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아프리카 #탄자니아 #잔지바르
#캔드와비치 #성게 #2017년6월30일~7월2일
잔지바르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변들이 많다. 우리는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캔드와 비치 Kendwa Beach'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택시를 타고 섬 북부로 이동했다. 린다를 통해 미리 예약해 둔 바닷가 리조트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넓고 간결하게 꾸며진 방과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 완비되어 있었고, 리조트 앞 해변에는 수영하다 언제든 낮잠을 잘 수 있는 썬베드와 그늘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행을 하며 이처럼 신혼여행지로 선택해도 무방할 만큼 로맨틱한 곳은 처음인 것 같다. 다만, 그만큼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 함정이다. 하루 숙박비가 무려 80달러. 아마 이런 돈을 주고 묵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예산이 많이 투입되게 생겼지만 이왕 온 거 후회 없이 즐겨 주고 가리라! 우리는 방에 짐을 풀자마자 수영복으로 환복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놀기 위해 해변으로 나갔다. 잔지바르 100% 즐기기 첫 번째 코스는 여유로운 점심식사로 시작한다. 하얀 모래사장과 파란 바다 그리고 푸르른 하늘을 애피타이저 삼아 볶음밥과 파스타를 먹고, 디저트로 신선한 열대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 한잔 마셔주면 수영을 위한 에너지 충전 완료.
밥 먹고 바로 물에 들어가면 배 아프니까 일단은 썬베드 두 개를 그늘 밑으로 끌고 와 누워 본다. 평화롭다. 그리고 편하다. 불어오는 바람은 보드랍고, 눈 앞에 바다는 영화처럼 흐르고, 그 속에서 나는 한량처럼 발 끝을 까닥이며 노래를 듣는다. 이것이 바로 잔지바르 100% 즐기기의 두 번째 코스이다.
낮잠을 조금 잔 뒤 잔지바르 100% 즐기기 세 번째 코스로 바다 수영에 나섰다. 이곳 바다는 신기하게 파도가 거의 없다. 속이 훤이 비칠 정도로 맑은 에메랄드빛 물은 기본. 바닥의 모래도 지나치게 푹푹 꺼지거나 딱딱하지 않고 적당하다. 이렇게 수영하기 딱 좋은 조건을 두루두루 갖춘 반짝이는 바다에 몸을 담그니 보석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 든다.
잔지바르 100% 즐기기 세 번째 코스는 해변 Bar에서 맛있는 칵테일 마시기이다. 20분 정도 수영을 하고 밖으로 나와 비치 타올로 간단히 물을 닦고 과일 향기 가득한 Bar에 가서 칵테일과 시원한 맥주를 주문한다. 칵테일은 한 잔에 5천 원 선이고, 맥주는 3천 원 선. 휴양지 치고 비싼 물가는 아니지만, 돈 낼 때마다 손이 떨리는 이 소심함은 뭘까. 쫄지 말고 쓸 때 쓰자라고 다짐을 해도 쫄보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입안이 달달해지니 수영의 고단함도 스르르 풀린다. 우리는 바텐더에게 린다한테 배웠던 스와힐리어로 '아산테 사나'를 외쳐준 뒤, 해안선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걷는다. 이게 바로 잔지바르 100% 즐기기의 네 번째 코스이다. 남편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궁금해했던 '능위 비치 Nungwi'까지 걸어갔다 오는 것이 오늘의 목표. 천천히 해안을 따라 걸으며 조개도 줍고, 현지인과 함께 산책 나온 원숭이랑도 놀아주다 보니 어느덧 1시간이 흘러 목표지점이 눈앞에 보인다. 그런데 힘들다. 한 시간을 모래밭 위에서 걸으려니 전지훈련이 따로 없다.
돌아가려고 한참을 왔던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해가지며 높아진 수위에 가는 길 곳곳이 사라져 있다. 이 해안선 길이 끊기면 리조트 밖 마을들을 한참 돌아야만 집에 갈 수 있다. 그러면 최악의 경우, 집에 못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 무조건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래밭에서 진짜 전지훈련처럼 경보를 했다. 다행히 훈련은 성공적이었고, 우리는 엉덩이가 뻐근해질 때쯤 다시 익숙한 해변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급히 오면서도 해변 간이 상점에서 하쿠나 마타타가 새겨진 사롱을 구입했다. 이렇게 소소한 기념품을 구입해보는 것도 잔지바르 100% 즐기기 중 하나. 부피가 작아 들고 다니다가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좋으니 특템이라고 부를 만하다. 알록달록한 것을 원체 좋아하는 나는 아프리카의 기념품들 앞에서 항상 이성을 잃는다. 그때마다 들어오는 남편의 단호한 저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남편이 먼저 구매를 권했다. 아마 잔지바르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할 무언가를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거래였다!
