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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유 Feb 15. 2021

비움: 애초에 틀려먹은 상징

<Axt>와 <Littor>를 비우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서서히 물건들을 비우고 있다.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맥시멀리스트로서 살아왔다. 그러한 시간의 무게는 커다란 방 한 칸과 커다란 베란다 한 칸하고도 비상시 대피를 위한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이제 물건은 내게 소유된 것이 아니라 내가 물건에 종속된 느낌마저 들었다.


더는 이렇게 살기 싫어서, 살 수 없어서 물건을 비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매일 버리는 물건을 기록하기도 하고, 비움 리스트를 적어보기도 하고, 미니멀리스트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참여해보기도 했지만 아직 나는 물건 속에 갇혀 살고 있다. 그야말로 내 방은 무덤인 셈이다. 버리지 못해 쌓여가는 물건들의 무덤.


그동안의 시간들이 헛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나를 더 잘 알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던 것들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나의 마음이 깃들고 시공의 층층이 배인 무언가였으니까. 그래서 그 무언가들을 보낼 때는 이별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아마도 비움일기의 대부분의 종이일 것이고, 또 종이에 대한 것이다. 옛날부터 문방구 지박령이었던 문구덕후이자 문학소녀(지금은 문학이란 수식어도 소녀란 수식어도 받을 수 없는 존재지만)였던 내게 종이란 특별한 존재였다. 물론 종이가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들이 여기에서 등장하게 될 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첫 비움일기의 주인공은 <Axt>와 <Littor>.




아마도 이것보다 훨씬 많이 있을 텐데 우선 내 방의 책꽂이에서만 찾은 것들이다. 매거진을 만드는 업무를 하고 있었고 기존의 딱딱한 문학잡지를 넘어선 무언가들이 반가워서 한동안 계속 구입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런 거 사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유일하게 <Axt 1호>뿐이다. 다른 것은 거의 '읽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펼친 부분이 없다.


<Axt>는 프란츠 카프카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 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문장과 'Art & Text'라는 단어에서 탄생한 셈인데 이것만으로도 이미 구입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게다가 듀나 작가 인터뷰 논란이 있었음에도 계속 샀던 이유는 금액이었다. 초반에는 2,9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발했으니까. 더불어 핫하거나 매력적인 작가의 이름이 적힌 표지와 인터뷰는 매력적이었으니까.


<Littor>는 '읽는 사람'을 위한 민음사의 잡지인데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파벳을 통해 느낌이 확 온다. 디자인부터도 파격적이라서 처음 받았을 때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기억난다. 내용도 색다른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읽어야 하는데 도무지 진행이 안 된다. '아, 내가 지금 바빠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읽히지가 않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Littor>를 받아봐야 했다. 왜냐하면 사은품에 눈이 멀어 정기구독을 했으니까. 한 해가 끝날 때마다 읽지도 않은 저 릿터를 구독하면 내 손모가지를 자르겠다 생각했지만 이 년 삼 년 구독은 이어졌다.




그러다 일을 관두고 책을 구매하는 일도 거의 관두고 잡지의 정기구독도 신청하지 않으면서 곰곰 나를 돌아봤다. 나는 잡지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끼긴 하지만, 그 잡지를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한 권의 책에 들어있는 세계를 만나는 것은 사랑하지만, 어쩐지 잡지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은 아쉽고 감질맛이 나는 것만 같다. 게다가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니 인터뷰도 내게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읽지 않고 쌓여가던
<Axt>와 <Littor>는
나에게 그저 상징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런 것을 구입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애초에 틀려먹은 상징이지 않은가.





시간을 머금은 채 내 방에 머물러 있어도 손길이 닿지 않으니 여전히 새 책으로 존재하던 이들에게 나는 드디어 해방을 선사하기로 했다. 아깝다는 마음 반, 나에 대한 부끄러움 반으로 읽고자 노력했으나 읽지 못한 책들로 가득 채워진 내 책장에서 이들까지 손을 뻗기엔 나는 너무나도 게으르다.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한 어느날. 그렇게 책 장 한 칸이 또 비워졌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자신과 다른 존재다.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조금은 부끄럽거나 슬프거나 아쉬울 것 같았는데, 막상 인정하고 나니 후련하다는 생각만이 든다. 책을 사는 데 쓴 돈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나 자신을 알아가는 데 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날이 갈수록 자기변명이 늘고 자신에게 관대해지면 어떠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다면,

그래서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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