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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hdainy Dec 22. 2016

Oh, my dearest cat!

심바에 대하여  (1)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고양이, 나의 심바.


출근을 하고 책상을 정리하며 입고 있던 코트와 목도리를 정리했다. 그때 포착된 목도리 귀퉁이의 조그만 이빨 자국. 아이고, 심바 이 녀석! 또 물어뜯어 놨구나. 작년에는 장갑을 해 먹더니 올해는 목도리다. 그 다음엔 책상에 앉아 감기약 두 알을 꺼내서 뜨거운 물과 함께 꼴깍 들이켰다. 생각해보니 작년 이 시기에도 똑같은 감기약을 먹었던 것 같다. 찬 바람을 막기 위해 닫아 놓은 문을 북북 긁어대며 기어코 내 방에 들어오는 심바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팀원들과 함께 식사 장소로 나서는데 뒤에서 누가 나에게 한 소리 한다.


“다인씨, 등 뒤에 온통 털이야!”


그제야 생각났다. 검은 재킷을 입고 나오면서 심바 털을 떼어내지 않았다는 것을. 이 털 뿜는 기계 같으니라고.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지도 벌써 1년 하고도 8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에 터득한 것은 여러 가지인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젖먹이 아기 고양이 우유 먹이기

2. 응가 못하는 아기 고양이 배변 유도하기

3. 물 혐오하는 고양이 목욕시키기

4. 빗질 혐오하는 고양이 빗질 하기

5. 고양이 발톱 깎기 (난이도 극상)

6. 고양이 털 빨리 떼기

7. (발광하는) 고양이 이동장에 넣기

8. 고양이 주사 맞을 때 안정시키기

9. 고양이한테 안 아프게 물리기

10. 방해하는 고양이 피해서 일하기

 

짧게 10개만 나열해봤는데 요약하자면 ‘인내심 기르기’ 내지는 ‘불편함에 익숙해지기’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 나의 삶은 고양이 없던 일상에 비하면 불편함이 +85 정도 증가되었다. 그럼에도 이제 심바 없는 삶은 상상 불가, 산소 없는 지구, 샘 없는 프로도, 와사비 없는 초밥이다. 누가 들으면 미친 사람 취급할지도 모르지만, 가끔 심바가 갑자기 사라지는 걱정을 하며 왈칵 눈물이 쏟아질 때도 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살면서 가장 사랑한 대상이 심바라고 생각한다.

 

자기 생을 온전히 나에게 맡겼던 아주 작은 녀석, 고작 생후 3주가 되어 우리 집에 온 심바는 형제 무리 중 가장 약해서 어미에게 버려진, 적자생존의 탈락자였다. 작년 5월이었다. 4월 봄날 추위가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함이 몽글몽글 피어났던 2015년 5월의 첫째 주.

 

“다인아, 사무실에 무슨 고양이가 있나 봐. 하루 종일 ‘애옹, 애옹’ 하고 우는데 시끄러워서 직원들이 일을 못한다니까.”

 

말은 저렇게 해도 고양이가 걱정되었는지 다음 날 아빠는 119 구조대원을 불러 사무실 천장을 뜯어내고 새끼 고양이 4마리가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 두면 어미가 알아서 데려가겠거니 싶어 근처 동물병원서 캔 몇 개를 사서 넣어놨단다. 그 다음 날은 어린이날이었는데, 고양이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빠와 난 함께 사무실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산발적으로 ‘애옹, 애옹’ 소리가 들렸다.

 

“근데 어제보다 우는 소리가 너무 작아졌는데? 쟤네 엄마가 안 오는 거 아니야?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지?”

 

아빠는 그렇게 또 걱정을 하며 구조대원을 불렀다. 휴일이라 낮술을 살짝 걸쳤는지 코가 빨개진 119 구조대원 아저씨가 도착했다. ‘어디 보자-’ 하며 천장을 살펴본 그는 고양이들이 캔에 입도 안 댔다며 어미가 와서 젖을 주는 모양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고는 현장을 떠났다. 걱정은 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우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나는 학교 도서관에 있었다. 휴학을 했고, 한 달간의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제 막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으며,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자격증 시험을 공부 중이었다. 한 달 전 승재가 취업해서 홀로 로욜라 도서관을 지켰던 시기이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른한 기분으로 졸고 있었는데 다급하게 울린 핸드폰 진동 덕분에 퍼뜩 잠에서 깼다.


"아 정말? 응, 얼른 갈게. 30분 안에 갈 수 있을 거야."


