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민낯
3월 30일, '서울시 재난 긴급 생활비 지원'을 신청했다.
세계여행 후 소득 없이 한 달 반 정도 노는 중이었다. 여행 경비 중 남은 돈이 있었기에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었지만 소득이 없다는 건 소비를 위축시키는 게 분명했다.
예전 같았으면 장바구니 10만 원은 늘 있는 일이라 크게 신경 안 썼겠지만, 무소득자로서 받아 든 10만 원짜리 영수증에는 일순간 사람을 의기소침해지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나는 빚지는 걸 싫어한다.
학자금 대출은 이자가 낮으니 원금상환은 나중으로 미루고 취직 후 목돈을 먼저 모으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따르지 않았다. 월급의 50% 이상을 대출금 갚는데 써서 결혼할 때 빚이 없었지만 목돈도 없는 자유인이었다.
시댁에서 돈을 보테 집을 해줄 형편도 아니라 남편이 모은 돈만으로 서울 외각의 반전세 아파트를 구해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1억 정도 빚을 내고 가진 돈을 전부 털었다면 전세로 들어가거나 낡고 작은 평수의 아파트 정도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4년 간 월세로 나간 천육백팔십만 원을 더 모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이득이었을까?
하지만 꺼림칙하다. 천육백팔십만 원으로 1억의 이자를 낸다 치고, 원금 1억은 4년 동안 한 달에 약 이백십만 원씩을 이자로 갚아야 사라진다. 어디 아프거나 4박 5일 정도의 해외여행이나 휴직 등을 생각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런 태도에 지인들은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아니, 그걸 왜 갚을 생각을 해?
부채도 자산이야.
현대사회는 소비를 권장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소비 대신 절약을 택한다면 대기업은 인프라 유지비와 인력비를 감당 못해 문을 닫을 것이고, 대규모 실업사태가 일어나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세계 경제는 커다란 한배를 탄 것과 같다. 어느 한쪽이 잘못되면 모두가 천천히 가라앉는 형국이 될 것이다. 이게 '세계화', '지구촌'의 이면이다.
작은 공동체에는 큰 부자가 없다. 열명이 사는 곳에서 잘살아봤자, 못살아봤자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하지만 백 명이라면, 만 명이라면, 십억 명이라면?
공동체가 커지면 아주 큰 부자가 생기고,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버려지는 사람과 자원이 많아지게 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꿈같은 거짓말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라는 책에서 우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했다.
엔트로피란 우주 내 어떤 시스템에 존재하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형태로 바뀌는 정도를 재는 척도다.
지구건 우주건 어디서든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상태로 나아가며, 이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연적으로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는 그 가속도다.
소비는 생산을 전제로 한다. 가공 단계가 많아질수록 버려지는 자원, 에너지가 많아진다. 소비는 유용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손실시키는 행동이다.
그럼 소비를 줄이면 해결될까? 글쎄다. 지금 상황을 보면 감이 올 것이다. 무직자의 증가, 그로 인한 소비력 약화. 사회 혼란과 국가 재정의 위험.
앞으로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고, 돈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게 신용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다.
세상이 이렇다면 가상화폐 같은 돈을
부담 없이 마구 빌려 쓰는 게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내가 그때 집을 샀더라면 오른 집값이 빚을 상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지급이 안 된 서울시 재난 긴급 생활비 삼십만 원이 지금 절실히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빚이 없다. 그리고 목돈 또한 없다.
[EBS 다큐프라임 - 자본주의 5부작]
https://www.ebs.co.kr/broadseries/vodseries/show/123828
[제레미 러프킨 - 엔트로피]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922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