도착 한 첫날 벌써 다섯 가지 방법으로 요모조모 잔지바르를 즐기고 대망의 이튿날 아침이 밝아 왔다. 숙박에 포함된 조식을 든든히 먹고 오늘은 어떻게 놀까를 생각하다가 뭔지도 모를 사소한 일로 남편과 싸움이 붙었다. 그래서 아까운 오전 시간 내내 나는 해변에 남편은 방 안에 틀어박혀 냉전기를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 없지. 싸움은 인도 같은 곳에서나 하자. 우리는 화해를 하기 위해 또 한바탕의 설전을 벌인 뒤 서로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친친 사이로 돌아왔다. 전략적 제휴 같은 느낌이다.
극적 타결을 마치고 해변에 놓인 소파에 조금 앉아있다가 수영을 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갔다. 나는 발이 닿는 수심에서 얼굴을 내놓고 수영 중이었고, 남편은 발이 안 닿는 깊은 곳까지 헤엄쳐 갔다. 그렇게 20분 동안은 여유로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발 뒤꿈치에 가시 같은 것이 박힌듯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너무 놀라 발을 껑충 들고 가시들을 빼내려고 했지만, 물 속이라 쉽지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빨리 오라고 소리를 치고 모래사장으로 나가 발을 보니 왼발에 30개 오른발에 10개 정도의 성게 가시가 박혀있었다. 빼려고 잡으면 그 순간 부러지는 특수한 기능까지 지닌 놀라운 가시가 말이다. 치명적이다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억지로 참으며 남편의 부축을 받아 해변가 소파에 앉았다. 내 모습을 본 베스가 놀라 린다를 찾으러 뛰어갔고, 소파에 앉아 계시던 엘리 할머니와 켈리가 괜찮냐고 난리가 났다. 내가 계속 고통스러워하자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네 명의 프랑스 여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손 소독제와 생수를 들고 와 소독을 해주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던 리조트 직원이 다가와 현지인들이 쓰는 비법이라며 파파야에 구멍을 내 스며 나오는 액체를 상처 부위에 발라주었다.
누구는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짜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파파야를 바르면 된다고 하고, 누구는 식초에 발을 담그라고 한다. 앞의 두 방법은 효과가 없는 듯해서 린다에게 부탁해 식초를 구해다가 발을 담갔다. 다행히 독은 없어서 당장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가려고 해도 없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나니 다행히도 통증이 가라앉는다. 오늘이 잔지바르에서의 마지막 날인데 아프다고 방 안에만 처박혀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용감하게 발가락 부분에만 양말을 신고 운동화 뒤축을 구긴 뒤 까치발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아파도 해변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차차 잦아드는 통증에 나름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려는데 옆 테이블에서 대화중이던 멤버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안부를 묻는다. 얘들아 고마워. 그리고 나 괜찮아. 절뚝절뚝.
밤새 식초에 담근 발은 어제보다 괜찮아 보였다. 성게 가시에서 나온 염료 때문에 검푸르게 물들었던 부분들도 거의 다 빠졌지만 가시들은 거의 그대로이다. 아마 조금 얇아지거나 작은 것들은 녹았을 것이다. 다르에스살람까지 가려면 또 페리를 타고 택시를 타고 이렇게 저렇게 가야 하는데 중간중간 걷는 일들이 많을까 봐 걱정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은 조식이나 먹자.
짐을 싸서 9시까지 리셉션으로 가니 미니 봉고가 와 있었다. 멤버들과 다 함께 봉고를 타고 스톤타운으로 가서 2시간의 자유시간을 즐긴 뒤 페리에 오르면 잔지바르도 이제 안녕이다. 다들 잔지바르를 떠난다는 것이 아쉬웠는지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커피나 한잔 하잔다. 그리고는 어디서 먹을지 이미 정한 것 처럼 다 같이 골목 사이사이를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걸음이 빠르지만 지금은 반강제로 걸음이 느린 아이가 되었다. 게다가 골목에서 파파야 장수를 만나서 하나 사려고 두리번 대다가 무리를 놓치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동네 구경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지나 바다가 보이는 공원으로 갔다. 분수대 근처에 놓인 빨간 우체통과 푸른 바다가 참 잘 어울렸다. 성게 덕분에 비록 잔지바르 100% 즐기기에서 1%를 빼야 할 상황이지만 그래도 파란 바다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프리카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기대치 않았던 힐링을 받고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딜 가나 이런 아름다움 뒤에 항상 슬픔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잔지바르 역시 19세기 노예시장이 번성했던 곳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팔려 갔었다고 한다. 아직도 이곳에는 당시 아프리카 사람들을 감금해 두었던 시설이 남아있다. 1873년 공식적으로 잔지바르 섬에서의 노예매매가 폐지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을까.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었던 나라의 사람으로서 그들의 슬픔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의 일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된 삶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가끔 내가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그들에게 상처가 될까 두렵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이 미안한 감정들을 외면하고 만다. 하지만 결국 이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비록 고민은 조금 되겠지만 이 감정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나의 여행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답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고개가 끄덕여지는 길을 찾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