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집, 공간을 채우는 이야기
지난 12월 4~5일, 2일간 다양한 부모성장클래스 콘텐츠를 운영 중인 자람캠퍼스(zaramcampus.com)와 노을집이 함께 진행한 워크숍 [드로잇(Draw-eat)] 의 공간 호스트 겸 커넥터로서, 공간을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기록합니다.
[하루 전]
지난 주말 노을집에 올라와서 드로잇 진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대략 마친 터라, 오늘은 공간을 최종 점검하고 공간 재배치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손님들이 사용하실 침구를 추가로 주문하여 준비해 놓고는 새로운 침구의 쿠션감이 좋지 않아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노을집 마당에 들어서니 지난여름부터 마당에 쳐놓은 타프가 겨울바람에 심하게 펄럭입니다. 마당 타프가 아늑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다시 잘 고정해서 그대로 둘까 하다가 겨울 마당에서는 햇빛을 더 받는 게 좋겠다 싶어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타프를 고정한 매듭을 풀고, 긴 기둥을 눕혀 타프를 철거합니다. 차가운 바람에 손이 시리지만,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니 금세 몸이 더워집니다. 혼자 하는 마당일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차근차근해나가니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1일 차]
어제부터 계속 마음에 쓰이던 새로운 침구에 푹신함을 더하기 위해, 아침 일찍, 2층 작업실에서 소파로 쓰고 있는 1인용 소파베드 2개를 작은 방으로 옮겼습니다. 소파베드 위에 새 침구를 올리니 훨씬 푹신합니다. 덕분에 마음에 걸리던 고민도 사라집니다.
작업실에 어지러이 펼쳐놓고 사용하던 개인 그림 도구를 모두 정리하고, 드로잇 프로그램에 쓰일 종이와 색연필 등을 배치한 후, 인원수에 맞게 의자도 자리에 맞춰 둡니다.
1층 거실 테이블에는 차와 다이닝을 위한 세팅을 준비합니다. 오늘 아침 춘천 애막골 새벽시장에서 사 온 수수부꾸미를 케이크 스탠드에 담고, 홍도라지차를 따뜻하게 끓였습니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손님이 오실 때마다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 두었던 방명록에 환영 인사를 쓰며 새로운 손님을 맞이 할 마음의 준비도 마칩니다. 부디 손님들이 노을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편안한 공간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시, 약속된 시간에 맞춰 함께 춘천에 오신 손님들이 노을집으로 들어옵니다. 사용할 방을 배정하여 짐을 내리고, 손님들이 공간을 둘러보는 동안 저는 커피를 내립니다.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을 하면 시간은 걸리지만, 공간을 채우는 커피 향이 좋습니다.
서로 오프라인 만남은 처음이신 분들도 있지만, 자람패밀리 대표이신 그래님의 자연스러운분위기 메이킹으로 편안하게 부모, 육아, 일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다과가 끝나고, 손님들은 2층으로 자리를 옮긴 손님들이 생각을 정리하며, 쓰고, 그리는 동안, 신승훈 2집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립니다. 레코드판의 싫지 않은 잡음과 함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Ich liebe dich~’하는 첫 소절이 흘러나옵니다.
2층에서 공간을 채운 LP 음악 속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저는 1층 다과 테이블을 정리합니다.
음악소리에 묻혀, 1층에서 그릇 치우는 소리가 덜 들리기 바랍니다.
5시,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노을이 집니다. 겨울에는 해의 위치가 남쪽으로 많이 이동하기 때문에 서향인 노을집에서는 오늘은 일몰이 보이지 않습니다. 노을집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일몰은 모두 다른 풍경을 만드니 한 번씩 다 보러 오셔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노을집 드로잇(Draw-eat)은 이름 그대로, 그림과 음식이 함께 합니다. 특히, 춘천에 오신 만큼 춘천의 로컬 음식을 대접하려고 합니다. 오늘 오후에 차에 함께 내놓았던 수수부꾸미가 그 첫 번째 로컬 음식이었고요.
저녁 메뉴는 춘천 철판 닭갈비입니다. 마침 노을집 근처에 춘천 닭갈비 맛집 1,2위를 다투는 닭갈비 음식점이 있습니다. 그 유명세만큼 예약을 받지 않아, 일찌감치 가서 대기를 해야 합니다. 밤공기가 차지만, 별이 떠있는 구봉산 자락의 동네길을 산책 삼아 음식점까지 20여분 정도를 걸어서 갑니다.
