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팡가니
#아루샤스네이크파크 #카라투 #응고롱고로
#세렝게티국립공원 #2017년7월2일~6일
잔지바르를 떠난 페리는 큰 파도로 인해 본의 아니게 수많은 사람들의 구토를 유발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코리도 참다 참다 결국 객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승무원은 지나다니며 토 봉투를 나누어 주었고 나는 그것을 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버텼다. 라오스에서 태국 넘어갈 때 탔던 버스를 생각하자.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별 것도 아니니 견딜 수 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객실 내 비치된 TV에서 나오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헐리웃 첩보 영화였는데 오늘따라 배우들의 대사가 귀에 쏙쏙 박힌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했나 하는 순간 찾아온 깨달음의 순간. 아, 한글 자막 때문이구나. 읭?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서 출발한 페리에 웬 한글자막ㅋ 어둠의 경로로 다운을 받았나.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자체가 신기하고 웃기다. 단 둘 뿐인 한국인을 위한 페리 회사의 해주고도 모르는 특급 서비스. 어쨌든 고마워요, 아산테 사나!
다르에스살람 캠프 사이트에 돌아와 텐트를 치고, 남편과 다른 멤버들이 비치 발리볼을 할 동안 성게 부상을 입은 나와 운동을 싫어하는 코리는 Bar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리는 건설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데 2년짜리 프로젝트가 끝나 3개월짜리 긴 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와, 퇴사라는 과정 없이 3개월의 휴가를 받을 수 있다니. 2개월은 유급 휴가이고 1개월은 무급 휴가지만 그 자체가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코리가 사회생활 첫 회사에 9년간 근속하고 있으니 사측의 저 정도 배려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당연하게도 어려운 나라에 살고 있다. 5년을 다녀야 겨우 2~3주 정도의 안식 휴가를 받을 수 있는 이 세상은 언제쯤 퇴사 없이 아프리카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될까.
우리는 '세렝게티 국립공원 Serengeti National Park'이 있는 탄자니아 북부로 가기 위해 이틀간 '팡가니 Pangani'를 거쳐 '아루샤 Arusha'까지 쉼 없이 달렸다. 이렇게 이동이 길어지는 날은 길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데, 생리현상은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여자는 이쪽 수풀 남자는 저쪽 수풀로 일동 헤쳐 모여로 해결한다. 사실 남자들은 어딜 가나 트럭을 등지고 대자연을 향해 서기만 하면 끝이지만 여자들은 매번 자리 잡는 것부터가 난감하다. 해결이 된 뒤에도 가끔 보면 바지 안에 낙엽 같은 것이 들어 있을 때도 있다. 피곤한 삶이다.
이동만 하는 날은 밥도 길에서 먹는다. 장소는 그때그때 다른데, 보통은 바람에 각종 마른풀들이 날아오는 곳에서 식사를 한다. 그래도 맛은 있다. 그리고 가끔은 잔디도 있고 벽화도 있는 안락한 장소에서 먹기도 한다. 모이가 테이블을 내려 음식을 준비하면 멤버들은 간이 의자를 펴거나 야채를 다듬어 식사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 나중에는 어찌나 손발이 잘 맞는지 아이돌 칼군무 저리가라였다.
며칠간의 지루한 이동 끝에 세렝게티 투어가 시작될 '아루샤 스네이크 파크 Arusha Snake Park'에 도착했다. 역시나 도착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텐트 치기. 린다가 정해 준 구역 안에 자리를 물색한 뒤 트럭 아래 수납함에서 텐트 가방을 꺼낸다. 길게 연결한 폴대 끝 부분을 텐트 모서리에 달린 네 개의 고리에 끼워 땅바닥에 콕 박히도록 고정을 해주고, 납작하게 접혀있던 텐트를 들어 올려 폴대에 고정해주면 끝. 캠핑이 익숙한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이런 게 처음이었던 우리는 텐트를 치고 걷으며 엄청 투닥댔다. '여기를 잡아라', '그쪽은 왜 누르냐' 이러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척척이다. 다만 둘이 할 때보다 혼자 할 때가 더 빠르다는 사실.
저녁을 먹은 뒤 Bar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성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텐트에 들어가 소독을 했다. 매번 식초에 발을 담글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뒤꿈치는 참 다루기 까다로운 곳인 것 같다. 상처부위를 들여다보려 해도 거기다 가까이 눈을 가져다 대기가 매우 어렵다. 하필이면 상처 부위가 발 밖같쪽이라 양반다리를 해서는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어릴 적 안짱다리 된다고 못하게 하던 바로 그 자세로 앉아야만 겨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뜻밖의 요가 타임.
