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리석어지기로 결심했다.
내 꿈은 작가다.
글을 쓰는 작가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든, 영화를 찍던 연극을 올리던, 내 이름으로 된 창작물을 갖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 학생부 장래희망 란에 작가라고 썼으니 그 꿈을 갖고 산지 이십 년도 넘었다.
왜,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내 꿈을 그렇게 여긴 모양이다. 성공한 작가가 될 만큼 특출 난 재능은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 천재가 아니라면 죽도록 노력이라도 해야 될 텐데 엄살을 부렸다. 그 길로 가면 왠지 작가가 되기 전에 굶어 죽을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도 있다. 취미로 할 때가 좋은 거라고.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 말대로 돈을 벌며 좋아하는 걸 찔끔찔끔했다. 소설 습작, 시나리오 습작, 연극 동호회, 드로잉, 사진 촬영 등등.
물론 성과는 없었다. 선무당쯤은 됐을지 모르겠으나, 진짜 내 목소리가 담긴 ‘작품’ 같은 건 없었다. 급하게 토해 낸 풋내 나는 결과물을 로또 바라는 심정으로 공모전에 마구 투고를 했다. 그걸 ‘열심’이라고, 나도 할 만큼은 했다고 자위하며 청춘을 보냈다.
나는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다. 아니, 난 내 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은 내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자원은 시간밖에 없는데, 아껴 쓰지 않았다. 세월을 대충 흘려보냈더니 이만큼이나 떠내려 왔다. 내가 가는 길도 모르는 채.
작년 초 9년 간 몸담았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모아 둔 돈이 생겼으니 당장 굶어 죽지는 않을 거란 계산에서였다. 그리고 퇴사 후 세계여행을 갔다 온 뒤 작가 지망생이 돼보기로 했다.
적어도 1년은 여행을 하고 올 거라 생각했는데 올 2월,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8개월 만에 접고 돌아왔다. 이전 회사에서 복귀하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했다. 성공한 작가가 되리란 기대는 버렸지만 할 만큼은 해보고 돌아서고 싶었다.
걱정된다. 이 삽질이 그냥 흙장난으로 끝나지는 않을까. 괜히 시간만 버리고 돈도 거덜 나지 않을까. 이러다 그나마 있는 경력이고 전문성이고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닐까.
이 나이에, 괜찮은 걸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 우공이산(愚公移山). 무식하게, 거침없는 삽질로 결국에는 산을 옮기는 사람도 있더라. 그게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어쩌면 무식한 사람만이 산을 옮기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너무 계산적이다. 세상 일이 계산대로 되는 게 아님은 알지만, 확률을 따져 봤을 때, 정규분포 95% 표준편차 안에 어디쯤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틀렸다. 측정이란 결과가 나온 뒤에야 가능한 법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현재를 살고 있는 각각의 삶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예측하거나 단언할 수 없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
오늘의 끝이 내일의 시작을 만든다는 것뿐이다.
2020년, 나는 작가 지망생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가끔 ‘나 지금 괜찮나’라는 현실 자각 타임이 오긴 하지만, 매일 아침 오늘의 삽질을 한다. 머리 굴리지 말고 손발을 움직여 꿈을 좇겠다 다짐한다.
무식해지기로 했으니 매일 되뇌어야 한다. 잊지 않도록. 첫 의지가 무뎌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