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드로잉 랩(Drawing Lab)
얼마 전. 스티븐 킹 걸작선을 읽으면서 인상 깊게 느꼈던 구절이 있다. 사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이 책의 서문이다. 스티븐 킹 걸작선의 서문을 작성한 존 D 맥도널드는 제임스 본드 소설 버금가는 범죄 소설의 대작가로, 이 서문도 스티븐 킹의 요청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처음 맺게 되는 인간관계에서의 대화를 떠올려 보자. 아마, 늘 비슷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누구누구이시죠. 많이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혹은 장소에 따라. 안녕.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 등.
관계에 목마른, 혹은 관계에 지친 우리들은 처음을 두려워하고, 처음을 귀찮아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존 D 맥도널드의 시작은 이렇다. 상대방의 "저도 항상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라는 인사치레 같은 말에, 그는 "전 항상 뇌 전문의가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답했다. 뇌 전문의가 되고 싶다면 수술대 위에서 직접 뇌 수술을 해 봐야 하는 것이고, 작가가 되고 싶다면 결국 글을 직접 써보는 것 밖에 없다. 명료하게도 글은 그냥 정말 써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 말한다. 글은 그냥 쓰이는 것이 아니고, 고집과 부지런 그리고 욕심이 모두 필요한 시점에서 쓰인다고.
왜 이 서문이 유독 마음에 들었을까. 존 맥도널드가 만난 상대의 변명이 마치 나의 처지와 비슷해서였을까.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그의 서문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라는 구차한 변명을 이번에도 거듭하기로 결심하며, 나는 결국 책을 접고 말았다. 글을 쓰자고.
그리고 또. 얼마 전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이후 벌써 2년이 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삼 이 소식을 뉴스로 접하는 데 감회가 새로웠다. 벌써 2년이나 지났다니. 생각해보니 2년 전엔 코로나도 없었고, 질병으로 인한 방문이나 여행 자제가 막연하게 영화 속에서만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그런 고민도 같이 사라졌다. 영화 같은 인생, 이제는 그 말이 얼마나 무섭고 소름 끼치는 단어인지 깨닫는다.
4월 15일의 노트르담 화재 기사, 그리고 그 날로부터 약 한 달 전 3월 13일. 파리 1구에 위치한 Drawing Lab의 전시를 다녀왔다. 오픈 첫날이었다. Drawing Lab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두 레스토랑의 직각에 위치하는 곳이다. Drawing Lab의 건너편엔 일본 라멘 집인 코다와리 2호점이 있고, Drawing Lab이 위치한 그 길 더 안쪽엔 독일 레스토랑 Stube가 위치해있다. 둘 다 정말 좋아하고 자주 갔던 레스토랑이었다. Before 코로나까지만 하여도.
첫 방문인 것에 비해, 오다가면서 본 Drawing Lab의 이름은 익히 알고는 있었다. 그저 꽤 오랫동안 별 4개짜리의 럭셔리 호텔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호텔이 아닌 것은 아니다. Drawing Lab은 Drawing Hotel의 1층과 지하 1층을 일컫는다. 사설 예술 센터인 Drawing Lab은 크리스틴 팔(Christine Phal)에 의해 2017년에 설립됐으며, 드로잉 기업 내에는 <랩> 이외에도, 아티스트들을 선별에 그들의 후원을 돕는 드로잉 팩토리(Drawing Factory), 6명의 아티스들의 자유로운 주제를 가지고 제작한 드로잉이 전시된 드로잉 호텔(Drawing Hotel)이 있다. 2007년 드로잉 랩의 설립자 크리스틴 팔은 로랑 보디에(Laurent Boudier)와 드로잉 나우 아트 페어(Drawing Now Art Fair)라는 박람회를 설립해 매년 80개가 넘는 갤러리의 젊은 드로잉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3월 13일, 드로잉 랩은 어떤 젊은 작가를 대중에게 소개했을까.
