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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Oct 18. 2023

보통날

 어제는 와인 모임에서 요즘 유명한 금돼지식당에 다녀왔다. 예전에 둘이서 이런 데를 가면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많이 주문하지 않았었는데, 각자 나눠서 부담을 하는 어제는 정말 질리도록 많이 먹었다.
 학교는 반 아이들과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어서, 거의 서로 선을 넘는 일이 드물어졌다. 다음 주에 있을 학예회 준비로 조금 바쁘다. 업무 때문에 관리자분과는 사이가 멀어졌다.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상담에 일이 주일에 한 번씩 가고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학교 업무를 바라보는 내 시각은 180도 바뀌었고, 이는 학교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좋아하는 프로 야구 정규 시즌 마지막 게임이 어제 끝났다. 응원하는 팀이 3위로 올라섰다면 좋았겠지만 와일드카드전에서 잘해주리라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나만큼 재밌게 보는 누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하마터면 모임 내의 유부남인 한 분과 지나치게 친해질 뻔했다. 최근에 영화를 같이 보자며 은근히 신호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래 만날 사람 재질이 아닌 것 같으면 섣불리 데이트도 하고 싶지 않다.

 찹찹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며 서서히 단풍이 드는 지금이 좋다. 어떻게 그동안 악랄한 전남편에게 된통 당하고, 그러고도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가끔 예전 일이 불쑥 떠오를 때면 정말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가 있나?'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혼은 파국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사실 하고 나면 결혼도 이혼도 좋고 나쁨이 희미해진다. 물론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말이다.
 가끔은 다가올 인생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설레발치지 않으려고 한다.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지금 정도도 살 만하다.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나는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가을 나무가 잎사귀를 떨어내고 뿌리만 남기는 것처럼 나도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겨울을 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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