세렝게티 투어가 시작되는 날 아침, 오후 2시쯤 출발할 예정이니 점심 먹기 전까지 텐트 걷고 가져갈 하루치 짐을 싸 두라는 공지가 떨어졌다. 그럼 그때까지는 자유시간이구나! 나는 엘리&켈리 모녀와 모라, 캐런과 함께 캠프 사이트에 조성되어 있는 마사이 박물관과 스네이크 파크 구경에 나섰다. 관람의 시작은 쇼핑부터. 우리는 장기 여행자라 물건을 거의 사지 않지만 이 여행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갈 멤버들은 트럭킹 시작부터 엄청나게 많은 기념품들을 사모으고 있었다. 남편은 이런 친구들을 보고 '놓치지 않을 거예요'족이라고 부른다. 내가 만약 단기 여행으로 이곳에 왔다면 아마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족의 족장이 됐을지도 모른다.
멤버들의 쇼핑이 끝나고, 마사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마사이족은 케냐의 중앙 고원에서부터 탄자니아 중앙 평원 그리고 나일강의 원천인 빅토리아 호수 근처까지 넓게 퍼져 사는 부족이다.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응고롱고로 보호구역 Ngorongoro Conservation Area'과 '세렝게티 Serengeti' 역시 그들의 삶의 터전이다. 동굴처럼 꾸며진 박물관 내부에는 이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그중 부족 내 15세를 전후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위해 성기의 일부분을 절제하는 할례에 관한 부분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특히나 여자 아이들의 할례는 그 목적이 성적 욕망을 잠재우고 오로지 출산의 역할을 수행할 부족원이 되기 위함이란다. 출산이 숭고한 일이지만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진통제 하나 없이 살을 도려내다니. 그들의 전통이겠거니 이해해보려 노력해도 이건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 전통도 그것이 악습일 때는 바꾸거나 없애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박물관을 나오니 바로 앞에 뱀을 비롯해 악어, 거북이, 부엉이 등을 볼 수 있는 스네이크 파크가 보였다. 이곳의 좋은 점은 상주하는 가이드가 언제든지 무료로 안내를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거대한 똬리를 틀고 누워있는 뱀들을 구경했다. 나보다 두 세배는 더 커 보였던 어떤 뱀은 사람도 삼킬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것과 같은 종류의 뱀이 사람을 삼켰던 사진도 그 앞에 걸려 있다. 소름.
내가 여자들과 구경을 다닐 동안 남편은 제프, 코리와 체험형 관람을 했다고 한다. 거북이도 들어보고 목에 뱀도 걸어보고 말이다. 가이드가 나에게도 뱀을 둘러보라 권했지만 그냥 넣어 두시라고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피부를 만져봤는데, 나보다 곱다는 게 함정ㅋ
알차게 자유시간을 보내고 캠프로 돌아오니 우리를 세렝게티로 데려가 줄 사파리 트럭이 도착해 있었다. 이번 투어에는 우리 부부와 엘리&켈리 모녀, 캐런과 모라, 코리 총 6명만 갈 예정이다. 미리 싸 둔 짐들을 트럭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드디어 출발!
투어의 첫 날을 보내게 될 '카라투 Karatu'로 가는 길,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 마사이 부족이 사는 마을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가격은 1인당 20달러. 엘리&켈리 모녀와 캐런과 모라는 돈을 내고 투어에 참가했고, 우리 부부와 코리는 차에 남아 있기로 했다. 일행들이 마을로 다가가자 붉은 옷을 입은 마사이 전사들이 무리 지어 나와 환영식을 거행했다. 드넓은 초원에서 하늘 높이 점프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손님이 온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는 방법인가 보다.
환영식이 끝난 후 마사이 사람들이 멤버들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우리도 트럭에서 내릴 수 있었다. 다리도 풀겸 넓은 초원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는데 마사이 부족 청년들이 팔찌 같은 것들을 팔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전통 의상이 붉은색이라 들었는데 보라색이나 파란색 옷도 입는 듯했다. 여행자들이 투어를 위해 들르는 마을이라 그런지 청년들은 약간의 영어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한 가족이라고 했다. 모든 부족원이 다 가족이라니. 엄청나게 대가족이네.
마사이족과의 만남을 끝내고 '카라투 Karatu'에서 하루를 잔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응고롱고로 보호구역 Ngorongoro Conservation Area'으로 향했다. 세렝게티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 분화구이자, 분지 내에 흐르는 화구호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의 동물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다. 우리는 분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몇천 년 전 화산이었다니. 정말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동물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트럭의 뚜껑을 연 뒤 응고롱고로의 분지 아래로 내려가 초원 사이를 달렸다. 무리 지어 걸어가는 얼룩말과 누 떼들을 보고 있으니 어릴 적 TV에서 보던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이 떠올랐다. 늘 '세렝게티 초원에 건기가 오면....' 등과 같은 말들로 시작했던 그 전설의 다큐멘터리 말이다.
