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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23. 2023

거울로 반사한 카메라 렌즈

놉(2022)



    조던 필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나는 조던 필 특유의 상징과 시도를 좋아하지만, 설정을 위해 개연성을 다소 포기하는 그의 작풍은 명확한 단점이었다. 그러나 놉(2022)은 전작들의 단점이 개선됐고, 독창성은 더 발전됐다. 첫 작 겟 아웃(2017)은 이야기와 주제가 균형을 이뤘지만, 어스(2019)는 주제가 이야기를 먹어버려 훌륭한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에서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주제는 내밀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받쳐주는 상상력도 훌륭했기에 그 선택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1. 조련



    이 작품의 키워드는 조련, 관점 그리고 판단이다. 먼저 조련은, 등장인물들이 말 조련사이기에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도 자신의 말들을 소홀히 대하지 않는 OJ(오제이라고 부르겠다.)와 결국 실패한 주프를 비교해 보자. 오제이는 말들을 결코 수단 시 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말을 팔았지만, 말을 또 살 거라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올곧게 이어와 말을 사랑하고 있다. 진 자켓의 구토에 죽을 뻔한 날에도 말먹이를 줘야 한다며 말농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반면 주프는 기본적으로 실패의 역사성을 가진 캐릭터다. 주프는 어렸을 적, 조련에 실패한 침팬지에게 죽을 뻔했다. 다른 프로그램 멤버들을 공격한 이후 고디와 정서적 교감이 성사되기 직전에 고디는 사살됐는데, 주프가 결국 진 자켓을 길들이지 못하게 되는 복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성장한 주프는 조련에 대해 제대로 통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세력들보다 진 자켓을 먼저 발견했지만, 그걸 얕봐 다수의 사람들, 결국 진 자켓의 눈이 되어준 먹이들을 불러다가 쇼를 하겠다는 오판을 저지르고 만다. 애초에 갓 데려온 말 고스트도 길들이지 못했는데, 그들의 일망타진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마음이 있는 조련은 교감을 통해 공생이 되고, 마음이 없는 수단의 조련은 파국을 맞는다는 구조를 뼈대로 삼고 있다.



2. 관점



    진 자켓은 UFO처럼 생긴 동물이고, 외계에서 왔는지, 얼마나 더 존재하는지 같은 설정은 일절 없다. 그리고 흥분에 빠지면 자신의 몸을 비단처럼 늘려 만화경 같은 형태를 띤다. 그래서 이 동물의 이름이 진 자켓(청바지, 자켓)이다. 진 자켓이 천사와 비슷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 모습이 6쌍의 날개를 가진, 강림한 천사와 닮았고, 시선을 맞추면 안 된다는 오컬트적인 설정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시놉시스의 나쁜 기적은 진 자켓이고, 결국 유해하고 안 좋은 천사인 셈이다. 그래서 그의 포식 행위는 인간에게 내리는 단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키워드인 관점은 진 자켓을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을 의미한다. 오제이는 진 자켓의 본질을 꿰뚫고 자신의 동물 조련술을 응용해 목숨도 잃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뤘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오컬트 사이트 요원은 지금까지 흔하게 본 UFO와 비슷하다 판단되는 진 자켓을 관망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경계해야 할 때 선점할 생각만 하다 잡아 먹힌다. 홀스트는 진 자켓을 너무나 매력적인 피사체, 자신의 소명의식을 완성시켜 줄 도전의 대상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그 심상에 도취되어 이성적으로 거리를 두지 못해 잡아 먹힌다. 아까 말한 주프도 오만의 소치로 마찬가지의 결말을 맞았다. 결국 진 자켓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진 자켓의 심판을 마주하며 맞게 될 결말의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영화 놉은 확실히 투쟁극이다.



3. 판단



    마지막으로 판단이다. 판단은 진 자켓의 포식 원리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 판단을 진 자켓의 포식 조건이라고 잡았다. 진 자켓은 자신을 보는 존재만 볼 수 있다. 영화를 다 본 뒤 정보를 조합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진 자켓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눈’과 비슷한 신체 요소로 고개를 드는 행위에 반응한다. 오제이가 후드 티에 눈 모양 천을 붙이고 말을 탔을 때, 진 자켓은 그대로 따라왔다. 그리고 진 자켓은 감은 눈도 눈으로 치기 때문에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도 발각당한다. 이 세세한 구분이 뭐 때문에 중요하냐면, 앞서 말한 대로 나쁜 기적인 진 자켓의 법칙성이 온전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 자켓이 정말 신의 사자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라면, 그것의 법칙이 더 언어적이고, 명제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진 자켓을 단죄자라고 이름 지었지만, 그것의 포식이 그렇게 말끔한 처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진실된 조련과 적확한 관점으로 진 자켓의 판단을 어그러뜨려야 진 자켓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4. 상당히 숨겨 놓은 것



    이 영화는 조련에 대한 투쟁극이지만 영화와 영상 아이템이 매우 많이 나온다. 결국 현실의 영화 요소가 원관념으로 해석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명쾌하게 워딩이 안 나온다는 것이고, 이 영화가 갖는 난해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놉은 여러 이유로 영상을 수단 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딱 그 물음을 던지는 것까지 했다고 본다. 이 영화에서 나온 조련도 결국 영상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었고, 주인공 세력들조차 진 자켓을 찍어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 진 자켓을 찍는 것은 조련과 영상 제작이 결합된 행위다. 결국 대부분의 영화인이 영상 소재를 정하든, 피사체를 고르든, 그것들을 화면에 담는 방법을 택하든 그 제반적인 선택의 스펙트럼을 너무 경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놉의 종착지다. 그렇게 치면 진 자켓은 영화라는 예술을 조망하는 예술가들의 선택을 의미한다. 조던 필이 보기에, 다른 여러 영화들에서 돈냄새를 포함한 불쾌한 악취가 진동한다는 메시지가 느껴지고, 진 자켓은 조던 필의 자조적인 의협심이 담긴 극적인 카메라 렌즈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진 자켓의 생사를 애매하게 연출한 것이고, 진 자켓이 디지털카메라를 포함한 전자기기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물음으로 끝났기 때문에 모순을 끊임없이 전달하지만 이 영화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답이라서, 그 양립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가 평가의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놉이라는 제목도, 그 단어만 봤을 때는 조련자와 동물의 관계성을 포함한 조련의 질까지 파악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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