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쯤 이 글을 처음 썼던 것 같습니다. 두 고양이가 죽은 건 제게 늘 떠올리기 싫은 불쾌한 기억이었기에 브런치에 올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 초고를 다시 읽어보니
이제는 이 일과 마주할 용기가 생겨 옮겨 적습니다.
집을 떠나 혼자 사는 건 처음엔 자유의 홍수로 즐거움이 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시간이 지나며 이내 외로워졌다. 결혼을 딱히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지라 나이 서른 즈음에 나는 아기 고양이 하나를 분양받기에 이르렀다. 어렸을 때 강아지를 기르는 친구가 부러워 엄마를 끈덕지게 졸랐지만 내게 허락된 애완동물은 금붕어가 다였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강아지보다 손이 덜 가는 고양이를 선택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혼자 살며 강아지를 집에 혼자 방치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합리적인 이유로 데려온 내 첫 반려묘 땡구는 턱시도를 입은 듯 얼룩무늬가 귀여운 검은색 코리안 숏컷이었다.
고양이를 인도받은 곳은 건대입구 쪽이었던 것 같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되었다며 원래 주인이 마치 신생아처럼 포대기를 한 땡구를
“잘 부탁드려요.”
라는 말과 함께 건네주었다. 두 팔로 그 아이를 안은 그 순간,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마음은 ‘책임감’으로 가득 차며 겁이 났다.
땡구는 6개월을 채 살지 못하고 복막염으로 죽고 말았다.
퇴근 후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맞아주었던 땡구의 빈자리는 제법 컸다. 아기 고양이는 면역이 약해 죽는 일이 잦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무책임한 예감으로 두 번째 고양이를 들였다.
땡구의 죽음이 충격이 컸기에 이번엔 ‘너무 어려 죽는 일’을 방지하고자 어느 정도 큰 1년짜리 청소년 묘를 데려왔다.
갈색 줄무늬가 마치 호랑이나 표범처럼 늠름하던 그 벵갈 고양이는 크기부터 땡구와 달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무래도 1년이나 큰 아이라 드는 힘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이번에는 죽지 않겠지...’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내 주문이 무색하게 그 고양이도 한두 달 후 땡구와 똑같은 사유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분명 그 아이에게도 이름을 붙여줬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안하게도.
설마 했던 두 번째 고양이마저 그렇게 되자
드디어 자책이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기르지 못하는 사람일까?’
전남편이 퍽하면 "넌 엄마도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그의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 말에 가스 라이팅 당했던 건
이런 경험이 바닥에 깔려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에겐 누구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때로 스스로조차 무언가 기르는 데 젬병인가 싶다.
물론 내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하지만 선생님으로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과
엄마로서 어떤 존재를 키우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어쩌면 난 전남편의 그 말에 그냥 굴복해버리고 싶기도 했나 보다. 너무 지긋지긋해서...
부모 조사 때 만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숱한 폭력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라도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할까?
그의 잘못은 모두 기억하되, 결국 용서해야 우리 딸들에게 내 감정의 찌꺼기가 흘러가지 않을 테니까.
미워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쉬운 길을 따라 그가 하는 것과 똑같이 상대를 저주하고 원망한다면
행복이란 건 절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렵겠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고, 내가 두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거라는 나약한 생각에 굴하지 않고
그렇게 내 길을 걸어갈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이 두 가지를 정말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두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내 마음이 사실 내 능력 범위를 넘어선 욕심인 건지 사실 지금도 회의가 들곤 한다. 아이들이 현재 나도, 아빠도 아닌 할머니 손에 자라고 있는 게 어쩌면 가장 좋은 환경인지도 모르겠다.
법원에서 끝끝내 전남편에게 양육권을 줄 경우 더 이상 큰 인연의 뜻을 두지 않고 살겠다는 생각도 불쑥불쑥 든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걷기 쉬운 쉽고 천박한 길은 계속 내게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그 유혹과 어렵고 성장 가능한 길 사이의 번뇌는 이혼 후에도 계속될 것 같다.
전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미간에 주름이 세로줄로 깊게 파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보니 그 이유가 화를 많이 내서였어요.
가끔 화를 낸다고 미간에 주름에 패이지는 않잖아요?
제가 마음에 둔 그분도 어느 정도 화가 나 있는 인상으로 보여요. 그것 때문에 전남편과 있었던 트라우마가 다시 재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 영주와 대화하다 깨달았어요.
그 사람의 주름이 신경 쓰인다면
그냥 가볍게,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여기 이마에 주름 잡힌 것 같은데, 평소에 인상 많이 써?”
라고 물어보고, 대답을 들어보라는 거죠.
대답을 들어보면, 아마 안심이 될 거라고요.
너무 중대해서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일수록
그렇게 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나를 괴롭히는 그 일이
어쩌면 별 거 아닐 수도 있거든요.
두 고양이가 죽었던 일은
실은 두 딸을 키우는 일과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처럼요.
그걸 스스로 육아능력과 붙일 이유는 전혀 없는데,
아이들과 관련해 힘든 시간을 보내던 저 때엔
고양이도 키우지 못했던 제가 아이들도 키우기 힘들지 모른다는 뒤틀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막상 꺼내서 보면 그냥 연약한 고양이인데
마음이란 알 수 없는 공간에 들어가 있을 땐 내 마음을 할퀴는 호랑이가 되어 나를 사납게 괴롭히기도 하더라고요. 지난 초고를 읽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춥다더니 생각보다 괜찮네요?
아니면 제가 집이라 그런가요?
예수님이 태어난 성스러운 날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