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집, 나만의 공간이 되다
노을집,
우연한 인연으로 노을집이 내 공간이 되었다.
늘 언젠가는 산 중턱 작은 마을 속 작은 집에서 살고 싶다며 마음속으로 꿈꿔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현실 속 공간으로 노을집이 내게로 왔다. 그것도 온전히 나만의 공간으로 말이다.
가족들과 생활하는 집은 따로 있으니 이 노을집에서는 어떤 살이를 할지 고민이었다.
일단, 늘 생활하는 공간은 아니니 수납공간은 크게 필요 없었다. 기존에 있던 붙박이장과, 주방장을 모두 떼어냈다. 살림살이를 많이 장만하거나 쟁여두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대신 친구들이 찾아올 수는 있겠다 싶어서 1층 작은 방에는 언제든 꺼내 누워 쉴 수 있는 폭신한 목화솜 요를 장만하고, 주방에는 간단히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부엌 살림살이를 준비해두었다.
처음 노을집이 좋았던 건 춘천 봉의산의 노을이 내려다보이는 2층 창 때문이었다.
이 공간은 있던 그대로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창 밖 노을을 바라보는 작업실이 되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큰 거실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오디오 매니아인 친정아버지가 쓰시던 턴테이블과 스피커를 설치하고, 아버지의 저장고에서 꺼내 온 어릴 적 들었던 LP판을 한 켠에 두었다. 다른 한 켠에는 오랫동안 엄마의 주방 커피 테이블로 쓰이던 여전히 작동되는 싱거 재봉틀을 가져다 놓았다.
작은 마당에는 언제든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캠핑용 화로대와 낮은 테이블을 두고, 바람이 좋고 햇빛 적당한 날에는 마당에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는 혼자 노을집으로 간다.
들어서자마자 창문을 모두 열고, 음악을 튼다. 물을 받아 커피를 끓여 예쁜 커피잔에 내리고, 얼마 전 다시 시작한 해금 연습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스듬히 창밖 정원을 보며 누워 있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마당의 풀들이 눈에 들어오면 빨간 장화를 신고 나가 풀을 뽑기도 하고, 목화요를 하나씩 꺼내어 마당에 널기도 한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혼자만의 시간이 나름 쉴 틈 없이 돌아간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그동안 혼자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벽에 못을 박기도하고, 작은 사다리에 올라가 전등의 전구를 갈아 끼운다. 마당에서 숯불을 피우기도 하고, 더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캠핑용 타프를 혼자 쳐보기도 한다. 늘 누군가의 도움을 원하거나 옆에서 거들기만 하던 일들을 막상 혼자 하려니 처음부터 쉽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 오던 걸 직접 부딪쳐해 보는 순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꿈꿔오던 것이 현실의 공간으로 되어가면, 상상 속 멋진 모습 뒤에 수고하는 손길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익숙해지기'는 꿈에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