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2)

by 이주희

며칠간 누적된 불면으로

방학식날 나는 엉망이 되었다.

가장 신나야 할 날에

퉁퉁 부은 눈

잠긴 목소리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게 아이들을 맞았다.


올해 마지막 출근일이어서였을까.

행정실에서 다급하게 처리해달라는 공문 두 개가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처리 경로가 보이지 않았다.


수학 시간에는 다각형을 이용해 포스터 그리기를 했다.

다각형 마지막 차시였고, 수학 책 마지막 부분이기도 했다.

집중력 부족으로 칠판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태영이가

그리라고 하자마자

“다 그렸어요.”

했다.

평소보다 피곤했던지라 쉽게 짜증이 났다.

지구를 그린 그림에 상문 표시를 해 환경이 죽었다는 의미를 나타낸 듯했다. 그만하면 참신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가 그 일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는 데에, 그리고 포스터에 적힌 글씨가 너무 나빠 보이지 않은 데 대해서만 쏘아붙였다.

“글씨를 알아보게 적어야지. 그게 포스턴데.”

태영이는 나름 자기 포스터가 괜찮았다고 생각했었는지 내 냉담한 반응에 토라진 얼굴이 되었다. 나중에 달래주려고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방학하는 날인데...’

뒤늦게 미안했다.


며칠간 제대로 먹지 못해

오늘 방학 맞이 특별 메뉴로 구성된 급식도

잘 못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 미트 스파게티가 먹을 만했다.

붉은색 빵 위에 녹색 트리가 그려진 롤케이크는 맛있었지만

하나 먹고 목이 막혀

다른 하나는 평소 편식이 심한 현준이가 먹는다기에 주어버렸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화장실로 양치를 하러 들어가서야

눌려져 있던 울음이 터졌다.

“선생님 어디 계시지? 인사하고 가야 하는데.”

바깥에서 방학 인사를 하고 가려는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울을 보니 코가 빨갰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아이들을 향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얘들아 잘 가. 방학 잘 보내렴!”

하고 외쳐준다.

내 코가 빨간 건 그저 추워서라고 이해해주기 바라며.



소송 후 두 번째 홀로 맞는 크리스마스,

아직도 그 괴물에게서 아이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누군가 새로 만나자니

앞으로도 맞고 살 것 같단 이상한 예감이 드는 나는

여자도 엄마도, 아무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해

정체성을 상실한 괴생명체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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