TIERRADENTRO
큐레이터 아나이스 르파주(Anaïs LEPAGE)가 소개하는 전시, 티에라덴트로(TIERRADENTRO)는 태평양 연안의 콜롬비아 카우카 계곡에 위치한 유적지 이름이다. 매장된 무덤들에 의해 보호되는 유적들은 콜럼버스 시대 이전의 것들이다. 85년 콜롬비아의 보고타에서 태어난 다니엘 오테로 토레스(Daniel OTERO TORRES)는 2010년 리옹의 보자르에서 졸업한 이후, 현재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는 젊은 아티스트들 중 한 명으로, 그는 이 전시장에 콜롬비아 유물이 내장된 투쟁의 무덤을 재현에 냈다. 콜롬비아 식민지의 잊힌 역사, 혹은 훼손된 일상,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시민들은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계단 밑,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늙은 개들이 전시장을 지키는 무력한 경비처럼 앉아있다. 마르고 홀쭉한 개들은, 고이 두 손을 모으고 처음 보는 나를 향해 주인의식을 갖는 듯하다.
첫 번째 전시실에선 테이블 위에 놓인 몇 개의 토기들을 만날 수 있다. 꼬꼬마 때부터 미력 옹기를 보고 자란 나로서는 진흙으로 빚어진 토기는 굉장히 익숙한 존재였다.
각 토기들은 상징적인 동물 혹은 도깨비들이 그려져 있다. 영혼이 깃든 동물, 혹은 그들을 신적인 존재로 모시는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이 상상되기 마련이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포함한 시베리아, 몽골,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전역에 분포한 이 집단의 사상에는 실제로 평화와 안전 그리고 승리를 기원하는 순수함이 깃들어 있다.
수직으로 잘려나간 몸통의 일부가 서로 다른 몸통 혹은 다른 다리와 접목되어 거대한 4개의 조각상을 만들어 냈다. 심지어 머리가 다들 온전치 않다. 또, 사람 조각이 접목된 것이니 당연하겠지만 서도, 실제로 보면 성인의 두배는 족히 넘는 크기로, 실내에 있는 조각상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웅장함이 꽤 압도적이다.
조각 옆에 놓인 갈대잎 같은 풀들은 토속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조각상의 인물들이 걸친 것들이 총대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모두 여성이었다. 눈이 없어도 표정이 없는 것은 아닌 여성들은 담대한 포즈를 하고선,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군복을 입고 사이좋게 모여 앉아 손가락질하며 떠드는 그녀들은 마치 전투를 앞두고도 호탕하게 서로 조언을 하는 듯 태연해 보인다. 젊은 작가, 다니엘은 20세기 권위와 인권을 되찾으며 강인 해지는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고, 그들이 맞이하게 될 잔인하고 끔찍한 식민지의 실체를 그들의 힘으로 틀어막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세상엔 전쟁이 있지만, '전쟁'이라고 불릴 수 없을 정도로 결과가 당연하게 도출되는 부당한 싸움이 존재한다. 야생이 아닌 인류 안에서의 약육강식은 더 잔인하고 혹독하다. 하지만 다가올 결과에 용맹하게 맞서는 그들의 용기는 분명 오늘날까지도 어떠한 방식으로 전해져 왔고 기록되고 있다. 또, 강한 동기와 함께 예술 작품으로 재구성됨으로써,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을 현혹시킬 것이다.
다니엘 오테로 토레스는 종이나,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도기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함과 동시에, 엽서 크기에서부터 성인의 2배를 뛰어넘는 높이의 거대한 조각을 제작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실험을 시행해 나간다. 공동체의 비극과 그 아픔을 해석하는 그의 방법은 사실에 근거한 것에 비해 평화롭고 따뜻하다.
드로잉 랩은 3차 봉쇄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내가 방문한 곳으로, 봉쇄 발표와 동시에 며칠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