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y & Girl
중학교 때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형체는 없고 빛처럼 영혼만 있으면 좋겠어.
그럼 외모 스트레스도 안 받고, 비교도 안 하고 좋을 텐데.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람들을 구분 짓는 기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성’이다. 임신을 했을 때 혹은 출산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남자냐, 여자냐’.
지인들을 보면, 남자아이를 가진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군대 걱정이고, 아이가 여자면 예쁘게 치장하고 꾸밀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옷이나 액세서리에 부쩍 관심을 갖는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90년대에는 남자에게 ‘귀엽다’라고 말하는 건 거의 욕이나 다름없었다. 듣는 남자는 기분 나빠했고, 말하는 이도 얕잡는 투로 말했다.
또한 여자가 짧은 머리에 운동 신경이 좋으면 ‘남자처럼 하고 다닌다, 남자 같다’라는 핀잔과 함께 얌전함을 강요받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관념을 어릴 때부터 은연중에 학습시킨 것이다.
2018년을 기점으로 ‘미투 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크게 떠올랐다. 미투 운동에는 자연스레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따라붙게 되면서 본질에서 벗어난 자극적이고 가십적인 이슈가 만들어졌다. '성폭력'은 '폭력'과 무엇이 같고 다를까.
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는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고 피해자가 크게 저항을 안 하고 가만히 있기에 싫어하는 줄 몰랐다. 그냥 툭 친 거였고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다. 매번 그래 왔던 건데 왜 이번에만 일을 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행동과 말이 두려워 가만히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몸집과 힘에서 차이가 나고, 싫다고 하면 더 난폭해질까 봐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있었다. 이 순간만 모면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은 것이다. 이제 됐겠지, 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첫 폭력이 지나자 두 번째는 더 쉽고 강하게 행해졌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같은 폭력 사건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과연 피해자를 비난할까? 처음부터 강하게 맞서야지,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해야지, 라며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위의 폭력을 '성'폭력이라고 바꾸고, 가해자는 남자 피해자는 여자라고 한다면?
남녀 사이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은연중 피해자를 삿대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초등학생 때 즐겨 듣던 가요가 있었는데 ‘더 클래식’이라는 남성 그룹의 <마법의 성>이라는 노래였다. 남자가 꿈속에서 마법의 성에 갇힌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러 간다. 남자는 용기와 지혜로 힘겨운 싸움을 이겨내고 둘이 만나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어릴 적 보아오던 수많은 동화 속 내용과 같은 노래였다.
이런 게 진정한 사랑, 남녀관 계구나, 라는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갖게 됐다.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고,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나를 구해주는 것 따위의.
대학생이 됐을 때쯤, <흑설공주 이야기>라는 성인을 위한 동화책이 나왔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유명 동화를 다시 쓴 책이었는데, 그걸 읽으며 어릴 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동화 속 남자와 여자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다.
애니메이션 <슈렉> 또한 고정관념으로 박혀있던 남녀, 인간(정상)과 괴물(비정상)의 인식을 깨는 데 도움을 준 이야기였다.
여자는 왜 아름다움과 연약함을 강요받아야 할까. 남자는 왜 전투적이고 강인하게 키워져야 하는가.
그전에 우리는 왜 ‘나 자신’이기 전에 선택하지도 않은 ‘성’에 의해 멋대로 구분 지어져야 하는가.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은 남자답다, 여자답다를 배우기보다 자기다움을 찾았으면 좋겠다.
젠더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더 넓은 시각으로 자신과 사회를 봤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우리부터가 자기가 지금까지 못 보고 지나친 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각(死角)은 아주 가까운 데에 있다. 남을 비난하는 한 손가락 외 나머지 손가락들이 가르치는 바로 그 지점 같은 곳,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