대기번호를 뽑고 20여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이야기꽃이 끊이질 않네요.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노을집을 향해 걷기로 합니다. 저녁 시간이 깊어지니 주변이 더욱 어둡고 날이 많이 차갑게 느껴집니다. 저는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추운 줄 모르고 플리스 재킷 하나만 입었더니 걷는 길이 더욱 춥게 느껴집니다. 손님들께 옷을 든든하게 챙기라고 말씀드리고는 제가 방심했네요.
구봉산의 밤공기가 더 추워지기 전에 마당에서 모닥불을 준비해야겠다는 조급함에 걸음걸이가 더 빨라집니다. 마당 화로대에 톱밥 장작을 잘라 넣고, 착화제를 뿌리고 가스 토치를 켰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가스 토치가 말썽입니다. 낮에 확인했을 때 토치에 불은 켜지길래 착화제를 사용하면 불이 붙겠다 싶었는데, 화로대 바닥의 재가 젖어 있는지 매운 연기만 나고 불이 붙지 않습니다. 가스 토치도 푸른색 불꽃이 작게 나올 뿐 이내 꺼져버립니다. 당황한 마음에 종이에 불을 붙여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옆에서 우산님이 부채질을 시작하고 다른 분들도 합세하여 세찬 부채질로 겨우 불꽃을 살렸습니다. 젖은 재가 마르고 나니 장작이 잘 타기 시작합니다. 시원치 않은 토치를 미리 바꿔두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미리 쿠킹호일에 싸서 준비해 둔 고구마를 장작 속에 넣으니 불이 너무 세서 탈 것 같습니다. 불을 붙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다음 일정에 차질이 있을까 마음이 조급하여 고구마를 급하게 넣어 버린 겁니다. 다행히 이해해주시며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불멍’ 중이신 손님들 덕분에, 다시 마음을 느리게 합니다.
내일 아침 식사로 준비할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찾으러 갈 시간이 되어 손님들께 1일 차 작별인사를 하고 노을집을 내려옵니다.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굽는 춘천 코너스톤 베이커리에서 손님들을 위해 저녁 늦게 빵을 구워서 준비해주시기로 했거든요. 빵집에 도착하니 코너스톤 사장님이 저에게 정성스레 준비한 샌드위치를 건네주십니다. 내일 아침까지 크로와상의 바삭함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받아 오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2일 차]
아침 식사로 대접할 샌드위치와 삶은 계란, 커피 원두를 들고 8시 반에 노을집에 올라와 손님들과 아침 인사를 나눕니다.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거의 잠을 못주셨네요.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크로와상 샌드위치와 삶은 계란을 하나씩 에그 홀더에 올려 아침상을 차립니다. 손님 한분이 늘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는데 익숙해서 남이 차려주는 아침상이 낯설다고 하십니다. 괜찮아요. 노을집에는 일상을 벗어난 나를 발견하기 위해 먹고, 그리고, 이야기하러 여행을 오신 거니까요.
아침식사 후, 자람패밀리의 ‘마음일끼’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감정’을 들여다봅니다. 나의 ‘감정’을 통해 남이 아닌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저도 한참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늘 감정이 생기면, 상대방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나’가 아닌 ‘남’을 바꾸려고 했거든요.
드로잇 마지막 시간은 저와 함께 하는 드로잉 시간입니다.
드로잇에서는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드리지는 않아요. 그저, 한동안 잊고 살았던 물감과 색연필을 손에 쥐고, 도화지와 나만 있는 공간을 고스란히 느끼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각자 엽서 크기의 작은 도화지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어제와 오늘 노을집에서 만난 한 순간'을 그립니다. 사물이나 풍경을 그려도 좋고, 감정을 표현할 색으로 채우셔도 됩니다.
직접 그린 엽서 선물을 받게 될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입니다.
오늘 노을집에 오신 손님들은 사랑하는 ‘나’에게 선물할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기에 몰입한 모습은 그 누구의 엄마, 아내, 직장인도 아닌 그대로 ‘그대’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과 노을집의 공기가 하나가 되어 숨 쉬는 듯한 착각에 순간 울컥합니다.
노을집 공간의 숨소리와 쉼표, 그대로, 이번 여행이 기억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