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신만의 문제에 중독되면

신념을 바꾸기가 어렵다

by 안전모드

불현듯, 지금의 내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자기연민에 빠지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수없이 되뇌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다짐했던 말이다.
하지만 마음은 이따금 내 뜻을 배신한다.

과거의 상처와 가족들과의 따뜻했던 추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 가슴 한 켠에서 울렁이는 감정이 터져 나와 나를 삼켜버린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이제는 내 안에서 나를 휘젓는다.


두 아이와 함께한 1년 6개월.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잘 적응해가고 있다.
짧은 톡과 일상의 사진들
그 안에 그들의 하루가 담겨 있고, 그 하루들이 조용하지만 단단히 쌓여간다.

큰아이는 묵묵히 학업에 집중하고 틈틈히 야구장과 서울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오곤한다.

둘째는 뷰티학원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움직임’이 있고, ‘변화’가 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회사-집-회사-집.
가끔씩 어머니와의 통화 하나가 전부인 삶.
익숙하지만 무미건조하고, 반복되지만 의미 없는 루틴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말라간다.

문득, 나를 돌아본다.
연락이 끊긴 친구들, 멀어진 지인들,
심지어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조차 이제는 흐릿해졌다.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를 고립 속에 가둬버린 건 아닐까.

변화를 원했고, 시도도 해봤다.
백패킹동호회를 통해 만남을 갖고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대화는 겉돌았고, 말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꺼내는 법조차 잊어버린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간의 시간이 내게 남긴 공허함을 마주해야 했다.

아이들의 양육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온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문제에 중독되어 있었다.
‘나는 이래야 한다’, ‘이건 나의 책임이다’, ‘누군가는 버텨야 한다.’
이런 신념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신념이 틀이 되어 나를 가두고 있었다.

계획했던 일들은 어느새 흐릿해졌고,
마음을 추스를 요량으로 끄적였던 노트는 책장 속에서 먼지만 뒤집어썼다.
나는 여전히 과거를 살아내고 있었다.

다시금 생각한다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틀에서 벗어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것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