아빠의 전화였다. 일도 못할 만큼 시끄럽던 야옹 소리가 너무 작아져서 천장을 들여다보니 고양이 한 마리만 남았다고. 몇 시간이 지나도 어미 고양이는 보이지도 않고, 아기 고양이는 이젠 울 힘도 없는지 가만히 있는다며 얼른 와서 데려가라는 전화였다. 우리 집에 고양이가 생기는 건가? 어미에게 버림받은 제일 약한 녀석이라니, 짠하기도 해라! 나는 걱정 반, 벅참 반으로 가득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평창동행 153번 버스에 올라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작은 박스에 웅크리고 숨어 있는 노오란 아기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몸집이었다. 이렇게 작은 아기 동물을 눈 앞에서 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얼른 상자를 들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찍은 심바 사진. 실물은 훨씬 더 작았다. 처음 집에 와서 무서워하며 소파에 앉아 있는 상황이다.


낯선 환경이 무서운 건지 삐약삐약 울어대는 녀석을 한 손으로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네이버 검색을 부지런히 해댔다. '새끼 고양이 키우는 법', '새끼 고양이 우유', '새끼 고양이 집' 등등. 원체 동물을 좋아하는 덕에 전부터 고양이라면 언제나 환영이긴 했지만,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작은 동물을 키워본 적은 더욱 없었다. 아빠가 동물병원에서 고양이 분유를 사다놓긴 했지만 그걸로 우유를 만드는 방법조차 몰랐으니까. 갑자기 두려움이 나를 잡아 삼켰다. 귀여운 고양이가 집에서 꼬물대는 상상만 했지 그에 따른 다양한 어려움 내지 귀찮음은 생각 안 해본 것이다. 네이버 지식인의 조언을 따라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넣고 수건으로 돌돌 감아 녀석의 곁에 두었다. 어미가 생각나는지 수건을 누르며 쪽쪽 빨더니 곧장 잠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온 몸이 달싹거렸지만 책임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떠올라 맘껏 표현하긴 어려웠다.


한두 시간이 지나고 엄마 아빠가 차례로 집으로 들어왔다. 반 백이 넘도록 한 번도 안 만져봤을 정도로 고양이라면 질색하는 엄마는 조금만 보살피다가 입양을 보내자며 호들갑이었고,  본인이 구조해서 벌써 정이 들었는지 아빠는 자꾸 내 방으로 들어와 고양이를 요리조리 살폈다.


"오늘 내가 119에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얘를 다시 구청 구조대나, 그 뭐냐, 보호소에 보내면 죽는댄다. 1주일 내로 누가 안 데려가 가면 안락사시킨대. 누가 데려가겠어. 얘처럼 생긴 애가 길거리에 몇 마리씩이나 되는데"


아빠는 진심으로 걱정했다. 내가 네 발 친구들을 좋아하는 건 아빠한테 온 천성이 분명하구나, 하고 생각하니 피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시 고개를 돌려 잠에 빠진 조그만 녀석의 정수리를 만지며 "잘 자, 아가"라고 말했다. 첫날은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진짜 시작은 그 다음부터 였다. 분유로 우유를 만들어 먹이기, 아직 응가가 어려운 녀석의 항문을 문지르며 배변 유도하기 등등. 새벽이면 꼭 깨서 밥을 달라고 삐약삐약 울어 댔는데, 그렇게 며칠을 하다 보니 코피가 났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도서관은커녕, 집에서 책 한 장도 못 봐서 불안감 또한 더해졌다. 병원에 데려가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고(다행히도 모두 정상, 깨끗, 아주 건강한 상태였다), 집에 홀로 둘 수가 없어 가방에 넣고 광화문에 나가 화장품을 사기도, 승재와 동네 밥집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처음에는 방법조차 몰랐던 것들이 손에 익어가기 시작했다. 심바는 제법 총총 거리며 방 안을 구경하기도 했다. 엄마는 더 이상 입양 보내란 소리를 하지 않았고, 아빠는 정성스레 캔과 우유를 사다주었다.


꼬물이 시절을 지나 고양이 태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던 5월 말


이름은 '심바'가 되었다. 사자같이 노란 털과 긴 팔, 다리에 영감을 받은 친구가 지어준 이름이다.  심바가 된 어린 고양이는 그렇게 한 가족의 중심이 되었다. 심바의 작은 몸짓 하나를 보기 위해 모두가 거실로 모여들었다. 배를 뒤집고 애교를 부리기라도 하면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차지하는 공간이라곤 한 품도 되지 않는 녀석이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던 세 명을 비슷한 모양새나마 '가족'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 홍대 만화 카페에서 고양이 만화를 보다가 한참을 생각하게 된 장면을 만났다. <탐묘인간>의 한 에피소드였는데, 고양이와 집사 사이엔 보이지 않는 빨간 실이 그 둘을 처음부터 이어주고 있다는 이야기. 골목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과 그 길냥이, 나처럼 우연히 만나 동거하게 된 반려묘와 집사 그 모두 함께 할 운명이었다는 걸 예쁘게 그려내서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동화 같은 이야기, 아니 동화이지만 나는 그 묘연(猫緣) 을 믿는다. 심바와 나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며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존재이라는 것을 믿는다.


내가 구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를 구해준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


이제는 뱃살이 두둑한 청년이 된 심바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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