고 돈을 뽑기로 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가 있다. ATM에서는 현지 통화인 실링만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현지화로 뽑으면 무려 230만 실링을 뽑아야 한다. 여기서 세 번째 문제는 한 번에 뽑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 20만 실링뿐이고 수수료는 그때마다 3,000원씩 나간다. 그렇게 무려 12번을 인출해야 겨우 낼 수 있는 돈이 마련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탄자니아 국기>

이 복합적인 문제는 돈이 1만 실링 짜리 지폐 240장으로 나왔다는 것으로 방점을 찍었다.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니지 고민 고민을 하던 중 결국 안전을 위해 달러로 이중 환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바꾸고 나니 손에는 100달러짜리 지폐 12장이 달랑 들렸다. 편하긴 했지만 수수료로 도대체 얼마를 날렸나 생각하면 눈 밑에 경련이 인다. 세렝게티 한 번 가려고 참 고생한다.

<각종 해산물이 가득한 스톤타운 나이트 마켓의 위엄>

고생을 했으니 저녁은 주말 밤마다 열린다는 유명한 나이트 마켓에 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6시쯤 밖으로 나가 마켓이 열리는 공원에 가니 잔지바르에 사는 사람은 모두 나와 앉아 있는 듯했다. 발 디딜 틈 없이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온 가족이 앉아 음식을 먹는다. 원래 이렇게 인기가 많은 장터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지금이 라마단 기간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라마단은 이슬람인들이 금식을 하는 신성한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간이 끝난 다음날 부터 3일간 대대적으로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축제의 대망의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초저녁, 아직은 한산하지만 곧 엄청난 인파가 거리를 메운다>

우리는 해산물을 파는 노점에서 탐스럽게 생긴 랍스터 한 마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추가로 소라인 줄 알고 시킨 달팽이까지. 사람들 틈바구니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사 온 음식을 먹는데, 참 맛이 별로다. 두 개 합쳐서 대략 만원 정도를 냈는데, 랍스터는 먹을게 거의 없었고 달팽이는 너무 질겼다. 그나마도 소라라고 생각했으니 먹었지 달팽인 줄 알았다면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계 어딜가나 만날 수 있는 케밥>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다. 우리는 잠시 숙소로 돌아갔다가 7시 반쯤 멤버들이 식사하러 마켓에 나간다길래 또다시 밖으로 나왔다. 방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지만 내일이면 조디와 레이첼이 영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다 같이 유명한 잔지바르 피자를 사 먹은 뒤 바닷가에 있는 한적한 펍으로 가서 맥주 한 병씩을 시켜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은 엘리 할머니께 더블 스카치 마시는 법을 배웠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술 종류가 확고하다. 맥주는 일단 기본적으로 좋아하고, 양주도 각자 마시는 스타일이 다르다. 섞어 마시는 것은 소맥밖에 몰랐던 남편은 할머니와 함께 더블 스카치에 콜라를 타 마셨고, 술에 대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눈만 높아져서 큰일이다.

<아이스크림 아저씨 손님 많아서 좋으실듯>

이제 이 밤이 지나면 18명이었던 멤버는 11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약 2주간 함께 지내다 보니 그새 정이 들었는지 헤어짐이 아쉽다. 비록 얘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못 알아듣는 말이 20%에서 80%가 되어 버리지만 그래도 함께 했던 시간들이 모두 즐거웠다. 헤어져야 할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이제 아프리카에서의 생활도 일주일 남짓뿐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흐른다. 앞으로 세월은 점점 더 빨리 흐르겠지. 한국에 돌아가면 언젠가는 지금의 기억도 희미해질 것이다. 결국,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한 문장으로 줄어버릴 순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록뿐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_C.S Lewis'


브런치 메인에 뜨는 이 말처럼 나는 글쓰기로 이 여행을 담아 둘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시간을 기록하고 곱씹으며 말이다. 이렇게 차곡차곡 담긴 이야기는 훗날 우리가 삶에 무기력해질 때쯤 꺼내 자양강장제로 삼을 생각이다. 혹 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려 할 때 이 낡은 이야기가 그들의 나침반 정도는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보통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삶이 여행으로 향할 수 있다면, 아마 나는 글쓰기로 타임캡슐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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