동서남북 어딜 보나 그림 같은 초원 위에서 타조 커플의 꿀 떨어지는 데이트가 한창이다. 낯 뜨거운 장면이 연출되기 전에 자리를 이동하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는 요상한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security bird'라고 불리는 이 새는 이름처럼 엄청나게 경계심이 많아 보였다. 우리말로 하면 경비 새가 되는 건가.
오늘도 뭘 하는지 물속에 짱 박혀 얼굴 한 번 안 보여주는 하마 가족과 이제 동네 고양이만큼 흔해진 가젤을 지나 호수 곁에 차를 세웠다. 신나는 점심시간 예에~! 가이드가 빵과 주스와 과자, 달걀 그리고 치킨이 들어 있는 도시락 통을 나누어 준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밖에서 먹으려고 멤버들과 바위에 둘러앉았는데 노란 새들이 날아와 우리의 점심을 노린다. 무시하면 할수록 귀여운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점점 다가온다. 저 얼굴에 넘어가면 안 돼. 정신 차리자. 안 된다 이놈들!
밥을 먹고 응고롱고로를 떠나 세렝게티로 달리는 트럭. 가는 길에는 푸르른 초원도 있었지만 엄청난 흙먼지가 날리는 사막 같은 곳도 많았다. 길이 비포장이라 창문이 깨질 듯 덜덜 거렸고, 먼지가 너무 심해서 더워도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험악한 길들을 갈 동안 폭풍 해드뱅잉을 하며 꿀 숙면을 취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바로는 멤버들이 엄청 신기해하며 쳐다보다가 혹시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무섭다.
세렝게티의 시작을 알리는 현판을 통과하면 곧바로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장면들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든 차량과 방문객들은 본격적인 세렝게티 탐험 전 관리 사무소 같은 롯지에 들러 돈을 내고 입장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이 허가증 때문에 투어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이다. 우리처럼 사파리 차량을 타고 들어가서 보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그 이외의 여러 가지 옵션이 붙으면 가격은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간다.
2시간을 기다려 허가증을 받고 얼마간을 더 달리니 드디어 대망의 세렝게티 초원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처럼 바위에 누워 초원을 내려다보는 사자를 만났다. 그때 마침 노을까지 붉게 물들어 주시니 감동이 물밀듯 밀려온다. 발자국 따라 한참 쫓아다니지 않아도 시작부터 사자라니. 역시 세렝게티는 차원이 다르다.
다음 선수는 초원의 청소부 하이에나! 태생적으로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짧아 고개를 거북목처럼 쭉 빼고 걷는 모습이 마치 5년 차 이상의 직장인들을 보는 듯하다. 거울을 보는 게 이런 느낌일까. 하하하하;; 세상 모든 직장인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세렝게티의 공식 귀요미 가족 등장. 영문명으로는 'grey crowned crane', 우리말로는 '회색관 두루미'. 가족끼리 오후 산책을 나온 것 같은데 정겨워 보인다. 셋이 박자를 맞춰 두둠칫 두둠칫 걷는 모습이라니. 귀여워 못 산다 내가.
우리는 운 좋게 빅5 중 하나인 치타도 만났다! 동물원이 아닌 대자연 속의 치타를 보니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동물이 또 있나 싶다. 다들 이 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 누르기 바쁘다. 그때 가만히 앉아있던 치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묵직한 걸음으로 세 발자국 정도를 가더니 갓 잡은 듯한 가젤을 물어 올린다. 어후. 간 떨려. 이게 야생이구나.
게임 드라이브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역시 빅5 중 하나인 표범 되시겠다. 치타와 표범은 매우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점들이 있다. 치타는 얼굴에 검은 줄이 있으며 몸에는 둥글고 검은 형태의 무늬가 있다. 하지만 표범은 얼굴에 작은 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몸에는 여러 개의 점들이 모여있는 듯한 매화꽃 모양의 무늬가 있다. 개인적으로 치타보다 표범이 압도적으로 예쁜 것 같다.
비록 엄청 먼 거리였지만 멸종 위기에 놓인 아프리카 코뿔소도 봤다. 이로써 그 보기 어렵다는 빅5를 모두 만난 것이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우리는 오늘의 잠자리인 세렝게티 안에 조성된 캠프 사이트로 이동해 이 행운의 날을 축하하기로 했다.
맛있는 저녁식사가 차려지는 동안 각자 이동식 Bar에서 사 온 세렝게티 맥주를 부딪히며 엄청났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고단했지만 그만큼 즐거웠던 세렝게티 탐험. 새벽에 있을 또 한 번의 게임 드라이브에서는 코뿔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행운이 와주길 기대하며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